| 입력 2009.08.31 21:00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강원
 

< 8뉴스 >

< 앵커 >

포성이 그치지 않는 먼 이국 땅에서 한글을 이용해 소수민족의 문자를 만들어 보급하는
한국인이 있습니다. 목숨을 건 문맹퇴치의 공을 인정받아서, 교육문화방면의 업적이 뛰어난 전문가에게 수상하는 유네스코 공자상까지 수상하게 됐는데요.

테마기획에서 장선이 기자가 소개합니다.

< 기자 >

옛 소련의 침공과 탈레반 지배하의 내전을 거쳐 미국과도 전쟁을 치르며 총성이 끊이지 않았던 아프가니스탄.

우리와는 종교나 문화도 달라 별 인연이 없는 이곳에서 한국인 윤주홍 씨가 문맹 퇴치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윤주홍/유네스코 공자상 수상자 : 가난의 문제도·장래의 희망도 여러분 언어의 발전 없이는 어렵습니다. 여러분들 언어를 사랑 하십니까? 보전하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이 모임의 결과는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 입니다.]

윤 씨가 이역만리에 첫 발을 디딘 것은 10년 전.

언어학을 공부하던 대학 때부터 간직한 새로운 문자 개발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윤 씨는 말이 있으면서도 글이 없던 아프간 북부 파사이족 마을에 정착해 지난 2003년 마침내 부족 문자를 만들었습니다.

하나의 글자에 하나의 소리가 있는 한글의 원리를 활용했습니다.

먹고 사는 것조차 힘들었던 부족민들은 처음에는 이방인이 만든 문자를 외면했습니다.

게다가 치안 불안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 순간도 많았습니다.

동료가 무장괴한들이 쏜 총에 맞아 숨졌고, 자신의 집 앞에 폭탄이 설치돼 가족이 위험에 처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윤 씨는 포기하지 않았고 시간이 갈수록 반응은 놀라웠습니다.

지난 2007년 부족어 수업에 대해 아프간 정부로부터 정규 교육 과정으로 인정받았고, 수업에 참여하는 부족민의 문맹 퇴치율은 100%에 달했습니다.

지금은 백여 명의 파사이족 교사가 윤 씨가 만든 문자를 부족민 22만 명 전체에게 보급하고 있습니다.

[후배들 교육시키는 것, 훈련시키는 것을 돕는 역할을 하고 싶고… 굉장히 보람을 느끼고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구나' 하는 그런 자부심도 있습니다.]

윤 씨는 다음달 유네스코 공자상을 받을 예정이지만 다른 부족의 문자를 만드는 일에도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장선이 su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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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카운티 커뮤니티 칼리지 디스트릭트 최연소 여성 이사
"한인 등 아시안계 학생들 권익 옹호 앞장설 것"
(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벌써부터 주 상원의원 출마 제의도 받지만 우선 4년 임기의 교육평의회 이사로서 맡은 바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생각입니다."

한국인으로는 최초이고 여성으로서는 최연소로 지난 5월 1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 커뮤니티 칼리지 디스트릭트(교육구) 교육평의회 이사에 당선된 티나 박(33.한국명 다희) 씨.

여성부와 인천광역시, 매일경제신문사 공동주최로 25∼28일 하얏트리젠시인천 호텔에서 열리는 제9회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그는 25일 저녁 인터뷰에서 유창한 영어와 우리말을 섞어가며 '정치인'(politician)으로의 화려한 변신을 당당히 밝혔다.

"5명이 입후보했는데 40대 흑인 여성인 현직 이사와 제가 결선 대결을 벌였고 마침내 승리했습니다. 현직 이사를 꺾고 당선된 것은 3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야단이었습니다."

박 씨는 올 3월 예비선거에서 2위를 차지했고 결선 투표에서 14만8천243표(54.2%)를 얻어 현직 이사인 안젤라 레독 후보를 2만3천여 표차로 여유있게 누르는 이변을 연출했다.

그는 6살 때인 1983년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고 뉴욕 롱아일랜드 호프스트라대학 4학년 때 전국에서 12명 중 한 명으로 뽑혀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들어갔다. "당시 저희 학교에서 수 백명이 응모했는데 저 한 사람이 선발됐습니다."

그리고 2003년 NYSE와 증권거래위원회(SEC) 등 3개 금융기관이 참여해 미국내 7개 대형은행들 간의 '빅딜'을 성사시킨 '글로벌 세틀먼트' 작업에 참여했고 2005년 LA로 이주해 3년간 프라이빗 컨설팅 회사에서 일했다.

그러다 2008년 11월 미 대선 직후 민주당 정가 모처로부터 LA카운티 커뮤니티 칼리지 교육구 교육평의회 이사로 출마하라는 제의를 받았다.

"2008년 미 대선 때 힐러리 클린턴 진영에서 선거자금을 모으는 일에 참여하면서 보여준 능력을 높이 샀던 모양입니다. 도와주겠다며 출마를 권유했습니다."

그가 LA 커뮤니티 칼리지 디스트릭트에서 일한 것은 7월 15일 선서를 한 후부터 고작 한 달여밖에 안됐지만 '초짜' 분위기를 풍기지 않는다.

"내달 디스트릭트 챈슬러(교육구청장)을 임명해야 하고 기업이나 '인바이론멘탈 그린'(Environmental Green) 같은 단체들과 자매결연해 대졸자들의 일자리를 늘려주는 사업도 시작했습니다."

LA 커뮤니티 칼리지 디스트릭트 안에 상ㆍ하원 지역구가 포함돼 있어 이 지역 교육평의회 이사가 갖는 영향력이 지대하다. 자기 지역구 내 학교에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상ㆍ하원 의원들의 노력이 치열하단다.

LA 커뮤니티 칼리지 디스트릭트에는 9개의 칼리지가 소속돼 있고 미국내 수 백개 커뮤니티 칼리지 디스트릭트 가운데 제일 크다. 4년 임기의 평의회 이사 7명이 이 교육구의 모든 지출을 승인하고 정책을 감독한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여성으로서는 최연소로 이런 자리에 오르니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들의 사기가 오르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아시안계 학생들로부터 관내 학교를 방문하는 '캠퍼스 투어'는 언제하는지 등을 묻는 이메일을 많이 받습니다. 학교에서 한인 학생들에게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말도 듣고 있습니다. 또 선서식에서도 한국말로 '한인들에게 힘이 되겠다'고 말했거든요. 조만간 아시안계 미국인들을 위한 여러 지원책이 강구될 것입니다."

신학대학 총장인 아버지와 한의사인 어머니를 둔 1남2녀 중 차녀인 그는 아직 미혼이다.
kjw@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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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48)는 '한국 대학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최초의 외국인 교수'로 불린다. 지난해 9월 부교수로 임용돼 1년간 학생들을 가르쳐 온 그는 17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국민이 왜 영어를 유창하게 잘해야 하느냐"며 영어 몰입교육·조기교육을 겨냥한 '쓴소리'를 내놓았다. 그는 "영어가 어떤 사람에게 필요한지 알고 교육정책이 세워져야지 영어를 아주 잘해야 하는 계층은 많지 않다"며 "관광·무역 등은 중국어가 더 필요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발음을 중시하고, 영어 선생님으로 미국인 백인 저학력자를 필리핀인 박사보다 선호하는 것은 한국 특유의 '랭킹주의'에서 기인한 것"이라며 "랭킹주의는 2차대전 무렵 일본이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강요되던 것인데, 그게 왜 2000년대 한국에서 재현돼야 하는지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어라는 외피(外皮)보다는 속에 있는 콘텐츠가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파우저 교수는 미국 미시간대를 졸업한 1983년 서울대 어학연구소에서 1년간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과의 인연을 맺었다. 미국에서 2년간 석사 학위를 준비한 것 외에는 93년까지 육군종합행정학교·KAIST·고려대 등에서 줄곧 교편을 잡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한국어 교수'가 아닌 '영어 선생님'이었다.

파우저 교수는 최근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의 한글 도입에 대해 "한국인에게는 자랑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면서도 "한글을 수출했다면 한국도 그에 상응하는 문화적 수용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한국이 진정한 다문화 사회가 되려면 결혼이민자 여성들의 모국 문화를 배우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미·일 3개 국어에 능통한 그는 '한글 세계화 프로젝트'에 대해 "국제적 위상과 교류가 늘면서 한국어 교육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다만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한글 세계화를 하는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대국(大國)처럼 되고 싶어하는 일종의 제국주의적 발상은 아닌지 우려된다"며 "한국은 '세종학당'을 프랑스의 '알리앙스 프랑세즈'나 독일의 '괴테 인스티튜트'같이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학당 프로젝트가 해외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외국인 선생을 체계적으로 끌어안지 못하고, 정부 산하기관 여러 곳에서 '중구난방'식 한국어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파우저 교수는 한국 대학생들에 대해 "교수와의 교류가 잦고 예의도 바르다"면서 "반대로 대학생들의 꿈이 너무 작아진 것은 부정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80~90년대에는 회사를 세우겠다든지 사회를 향한 큰 차원의 고민이 많았지만, 지금은 취직이 제1의 관심사"라며 "공무원이나 교사같이 안정적인 철밥통 직장에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 정환보기자 botox@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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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동안 바라본 한국, 자부심 가져도 좋은 나라”



1960 년대 후반 주한미군으로 문산의 비무장지대에 2년간 근무했던 존 던컨 교수. 그는 당시 한국 시골의 모습은 조선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을 풍경이었을 거라고 회상했다. 그로부터 40여 년 뒤. 던컨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미국 UCLA에선 ‘한류’에 빠져든 백인 학생들의 모습도 낯설지 않다고 한다. [김태성 기자]

때론 밖에서 바라보는 게 더 정확할 때가 있다. 미국 UCLA 한국학연구소장인 존 던컨(64) 교수. 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다녔고, 한국인과 결혼했고, 한국말이 완벽하고, 지금도 한국을 수시로 오가는 외국인이다. 주한미군으로 한국에 배치돼, 한국과 치명적 사랑에 빠진 이후 40여 년. 그는 끊임없이 한국과 한국인을 관찰해왔다. 그에게 40년 전과 지금의 한국은 어떻게 다를까. 뭐가 변했을까. 그게 듣고 싶어 던컨 교수를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 9일 서울시내 한 호텔 커피숍에서 이뤄졌다.


-UCLA 대학의 한국학연구소 규모는 얼마나 됩니까.

“ 한국 문학·역사·미술사·지리학·인류학·음악·종교학·언어학 등 다양한 영역을 교수 11명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부 강의를 듣는 학생이 2000~2500명 정도입니다. 저는 ‘한국 문명사 개설’이란 강의를 하는데 정원 120명이 꽉 찹니다. 제가 20년 전 UCLA에서 처음 강의할 때는 수강생이 거의 한국계 미국인이었죠. 그런데 올해 수강생 120명 중 50여 명만 한국계 미국인이고 나머지 70여 명은 비(非)한국계 학생이에요.”

-1960년대에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다 한국에 매력을 느껴서 한국학을 전공한 걸로 아는데, 뭐가 그리 매력적이던가요.

“ 대학을 다니다 학비를 벌려고 입대했어요. 1966년 9월에 한국에 와서 68년 12월까지 문산의 비무장지대에서 근무했는데 한국에는 서양에 없는 게 있었어요. 의리하고 정(情) 같은 것. 한국이 좋아서 제대 직전에 고려대 사학과에 편입학 상담을 했죠. 한국말이 짧다고 떨어졌어요. 귀국했다 다시 돌아와 1년간 어학연수를 하고 찾아가니까 그땐 허락하시더라고요.”

-40년 전 한국과 지금은 차이가 많겠죠.

“ 시골은 거의 다 초가집이었어요. 전기가 들어가는 마을도 별로 없고요. 대부분 고무신 신고 다녔고. 물론 서울은 꽤 큰 도시였죠. 70년도에 인구가 540여만 명이었으니까요. 택시하고 버스도 있고. 상수도가 들어가는 집들도 꽤 있었지만 하수도 시설은 별로 없었어요. 그때와 비교하면 서울은 완전히 국제수준의 대도시가 됐지요. ”

-이런 급격한 변화의 사례가 또 있을까요.

“ 영국이 300년, 미국이 100년, 일본이 60년 걸린 걸 한국은 30년 사이에 이룬 거예요.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런 변화를 소화해낸 것도 놀라운 일이죠. 늘 시끄럽고 문제가 많은 게 사실이지만 전반적으로 한국은 잘했다고 봐야 해요. 경제성장뿐만이 아닙니다. 민주화를 쟁취해 냈고, 교육 분야도 많은 성장이 있었습니다. 60년대엔 대부분 초등학교만 졸업했죠. 중학교 진학률이 50%가 안 됐어요. 지금은 거의 100%가 고교까지 가고, 대학 진학률도 80%가 넘지 않습니까? 한국은 경제·정치·교육·문화적인 면에서 굉장히 큰 변화를 일으킨 나라거든요.”

-밖에서 보기에 한국 민주주의는 어떻습니까.

“ 제가 한국에 있을 때 3선 개헌, 군인들의 고려대 난입사건 등이 있었어요. 지금 그런 일은 상상할 수 없죠. 민주주의가 아주 뿌리박혔다고 생각해요. 시민단체 같은 건 미국보다 한국이 더 발전해 있어요. 한국이 미국보다 더 민주주의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도 있어요. ”

-조선 당쟁부터 시작해 최근의 좌우 대립까지, 한국인에겐 ‘분열의 DNA’가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역사학자로서 어떻게 보세요.

“ 아이고, 일본 학자들이 주장한 식민지사관이 아직도 살아남았군요. 그래요. 조선시대 당쟁은 심했죠. 동서로 갈렸다가, 남인·북인 갈리고, 노론·소론에 대북·소북까지, 한없이 그랬잖아요. 그래서 일본이 조선 사람들은 스스로 나라를 다스리지 못한다고 얘기했죠. 하지만 전(前)근대적인 중앙집권 관료 국가들은 어디나 다 당쟁이 심했습니다. 한국이 특별한 게 아니거든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라고요?

“ 제가 고려대 졸업하고 하와이대에서 석사를 했는데요, 거기도 다민족 사회잖아요. 거기서 한국 사람들이 ‘일본은 저렇게 잘 뭉치는데 우린 뭐냐’고 해요. 한데 일본계 미국인들한테 물어보면 ‘ 우리는 안으로 분열이 굉장히 심하다. 잘 뭉치는 건 중국인이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인한테 물어보면 ‘우리끼린 만날 싸운다. 잘 뭉치는 건 백인이다. 그러니까 하와이 인구에서 25%밖에 안 되는데 다 장악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해요. 백인한테 물어보면 뭐라는 줄 아세요? ‘저 동양에서 온 놈들 조심해라. 지들끼리 잘 뭉친다’ 이럽니다.”

-전 세계적으로 쇠퇴하는 민족주의가 왜 한국에서만 강해지고 있을까요?

“유럽도 70~80년 전에는 지금의 동북아와 비슷한 상황이었어요. 프랑스와 독일이 굉장히 안 좋았죠. 전쟁도 하고. 그래도 유럽은 영국·프랑스·독일의 경제 규모가 비슷했죠. 한데 동북아는 안 그래요. 중국이 너무 커버렸어요. 균형이 안 잡히는 체제거든요. 한국 입장에선 민족주의를 완전히 없애기엔 시기상조입니다. 주변 강대국 속에서 통일을 이뤄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민족주의적인 정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폐쇄적인 게 아니라 ‘열린 민족주의’로 나아가야 하죠.”

-한국에선 법치가 안 된다고 하는데요.

“아무리 그래도 많이 나아졌습니다. 옛날에는 진짜 힘으로, 노골적으로 그랬지요. 권력기관의 부정부패도 일상 속에서 늘 겪었어요. 경찰도 그렇고, 구청만 가도 그랬고요. 한국은 옛날보다는 법을 존중하는 나라가 됐다고 봐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까.

“ 그럼요. 제가 중남미 학자들과 네트워크가 있는데 멕시코·브라질·칠레·아르헨티나, 이런 나라들 가보면 한국에 대한 관심이 지대합니다. 어떻게 해야 한국처럼 경제성장도 하고 민주화도 하느냐는 거죠. 동남아 쪽에서도 한국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고요. 중국도 사실은 한국을 하나의 모델로 삼고 있다는 지적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일부 학자는 한국의 역사를 자학적으로 평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제 청산도 못했고, 농지개혁도 실패했고 기득권층만의 역사라면서.

“저도 옛날엔 그런 생각을 했던 게 사실인데요, 이젠 아니라고 봅니다.”

대담=김종혁 문화스포츠에디터
정리=배노필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 존 던컨 박사=1945년생. 미국 애리조나주(州) 출신. 미국에서 한국연구가 가장 활발한 UCLA 한국학연구소장이다. 주한미군 근무를 마친 뒤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고려대 사학과에 편입했을 만큼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강한 사람이다. 부인은 고려대에서 만난 대학 1년 선배. 미 하와이대와 워싱턴대에서 고려 말~조선 초에 대한 연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내의 대표적인 친한파 인사로 미국 중·고교 교과서에 있는 한국 관련 내용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한국을 1년에 서너 번씩 방문한다. 저서에 『조선 왕조의 기원』(2000), 『다시 생각하는 유교: 한·중·일, 베트남의 과거와 현재』(공편·2002)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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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뉴시스】노창현특파원 = 한인 2세들로 구성된 뉴욕취타대가 뉴욕 메츠의 홈구장 시티필드에서 신바람나는 공연을 펼쳤다.

이춘승 단장이 이끄는 뉴욕취타대는 14일(현지시간) 뉴욕 메츠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경기전에 열린 '플러싱 커뮤니티 나이트' 행사에서 한국 전통가락과 리듬을 뉴욕의 야구팬들에게 선사해 큰 박수를 받았다.

퀸즈한인회(회장 김금옥)의 주선으로 이뤄진 이날 공연에서 15명의 뉴욕취타대는 '아리랑'을 연주한데 이어 사물놀이의 신바람나는 리듬으로 뉴요커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뉴욕 취타대에 이어 공연한 루이 암스트롱 밴드는 난생 처음 보는 악기와 독특한 리듬에 매료돼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는 후문이다. 특히 5박자와 11박자 등이 반복되며 정형화된 리듬을 깨는 연주에 대해 질문세례를 하는 등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춘승(33) 단장은 "미국인에게 우리의 전통음악을 선보였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뉴욕의 유명한 루이 암스트롱 밴드가 우리의 독특한 타악기 리듬에 놀란 것 같다. 올해가 가기전에 공동 콘서트를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전했다.

지난해 10월 한인 2세들을 대상으로 해외 취타대로 유일하게 창단한 뉴욕취타대는 한인사회의 아이콘인 코리안 퍼레이드를 비롯, 각종 행사에서 한국의 전통음악을 연주하며 민간외교사절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취타대는 조선시대 임금의 행차 때 운라와 나발, 용고, 자바라 등 우리 전통 궁중악기들을 불며 제식행렬을 선보이는 악대로 이춘승 단장이 지난해 사비로 악기 30여점을 한국서 들여왔다.

한국의 타악기 명인으로 잘 알려진 이춘승 단장은 지난 2006년 7월 국악도 1호로 미국의 음악대학에서 합창지휘를 전공하고 있다. 국악관현악단의 지휘자를 꿈꾸는 그는 미국서 공부하면서 우리 2세들에게 전통음악을 통해 정체성을 심어주겠다는 일념으로 애쓰고 있다.

지난해에 '대한민국 취타대 여름캠프'를 처음 연데 이어 올해도 8월 23일부터 28일까지 포코노에서 여름 캠프(chunseung2@gmail.com)를 열고 취타대 연주는 물론, 사물놀이와 모듬북 연주도 가르칠 예정이다.

이춘승 단장은 "뉴욕취타대가 메이시스 추수감사절 퍼레이드와 할로윈 퍼레이드, 내년 2월에는 뉴올리언즈의 세계적 축제 마디그라 페스티벌에 초청 공연을 하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robi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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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한옥마을에서 한옥 체험을 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특히 일본과 독일, 프랑스인 등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한옥에 대해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보이고 있어 북촌 한옥마을 게스트하우스에서 여장을 푸는 경우가 많다.

한옥은 잠은 각자 방은 따로 자지만 툇마루 등 공유공간에서 서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열린공간이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만나자 마자 금새 친해지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이에 따라 외국인들끼리도 곧 바로 친구가 되는 열려 있는 공간이다.
북촌 한옥마을 게스트하우스에는 주로 일본 관광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것이 특징.
이외 독일인 프랑스인 등 유럽 사람들과 중국 대만 사람들도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보통 2~3개월 전 인터넷이나 전화를 통해 예약해야 한다. 예약금은 보통 전체 금액의 30%선.

아침은 토스트 햄버거 치즈 계란 우유 등이 냉장고에 넣어 있어 셀프로 간단히 식사할 수 있다.

◆북촌 게스트하우스(www. bukchon72.com )

종로구 계동 72 북촌 게스트하우스는 2004년 오픈한 유일한 서울시 등록문화재.

조선시대 배령 화가 집으로 방 5개를 한옥 체험 공간으로 내놓고 있다.
1명이 방 하나를 쓸 경우 하루 숙박료가 3만원. 방 크기에 따라 하루 7만원까지 받는다.

도자기 전시회나 사진 전시회를 보러 오는 일본인 단골 고객이 보통 2~3일 자고 가는 경우가 많다. ☎743-8530

☞찾아가는 길=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중앙고 정문방향 계동길로 도보 5분 거리
◆티 게스트하우스(www. teaguesthouse.com )

종로구 계동 15-6 티 게스트하우스는 2006년 3월 26일 오픈.
운영자인 이선교 대표가 황토와 천연 목재, 대나무 등으로 직접 만들어 자고 일어나면 심신이 개운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고 있다.한 것이 특징.

특히 티 게스트하우스는 전통 한국차를 무료로 맛 볼 수 있으며 한복도 대여해주는 것이 눈길을 끈다.

또 가족 단위의 단체 여행자들 대상의 연못과 대나무 정원이 딸린 별채를 갖추고 있어 독립적이고 아늑한 공간을 즐기실 수 있다.

티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되는 객실은 모두 7개. 싱글룸 4개와 더블룸 2개 그리고 스페셜룸 1개가 있다.

그리고 1층에 공용 부엌과 다실, 샤워를 할 수 있는 3개의 욕실, 그리고 2층에는 전용 욕실과 전용 차실이 갖추어진 별채 주변 공간에 대나무가 심어진 아름다운 정원과 연못이 있다.

특히 방마다 인터넷과 와이어리스가 설치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유럽사람들은 집에서 하루 종일 머물며 책을 보는 경우가 많다.
비용은 방 크기에 따라 5만~16만원 ☎ 3675-9877
티게스트하우스는 외국인 뿐 아니라 지방 사람들도 찾아오는 집. 그만큼 유명한 게스트하우스로 정평이 나 있다.

☞찾아가는 길=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현대빌딩 방향으로 가다 왼쪽 길로 600m
◆서울게스트하우스(www. seoul110.com )

'주몽'과 '순둥이'이란 이름을 가진 삽살개 두 마리가 손님을 반긴다.
주몽은 일곱 살로 대문을 들어선 기자를 보고 우렁차게 짖어댄다.

세 살배기 순둥이는 집 주인 현준희씨가 부르자 곧 바로 토방으로 올라온다.
두 마리 삽살개는 아침이면 이 곳을 찾는 손님들과 함께 북촌지역을 산보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요즘은 일본과 중국 사람들이 많이 묵어 간다.

서울게스트하우스에는 방 10개가 있다.
숙박료는 3만5000~20만원선. ☎745-0057
◆우리 집 게스트하우스

종로구 계동 104-3 현대 계동 사옥 옆에 있다.

우리집 게스트하우스는 집 주인이 생활하면서 방 3개를 게스트 하우스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

가수 이정미 등이 참여하는 마당음악회도 종종 열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사랑채는 1인이 하루 이용시 5만원, 단독은 7만원. ☎744-0536
◆소피아게스트하우스

종로구 소격동 157-1. 지난해 10월 오픈했다. 방 10개.

주인 서정아(세례명 소피아)씨는 만화작가였다가 한옥이 좋아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게 됐다.
유럽사람들은 보통 1주일 정도, 일본과 대만 사람들은 3박4일 정도 묵다 가는 경우가 많다.

주로 일본 독일 스위스인들과 중국 대만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다.
1박 1인실 경우 3만5000~4만원. 2인실은 5만~7만원. ☎720-5467
◆락고제

재동초등학교 바로 뒤편에 있는 락고제(옛것을 즐긴다)는 한옥체험 주택 중 이용료가 가장 비싼 집이다.

2003년 오픈한 락고제는 방 6개. 1인실 경우 하루 묵는데 20만원. 2인 1실은 15만원. 4인 1실은 45만원이다.

락고제는 다른 한옥과는 달리 아침과 저녁을 푸짐한 한정식을 제공한다. 다만 저녁 식사를 하지 않을 경우 10%를 할인해준다.

또 찜질방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방마다 화장실과 샤워시설과 냉장고 시설도 갖춰져 있다. ☎742-3410~1

박종일 기자 dre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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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땅, 간도를 이대로 놔둘 겁니까? 이제 3주가 지나면 국제법상 간도는 영원히 중국의 땅이 됩니다.”

한 재미동포가 우리 민족의 고토 간도를 수복하기 위한 피맺힌 절규를 하고 있다. 주인공은 뉴욕의 폴 김(59·김태영) 박사. 김 박사는 10일(현지시간) “오는 9월4일이면 중국이 ‘우리 땅’ 간도를 실효 지배한 지 꼭 100년째가 된다. 100년은 국제법의 관례에서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최후 시한이다. 그 시한이 지나면 우리는 간도를 돌려달라는 합법적인 주장조차 제기할 수 없게 된다”고 관심을 촉구했다.

간도가 중국에 ‘공식적으로’ 넘어간 것은 1909년 9월4일 당시 청나라가 일본과 '간도협약‘을 맺고 이 지역의 철도부설권을 받는 조건으로 조선땅 간도를 넘겨주었다. 당시 일제는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조선 정부의 외교권을 박탈한 상태에서, 외교권을 불법적으로 사용, 그 자체가 무효인 것은 사실이다. 또한 1965년 일본 정부가 간도협약을 무효로 한다는 국제사회에 선언하기도 했다.

물론 중국이 간도를 현실적으로 점유하고 있지만 나중이라도 되찾을 근거를 만들기 위해선 국제법상 법률 시효 기한인 100년 안에 공식적인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 100년 초읽기에 들어간 현재까지 남북한 어느 정권도 수수방관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 박사는 “만일 누군가 소송을 제기하면 100년의 법률 시효를 묶어 둘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사비를 들여서라도 국제사법재판소에 소송을 하려고 많은 법조인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하지만 국제법상 소송 주체는 국가나 국제연합 관련 단체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 박사는 지난해 4월15일자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대한민국 영토 회복에 따른 국제사법 재판건’이라는 제목의 탄원서를 78명의 뉴욕 뉴저지 한인들의 서명지와 함께 발송했다. 김경근 뉴욕총영사와 UN의 반기문 사무총장에게도 참조 공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답신 등 일체의 반응이 없었고 김 박사는 다시 지난 6월15일 서한을 재발송했다.

이번에는 지난해 탄원서는 물론, 청·일 간 간도협약 무효 확인 요청 및 국제사법재판소송건이라는 소장을 한글과 영문으로 만들어 보냈다. 양식을 완벽하게 갖췄으니 대한민국 관인만 찍어 사법재판소에 보내달라는 읍소였다.

김 박사는 “이명박 대통령께 7월31일까지 정부의 입장을 알려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했지만 이번 역시 아무런 회신이 없었다. 이제 간도는 갑론을박하고 탁상공론을 할 시간이 없는 촌각을 다투는 일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우리 영토라는 주장을 공식적으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민간단체에서 실행하겠다”며 비장한 각오를 보이고 있다.

그는 우리 역사에 대한 일제의 왜곡과 한민족 역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1999년 ‘한민족 사관 정립 의식 개혁회’를 조직했다. 간도협약 99년을 맞은 지난해 9월에는 간도 문제를 풀기 위해 온 몸을 던질 각오로 ‘간도 되찾기 운동 본부’ 뉴욕 지부장을 맡았다. 뉴욕지부는 미국에서 유일한 간도 단체이다.

그는 “간도는 조선족 동포들이 많이 거주하는 랴오닝성과 지린성, 헤이룽장성 등 동북 3성 지역을 통틀어 부르며 한반도의 3배 크기다. 간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은 백두산 정계비를 비롯, 숱한 증거가 있다”며 “소위 서북공정의 이름으로 신장위구르 지역과 티벳에 신경 쓰던 중국이 간도를 영구히 저들 것으로 만들기 위해 시작한 것이 동북공정을 통한 고구려 역사 왜곡이었다”고 설명했다.

재야 사학자인 그는 애리조나 주립대에서 경제학으로 박사 학위(Ph. D)를 받았다. 하지만 서로 다른 분야의 준학사부터 박사까지 다양한 학위를 갖고 있는 독특한 이력의 주인공이다. 한국에서 화공학 학사 학위를 받고 모 전문대에서 임상병리학을 전공했다. 이후에 고려대 대학원에서 무역학 석사학위를 받고 잠시 실무를 익히기도 했다.

서른살 이 넘어 미국 유학을 결심한 그에게 고려대 대학원에서 논문을 지도한 김완순 교수가 “기왕에 공부하려면 학사 과정부터 하는 게 좋다”는 권유에 애리조나 주립대에서 대학 과정으로 시작하는 만용(?)도 부렸다. “지금 다시 하라면 절대로 못할 일이었어요. 몰랐으니까 그 공부를 했지요. 하지만 공부하고 나니까 어떤 미국인하고 얘기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생기더라구요.”

내친 김에 애리조나주립대에서 석사와 박사까지 마쳤다. 10년이 넘는 긴 세월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성에 안찼던지 플러싱에서 교육 사업을 하면서 NYU(뉴욕대)에서 TESOL까지 공부하는 등 지칠줄 모르는 학구열을 불태웠다. 스스로도 책읽고 공부하는 게 취미라고 하다시피 어찌보면 40년 동안 공부만 한 셈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일곱 번째이자 마지막 연구 대상이다. 그리고 그것에 김 박사는 남은 인생을 걸고 있다.

매 주 토요일 자신의 강의실에서 무료 역사강연회를 열고 있는 그는 “간도 문제는 민족의 자존심과, 후손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일제에 ‘도시락폭탄’을 던지고 산화한 윤봉길 열사의 심정으로 모든 걸 걸겠다”며 뜻있는 이들의 동참(doctorkim@gmail.com)을 바라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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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 입력 2009.08.08 22:12 | 수정 2009.08.08 22:15

 

[뉴스데스크]

◀ANC▶

우리 이웃의 일상을 밀착해 들여다보는 연속기획 하루입니다.

오늘은 의사부터 초등학생까지 수백 명의 자원봉사로만 운영되는 쪽방촌의 어느 병원 이야기입니다.

전재호 기자입니다.

◀VCR▶

신경외과 전문의 고영초 박사의 하루는

아침부터 2개나 잡혀 있는 수술로

시작됐습니다.

수술실 안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

환자들을 진찰하고 상담하느라 바쁜 일상.

예순을 바라보는 의사에겐

힘에 부치는 일과였지만, 매주 수요일엔

퇴근 뒤 일과가 더 남아있습니다.

영등포 쪽방촌에 숨은 듯 자리한 요셉의원.

노숙자와 외국인 근로자,

건강보험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을

무료로 치료해주는 곳입니다.

◀SYN▶ 고영초 신경외과전문의/22년 봉사

"예전에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었어요.

냄새도 나지, 때로는 성질이 보통이 아닌

사람들도 있었고요...""

오늘은 30분이나 늦었습니다.

이미 22년째 해온 일이지만

기다리는 환자 생각에 마음은 항상 급합니다.

◀SYN▶ 고영초

"여기 오는데, 뭐 큰마음 먹고 오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고요. 여기 아니면

도움을 받기 힘든 사람들이 많잖아요."

낮 1시부터 문을 여는 병원은

저녁이 되면서 붐비기 시작합니다.

원장 신부님이 사용하던 방은 안과로 바뀌고,

몇 안 되는 방은 그날그날 진료 과목에 따라

치과 내과, 피부과로 변신합니다.

◀EFFECT▶

"옛날 옛날에 왔는데요.

[치과가 처음이에요?] 예."

약국도 방사선 촬영도

모두가 자원봉사자입니다.

10여 개 진료과목, 120명의 의료진이

요일마다 두세 시간씩 봉사하기 때문에

종합병원이 되는 겁니다.

◀SYN▶ 정재림 안과전문의

"안과의사라는 그런 조그만 달란트(재능)를

이용해서 제가 받은 은혜를 사회에 다시

봉사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병원 1층은 식당이기도 합니다.

제대로 먹지 못해 생긴 병이 많다 보니

고기반찬을 준비했는데, 소문이 나면서

가장 붐비는 식당이 됐습니다.

◀SYN▶ 윤마리아/식당봉사

"2시간에서 3시간씩 자기에게 맡겨진 시간,

자기가 맡은 시간에 오셔서 봉사가고 가시죠."

정부지원금 한 푼 없이

전현직 의사에서 가정주부,

회사원에서 초등학생까지

6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지난 87년부터

40만 명의 이웃을 돌봐왔습니다.

◀SYN▶ 이문주 원장/요셉의원

"처음부터 후원자들에 의해서,

또 봉사자들에 의해서 시작됐거든요.

그 정신이 합쳐져서

오늘까지 이어져 오는 거죠."

누군가 내려놓은 두세 시간이 모여서

요셉의원의 하루는 그렇게 만들어져왔습니다.

◀SYN▶ 고영초

"이거 돈도 안 들고, 그냥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체력을 남을 위해서 조금만 써주면

그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나도 아주 기쁘고..."

MBC 뉴스 전재호입니다.

(전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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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스타일리포터로 활동하고 있는 김선화, 노준현입니다. :)
어느덧 여름이 다가오고 있네요. 창 밖으로 푸른 녹음과 맑은 하늘을 보고 있자면, 다가올 뜨거움이 느껴지지 않나요? 여름이 열정적인 계절로 기분을 짜릿하게 하는 것처럼 오늘은 가만히 보고 있어도 뜨거움이 느껴지는, 그런 분을 한 번 모셔볼까 합니다! 바로 대학생들이 모여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 ‘프리메드’를 이끌어가고 있는 ‘송호원’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기대 되시죠? :)

의대생이 꿈 꾸는 세상, 그리고 '프리메드’
 우 선 ‘사회적 기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살짝 짚고 가볼까요? 사회적 기업이란, 사회의 취약계층에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기업으로서의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을 뜻합니다. 일반적인 기업이 이윤 추구가 중요한 목적인 것에 반해, 사회적 기업들은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 그 주 목적이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아름다운 가게’로 널리 알려진 기업 형태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송호원씨가 대표로 있는 ‘프리메드’는 대학생들이 모여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죠! 과연 ‘프리메드’는 어떤 기업일까요?

의대생이 꿈 꾸는 세상, 그리고 '프리메드’
 ‘ 프리메드’는 송호원씨와 몇몇 친구들의 아이디어로 시작하여, 사회 사각지대의 취약계층에 무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시작한 대학생들의 기업입니다.. 크게 의료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본부와 여러 이벤트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영본부로 나누어 40명 정도의 대학생들이 운영하고 있어요. 현재 이들은 ‘프리메드 버스’를 이용, 주말에 을지로입구역과 경기도의 마석 가구공단에서 무료 진료서비스를 진행하고 있고, 이를 비롯하여 ‘FreeMed 디자인 상품’과 ‘1,000원 수술’, 두 프로젝트를 통해 사각지대에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정보는 프리메드 공식 사이트 (http://www.freemed.or.kr/)를 통해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대학생들이 운영해나가는 ‘프리메드’,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오늘 만나볼 송호원씨가 있었습니다. 얼른 만나보고 싶죠? 저희는 너무도 날씨가 화창했던 주말,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주신 프리메드의 리더 송호원씨를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의대생이 꿈 꾸는 세상, 그리고 '프리메드’

Q. 반갑습니다! 간단히 자기소개 좀 해주세요! :) 
안녕하세요. 송호원이라고 합니다. 저는 연세대 의과대학 본과 3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이고, 미래에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인 젊은이입니다.

이번에 프리메드를 운영하게 되면서 주위에서 저를 기업가로 생각하시고 어렵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도 남과 다르지 않은 소박한 꿈을 가진 대학생입니다. 예로, 프리메드를 시작할 수 있었던 계기 연세대학교의 ‘의청’이라는 봉사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였는데요. 이 동아리를 가입한 것도 의사와 간호사로 서로를 만나신 부모님처럼 저도 제 소울 메이트를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이었거든요. :) 아직 그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것 같지만요... :)

 Q. 가까운 시일에 그 꿈도 이루셨으면 좋겠네요! ^^ 그럼 프리메드는 의료 봉사활동을 하면서 구상하기 시작한 건가요?

네. 봉사 동아리를 통해 사회 구석구석에 의료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기회가 많았습니다. 외국인 근로자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스폰서십이 필요로 했어요.

하지만 스폰서십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고 그러던 와중에 공교롭게도 지난 2008년, 제가 회장을 맡게 된 시점이 지금의 세계 경기 침체가 시작되던 때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기존의 지원금들이 조금씩 줄어들게 되더라고요. 당시 동아리를 이끌어가던 입장에서 당연히 저는 많은 걱정이 되었죠.

그 때, 친한 형이 ‘보노보 혁명’이라는 책을 추천해주었습니다. 그 책에서 저는 ‘아라빈드 안과 병원’이라는 예를 통해 사회적 기업의 의미를 알게 되었는데요. 그 병원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무료 시술을 해주지만, 부유한 층에 차등 책정된 치료비를 받아, 외부의 지원 없이 하나의 기업체로서 사회적 활동을 지속하는 모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지금의 프리메드와 같은 조직을 만들기로 하고, 구상을 시작했습니다. 외부의 지원에 의존하는 동아리의 한계를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을 빌려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의대생이 꿈 꾸는 세상, 그리고 '프리메드’

Q. 그래도 대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사회적 기업’이라 불릴만한 조직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먼저, 프리메드가 사회적 기업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여쭈어보는 분들이 많아서 그 이야기를 조금 해보고 싶습니다. 국내에는 현재 213개의 조직이 사회적 기업으로 등록되어 있어요. 그러나 ‘아름다운 재단’과 같이 안정적인 수익 모델을 갖춘 경우를 제외하고는, 많은 경우가 사회적 기업으로 등록하면서 얻을 수 있는 외부 지원금을 통해 지출의 어느 정도를 충당합니다.

프리메드도 마찬가지로 100% 독립적인 수익모델을 갖추고 있지는 못합니다. 솔직하게 말씀 드리자면 프리메드가 사회적 기업인가 아닌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를 동아리로 생각하셔도 좋고, NGO라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프리메드라는 단체를 통해 사회에 더 많은 가치를 전달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는 조직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프리메드는 저와 친구 셋이 함께해서, ‘희망제작소’에서 주최하고 JP모건에서 후원했던 ‘사회적 기업 아이디어 대회’에서 대상을 시상하면서, 속도가 붙어 바로 두 달 만에 첫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같이 아이디어를 만든 친구들과 더불어 다른 친구들이 하나 둘 함께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경영본부와 의료 지원 팀으로 크게 나뉘어 45명 정도의 동료들과 함께하고 있어요.

저는 프리메드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이 일을 단지 하나의 도전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노력과 과정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저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게 더 좋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함께하는 학생들과 열심히 노력했고, 좋은 아이디어를 통해 더 많은 것들을 해나가려 하고 있습니다.

Q. 학업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시기일 텐데, 이런 큰 활동까지 하고 있다니 대단하시네요! ^^ 이렇게 사회에 공헌하는 일을 진행하게 된 본인의 가치관 또는 계기가 있나요?

사실 저는 처음에는 무엇이 되었든 제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었습니다! :) 그게 한동안 저를 이끌어주던 비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이 조금 바뀐 것은 이번 미국에서 시작한 금융위기가 터지고 나서 일어난 일들을 보면서였지요.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던 이름 있는 투자 은행들이 무너지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제가 놀랐던 것은 그런 상황을 보고 사람들이 동정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리 될 줄 알았다’라고 비아냥거리던 것이었죠. 그 때 저는 적어도 제가 앞으로 할 일만큼은 결말이 좋지 않을 때 이런 반응이 돌아오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이 중심이 되던 가치관에서 조금씩 벗어나, 지금은 많은 사람들과 가치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과 가치를 나눈다’라는 가치관을 가지게 되니, 막상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생각해보면, ‘의료’라는 분야에서 그 동안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예로 의약 분업 때의 이루어졌던 의료 파업을 생각해본다면, 정당한 부분도 분명히 있었지만 사회와 소통을 하는 방법이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에겐 프리메드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의료 분야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회라고 느꼈습니다. 한마디로, 저에게 프리메드는 의료 서비스를 통해 하는 사회와의 의사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Q. 실제로 프리메드 이외에도 많은 과외 활동과 공모전에 관심이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유독 과외활동에 흥미를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해온 활동으로는 대학생 국책 자문 위원단, YLC, 의청이 있었고, 그리고 지금의 프리메드와 연세대학교 경영 컨설팅 학회 YMCG에 들어가서 활동 중에 있습니다. 물론 의학과 관련된 활동들은 아니지만 굉장히 저에게 고무적이고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활동들이에요.

그치만 아예 저의 꿈과의 연관이 없는 게 아니라 실제로 매우 닮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공모전과 같은 경영에 대한 것들은 주어진 환경을 분석하여 빠르게 상황에 대처하고 전략을 구상하는 문제 해결 방법인데 이 방법은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는 것과 매우 상통해요.

의사는 환자를 보고 빠르게 그 원인과 증상을 진단해야 하는 말 그대로 전략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공모전이나 다양한 과외활동들을 통해서 가장 매력을 느끼는 점은 바로 ‘인사이트’에요,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사이트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활동들에 매력을 느끼고 열심히 하려고 노력합니다.

의대생이 꿈 꾸는 세상, 그리고 '프리메드’

Q. 그렇다면 학생으로서, 그리고 한 단체의 대표로서 굉장히 바쁘실 것 같은데, 특별히 시간관리를 하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시간 관리를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예요. 물론 철저하게 자신의 시간을 관리하는 것은 기본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지나치게 되면 ‘인간미’를 잃게 되는 건 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리메드라는 단체를 이끌면서 혼자 하는 일이 아닌, 하나의 팀으로써 일을 하게 되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저는 남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고 그 들을 이해함으로써 훌륭한 팀웍을 갖추는 게 저 말고도 모두를 위한 소중한 시간관리라고 생각해요.

제 좌우명도 이런 얘기랑 어울리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들어 보시겠어요? 제 좌우명은 ‘내 자신을 믿고, 내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을 믿고, 그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말자’입니다. 제 자신을 믿고, 또 그만큼 함께하는 사람들을 믿을 때 소중한 시간을 아끼는 동시에,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이렇게 인생을 열정적으로 살아서 궁극적으로 송호원씨가 그리는 미래의 송호원씨는 어떤 사람일거 같아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에요. 그게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 같아요. 그치만 스스로 몇 가지 다짐해둔 것이 있다면 지금의 이 뜨거운 마음을 잃지 않고 겸손함을 지키는 것. 그리고 누구에게라도 부끄럽지 않은 송호원이 되는 거에요.

사실 진로에 대해서 걱정이 많으신 부모님께서 지금 하고 있는 프리메드 언제 그만 둘 거냐고 하루에도 몇 번씩 말씀하시지만, 10년 뒤 지금의 저한테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요. 아마 이 활동으로 인해 더 따뜻한 의사가 되어있지 않을까요^^

Q. 마지막으로 호원씨에게 ‘내 스타일은 이런 것이다!’라고 한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만의 스타일이라... :) 제 자신을 표현해보자면 의과대학생이라는 것이 줄 수 있는 편견으로 제한되지 않는 새로움을 꿈꾸는 학생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러한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하고자 하는 일은 끝까지 성공하게끔 하고 싶은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이 정도가 남들이 ‘송호원’이라는 사람을 볼 때 느끼는 스타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의대생이 꿈 꾸는 세상, 그리고 '프리메드’

언제나 꿈을 향해서 뜨겁게 달려가는 송호원씨의 열정이 그대로 전해졌기를 바라며, 이상 스타일 리포터 노준현, 김선화 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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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문자보다 우수하다"
아(亞) 소수민족 찾아다니며 학자들이 '한글 세계화'
정부차원 총괄단체 절실

말은 있지만 문자가 없는 소수민족에게 한글을 표기수단으로 전파하는 운동은 민간 차원에서 여러 차례 전개되어 왔다.

이현복(73)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글 해외전파'의 개척자이다. 이 교수는 1994~2003년 매년 두세 차례 태국 북부의 소수민족인 라후(Lahu)족을 찾아 한글을 전파하는 활동을 펼쳤다. 처음 5년은 라후어의 음운을 분석하는 작업을 통해 어떤 글자가 필요한지 연구했고, 이후 산골마을 사람 20여명을 대상으로 라후어를 한글로 표기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우리말 발음에 없는 목젖소리나 콧소리 등을 표기하기 위해 한글 자음과 모음을 24개에서 80개까지 늘린 '국제한글음성문자'(IKPA·International Korean Phonetic Alphabet)도 개발했다.

이 교수가 한글 해외전파에 관심을 가진 것은 영국 런던대에 유학하던 1960년대부터였다. 그는 "로마자를 뿌리로 하는 국제음성기호(IPA)보다 한글이 훨씬 뛰어난 음성체계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훈민정음학회가 찌아찌아족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만 ‘쓰기’(부리) 교재. 왼쪽 위에 한글로 적은 ‘렝까뿌에 깔리맏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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