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연합뉴스) 김인유 기자 = 경기도 광주시 산란계 농가들이 소비자와의 직거래를 통해 농가소득을 올리려고 아파트에 설치한 '달걀자판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대박이 났다.

광주지역 6개 산란계농가로 구성된 다한영농조합법인은 지난해 11월 1일 광주시 경안동 해태그린아파트 단지 내 관리사무소 옆에 '달걀자판기' 한 대를 설치했다.

높이 1.75m, 너비 1.5m 크기에 내부 온도조절을 위한 냉장시설과 공기순환장치를 갖춘 이 달걀자판기는 커피 자판기처럼 지폐나 동전으로 2천500원을 넣으면 10개들이 달걀 한 팩을 살 수 있게 만들어졌다.

일반 자판기처럼 물건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면 달걀이 깨지기 때문에 우편함처럼 1-40번까지 번호가 매겨진 보관함 40개에 달걀 꾸러미를 넣어 두고 소비자가 돈을 넣고 원하는 번호를 누르면 투명 아크릴판 문이 열리는 방식이다.

다한영농조합법인이 농가소득 증대와 브랜드홍보 방안을 고민하다 일본에 있는 달걀자판기에 착안, 광주시에 사업제안을 해 자판기 개발비 등을 지원받아 자판기 한 대를 만들어 시범적으로 설치했다.

영농조합과 광주시는 "재고가 남지만 않아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판매 추이를 지켜봤지만, 아파트 주민의 반응은 의의로 뜨거웠다.

이 자판기에서는 하루 평균 200개(10개 들이 200꾸러미), 한 달 평균 6천개의 달걀이 팔려나갔다. 이 아파트 300여 가구가 월 평균 20개의 달걀을 사먹은 셈이었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달걀보다 1천원 가량 싼 데다 매일 아침 갓 낳은 신선한 달걀을 공급한 것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의의의 성과에 고무된 영농조합과 광주시는 목현동 신일아파트, 태전동 e편한세상, 도평리 대주아파트, 산이리 대주아파트와 코아아파트, 양벌리 우림아파트 등 6개 아파트 단지에 달걀자판기를 추가로 설치했다.

지난달 29일에는 송정동 광주시청사에도 달걀자판기가 설치됐다.
이들 달걀자판기 한 대마다 매달 150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고 광주시는 설명했다.
달걀자판기 덕에 영농조합법인은 시장 상인에 국한됐던 달걀 판로를 일반 시민으로 확대한데다 달걀 한 개당 판매 단가도 기존보다 100원 이상 높게 받게 되면서 농가소득에 도움을 받고 있다.

시 관계자는 "달걀자판기는 농민들에게는 소득을 높여주고 소비자에게는 신선하고 싼 농산물을 먹을 수 있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면서 "시민의 인기를 끄는 만큼 앞으로 2대를 추가로 설치하고 장기적으로는 시 전역에 달걀자판기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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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디지털교과서 美서 러브콜
시공미디어, 교육콘텐츠 `아이스크림`…국내 초등학교 98% 이용






국내 기업 시공미디어(대표 박기석ㆍ사진)가 만든 디지털교과서 아이스크림(i-Scream)이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러브콜을 받고 있다.

특히 내년부터 미국 초등학생들도 시공미디어 아이스크림으로 공부하게 될지도 모른다. 박기석 시공미디어 대표는 지난달 25일 기자와 만나 "현재 미국의 한 주로부터 초등학생용 교과서를 전달받아 콘텐츠 제작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라며 "작업이 완료되고 최종 결정이 나면 내년 9월부터 이 지역 240개 학교 4000학급이 시범 형태로 아이스크림으로 수업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스크림은 시공미디어가 2000년부터 10년간 준비해 지난해 처음 선보인 디지털 교육 콘텐츠다. 아직 영어 버전 웹사이트도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벌써 외국 출판사들로부터 제휴 제의가 끊이지 않고 있을 정도다.

아이스크림은 지난해 3월 선보일 때만 해도 시장 상황을 보기 위해 무료 서비스로 제공했지만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1년 만에 전국 초등학교 98%에 달하는 5800개 학교 교사 8만6000명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그런데 지난 3월 유료 서비스로 전환되자 오히려 가입자가 더 늘었다.

현재 전국 초등학교 학급 기준 71% 이상인 교사 9만명이 가입하고 있다.

박 대표는 "10년 전 이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다들 콧방귀를 뀌며 이상하게 쳐다봤다"면서 "하지만 10년보다 더 먼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했다"고 말했다.






아이스크림은 박물관, 과학관 등 전시 전문업체 시공테크가 20년간 쌓아온 자료 300만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동영상은 KBS, BBC, AFP, 디스커버리와 같은 국내외 미디어 등과 제휴해 공급받았다.

박 대표는 "예를 들어 낙동강 생태전시관을 만들면서 개구리, 매미, 물고기 사진을 몇 백장씩 찍었다"며 "이 자료들은 우리가 저작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디지털 콘텐츠로 제작하는 데 문제가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이른바 `로 데이터(raw data)`를 교육 현장에 맞도록 재가공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던 것. 1시간짜리 디스커버리 다큐멘터리는 2~3분으로 축약해 각 교과에 맞게 실었다.

이를 위해 투자한 돈만 10년간 200억원이 넘는다.

유료로 전환한 후에는 인증시스템을 통해 오직 현직 초등학교 교사만 가입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학급당 1년에 3만9000원을 받고 제공하고 있다.

아이스크림의 장점은 교사들이 쉽게 구할 수 없는 자료를 저작권 걱정 없이 제공할 뿐 아니라 1~6학년 전 교과서를 분석해 해당 콘텐츠와 연계되는 단원과 페이지를 바로 열어볼 수 있도록 한 것.

또 아이스크림이 제공하는 플랫폼과 콘텐츠를 활용하면 교사가 자신만의 커리큘럼을 구성할 수도 있다. 아이스크림이 미처 싣지 못한 자료들은 교사가 요청하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다. 지금까지 교사들 요청으로 업데이트된 자료만 3000건이 넘는다.

박 대표는 "지난 3월 안양 초등생 납치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납치 안전교육 자료 요청이 들어와 바로 업데이트가 됐다"며 "교사들조차 월 3000원씩 받아서 회사 망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한다"고 웃었다.

풍부한 콘텐츠 때문인지 사설학원이나 학부모에게서 가입하게 해달라는 요청을 수없이 받는다.

박 대표는 "사실 지금까지 교육의 질은 강사 수준으로 판단됐지만 공교육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좋은 콘텐츠 제공이 우선돼야 한다"며 "내년에는 중학생용과 월 5만원 이내로 사용할 수 있는 학생용 콘텐츠를 별도로 내놓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시공미디어는 올 하반기부터 해외 진출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우선 9월 미국에서 열리는 교육 콘퍼런스에서 영어 버전을 처음 선보일 예정이다. 내년에는 디지털 교육 콘텐츠를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는 사이버몰도 개설할 계획이다.

박 대표는 "리스크는 크지만 단번에 대박을 칠 수 있는 영화, 게임, 드라마와 같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사업과 달리 우리는 쉽게 할 수는 없지만 100년 이상을 갈 수 있는 지식 콘텐츠 사업을 한다"며 "글로벌 비즈니스로도 손색이 없어 내년에 매출 500억원 달성도 무난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공미디어는 아이스크림 유료 전환 첫해인 올해 디지털 교육 콘텐츠로만 50억원, 전체 매출은 140억원을 올릴 것으로 예상한다.

[안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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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양=연합뉴스) 박종국 특파원 = 중국 선양(瀋陽)에 거주하는 교민들이 중국인들을 돕기 위해 펼치는 '은혜 이슬'운동(회장 김기식)이 중국땅을 적시고 있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딱한 처지에 놓인 한 중국인 초등학생을 학업을 마칠 때까지 계속 돌봐주자는 소박한 취지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2004년 12월 첫 발을 내디딜 때만 하더라도 발기인이 20여명에 불과한 소규모 기부운동이었다.

알음알음 알게 된 교민들이 모이면서 지금은 회원이 330여명으로 불어났고 지원받는 중국인도 65명에 이른다.

한 달 7천-8천 위안의 후원금을 모아 초등생은 100위안, 중.고.대학생은 200위안을 지원하고 있으며 독거노인과 장애인, 고아원 등으로 후원 대상을 넓혀가고 있다.

후원 대상이 대부분 부모의 관심과 손길이 필요한 결손 가정의 자녀이거나 생계 능력이 없는 노인들이라는 것을 알고는 매달 한 차례씩 방문해 말 벗도 돼주고 집안 일도 거들어 주는 것은 물론 이미용과 의료진료 등의 자원봉사활동도 해오고 있다.

교민들이 안 쓰는 물건들을 모아 전달해 주는 것도 회원들의 몫이다. 대학생 회원들은 자매결연한 학생들의 학업도 지도해주고 있다.

유방암에 걸린 30대 여성이 은혜이슬운동본부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아 건강을 되찾았고 2명의 중증 장애인들은 손발이 돼주는 회원들의 도움으로 생활이 한결 나아졌다.

랴오닝(遼寧)성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꼽히는 푸신(阜新)의 한 초등학교 학생 13명이 학비는 고사하고 수업 준비물도 챙겨올 형편이 안돼 학교 측으로부터 "더 이상 학교에 올 필요가 없다"는 통보를 받아 낙담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이들을 모두 수혜자로 선정, 돌보고 있다.

학생들이 "도움 덕분에 학교에 잘 다니고 있고 성적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며 "저희도 커서 남을 돕는 사람이 되겠다"는 감사의 편지를 보내와 회원들의 마음을 짠하게 만들기도 했다.

첫 수혜 대상이었던 학생이 대학을 졸업, 어엿한 회사원이 돼 매달 후원금을 내는 회원으로 활동할 만큼 이 운동은 짧지않은 연륜을 쌓았다.

2007년 4월에는 후원자와 수혜자들이 함께 문화축제를 열어 흥겹게 어우러지기도 했다. 올해 10월에도 풍성한 문화축제를 열어 수혜자들에게 용기를 심어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 금융 위기가 닥치면서 귀국하는 회원이 늘고 후원금도 줄어 눈물을 머금고 11명에 대한 후원을 중단한 것이 회원들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회원들은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새로운 시도로 더 많은 후원자들을 확보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동전의 희망' 프로젝트가 그 것으로 집에 묵혀두고 사용하지 않는 동전을 모아 더 많은 이들을 돕자는 구상이다.

다음 달 2만개의 저금통을 교민들의 가정과 기업, 기관에 나눠준 뒤 회수해 수혜자를 500명으로 늘리겠다는 것이 은혜이슬운동본부의 포부다.

중국 중앙한인회도 이 운동에 동참, 중국 전역에 5만개의 저금통을 배포하기로 하면서 선양에서 출발한 은혜이슬운동이 중국 전역으로 확대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주선양 한국총영사관도 적극적인 후원을 약속했다.

김기식 회장은 "더불어 사는 중국인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진심을 전한다면 중국 내 일각에서 일고 있는 혐한(嫌韓) 분위기도 사라질 것"이라며 "한 명, 한 명이 베푸는 은혜의 이슬로 세상을 촉촉하게 적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024-2347-1028)

pjk@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haohao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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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종 로열티 年 135억원 '굴레
국산품종 꾸준히 개발… 장미 점유율 1%- > 8% 결실

가장 대중적인 꽃이라 할 수 있는 장미와 국화. 누구나 좋아하는 과일인 딸기와 키위(참다래). 3,4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 재배되는 이들 작물은 외래종 일색이었다. 토종은 사실상 '씨'가 말랐다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 장미, 경기도농업기술원는 '그린뷰티'를 개발해 처음으로 해외에 품종 보호권을 판매했다. 이르면 연내 로열티를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 키위(참다래), '제시골드' ' 한라골드' 2개 품종이 뉴질랜드의 '제스프리골드' 에 대항하고 있다. 제주·경남 등으로 보급이 늘어 4~5년 내 제스프리골드를 제칠 것으로 기대된다.

↑ 딸기, 일본 품종에 거의 의존했던 딸기는 국산품종 '매향'' 설향' 등을 개발해 2005년 5%에 그친 점유율을 작년 43%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외래종 종자를 쓰는 대가는 만만치 않았다. 키위의 대표브랜드로 꼽히는 '제스프리골드'는 국내 키위 생산의 10%를 차지하고 있지만, 제주의 계약재배 농가들은 판매액의 15%를 꼬박꼬박 로열티로 뉴질랜드 제스프리사로 보내고 있다. 18일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우리 농가가 외래 종자 및 종묘를 구입해서 쓰고 그 대가(로열티)로 해외에 지불해야 하는 금액은 지난해만 무려 135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종자주권'을 되찾기 위한 토종 종자들의 약진이 눈부시다. 특히 로열티 부담이 큰 장미, 국화, 딸기, 키위가 외래종 골리앗에 도전장을 내밀기 시작했다.

농진청이 개발한 '제시골드' '한라골드' 등 순수토종 골드키위 2개 품종은 '제스프리골드'에 대항해 기염을 토하고 있다. '제시골드' 등 토종 골드키위가 선보인 지는 3년밖에 되지 않았고, 재배면적도 아직 제스프리골드의 절반에 못 미친다. 그러나 토종 골드키위는 로열티 한푼 물지 않고 인건비는 30% 정도 낮추면서 제스프리보다 40%정도 더 비싼 가격에 팔려 나간다.

김성철 농진청 온난화대응농업연구센터 연구사는 "토종 골드키위 재배 면적이 지난해 30㏊에서 올해 50㏊로 늘어나는 등 빠른 속도로 보급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약 10억원 가량의 로열티를 절약할 뿐 아니라 4~5년내에는 점유율에서도 제스프리골드를 앞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 품종에 거의 의존하다시피 했던 딸기는 '매향' '설향' 등 국산 품종의 개발ㆍ보급으로 토종의 보급률이 2005년 9%에서 지난해 43%까지 높아졌다. 2012년에는 딸기도 다른 농작물처럼 종자 로열티 지불 의무가 생기는 만큼 국산 품종 보급률을 올해 60%, 내년 70%까지 끌어올려 토종 종자로 일본 품종을 대체하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이렇게 되면 연간 30억원 가량의 로열티를 절감하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장미와 국화도 전략적으로 국산 신품종 개발ㆍ육성이 집중되면서 국산품종 점유율이 2005년 1%에서 지난해 8%까지 높아졌다. 특히 장미의 경우, 경기도농업기술원이 개발한 '그린뷰티'는 국산 품종으로는 처음으로 해외로 품종보호권이 판매됐는데, 올해 에콰도르 농가에서 재배가 시작돼 이르면 연내 로열티를 받을 수도 있다.

해외 로열티 지불액은 우리나라가 식물 분야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는 '국제 식물 신품종 보호동맹(UPOV)'에 가입한 첫해인 2002년 13억8,000만원에서 2004년 50억4,000만원으로, 2006년 125억9,000만원, 2007년 133억1,000만원으로 5년만에 10배 이상으로 불었다.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품종보호 대상 작물이 2002년 113개에서 지난해에는 223개로 늘면서, 로열티 부담도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중 로열티가 많이 나가는 작물로는 장미(72억원), 난초(26억원), 키위(15억원), 국화(10억원)가 상위권을 달린다.

반면 우리나라가 품종을 수출해 다른 나라로부터 받는 로열티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호밀품종인 '윈터그린'이 2003~2007년 캐나다로부터 3만달러를 받은 게 거의 전부다. 품종 로열티 수입은 사실상 제로(0)에 가깝다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박종현 농진청 연구관은 "아직도 해외로 나가는 종자로열티가 막대하지만 우리도 국내 농가의 로열티 부담을 덜기 위해 외국산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순수 토종 신품종을 개발, 보급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국내 시장은 물론이고 그린뷰티(장미)처럼 해외 시장 공략에도 성공하는 사례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문향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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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일본과 미국 등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가 지금까지 모두 7만6천여점에 이르고 있는 가운데 문화재 환수를 전담하는 인력은 2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안형환(한나라당) 의원이 문화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8일 현재 해외 20개국의 박물관과 도서관 등에서 우리 문화재 7만6천143점을 소장하고 있다.

국가별로는 일본이 3만4천369점(45.1%)으로 가장 많았고 미국 1만8천635점(24.5%), 영국 6천610점(8.7%), 독일 5천221점(6.9%), 프랑스 2천121점(2.8%) 등의 순이었다.

하지만 문화재 반환과 국제협약을 전담하는 직원은 2명에 불과했다.
안 의원은 "외국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보관된 우리 문화재가 많지만 환수 조치가 미흡한 실정"이라며 "담당 인력의 시급한 확충과 체계적인 환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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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유출 우리문화재 찾기 나선 혜문 스님
협상 진전 9월께 희소식 기대

"미국으로 흘러간 뒤 이산가족처럼 뿔뿔이 흩어진 우리 문화재를 반드시 찾아내 환수하겠습니다."

시민단체 '문화재 제자리 찾기' 사무총장인 혜문(36) 스님이 이번에는 미국 대장정에 나섰다. 2년 간의 끈질긴 노력 끝에 2006년 일본 도쿄대학이 소장했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의 반환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그는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11일까지 홀홀 단신 미국에 머물며 하버드대와 보스턴 미술관을 상대로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고 나선 것.

↑ ‘금은제 라마탑형 사리구’

↑ 혜문 스님은 지난 1월 미국 보스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금은제 라마탑형 사리구'를 본 순간"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을 시작한 것이'운명' 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부처님 진신사리와 지공, 나옹 스님의 사리를 환수하기 위해 북한으로부터 권한을 위임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하버드대 아서 새클러 박물관에 있는 그레고리 헨더슨 컬렉션은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과거"라고 울분을 토했다. 과거 일제 시대에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문화재를 약탈당했지만 헨더슨 컬렉션의 경우 미군정기 등을 거치면서 당시 권력층에 있던 소장자들이 헨더슨이라는 외교관에게 뇌물로 바쳤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번 방미 기간 중 조선 초기 명필을 대표하는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글씨로 추정되는 '금니사경'(金泥寫經ㆍ곱게 빻은 금가루를 붓끝에 묻혀 불경을 옮겨 적는 문서)을 실물로 최초로 확인, 하버드 대학에 반환 요청서를 전달했다.

하지만 반환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학교 측도 반환 요청에 대한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며 시간을 가지고 협의해보자고 밝혔지만 합법적인 소유로 법적인 하자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금니사경처럼 1988년 사망한 헨더슨이 한국에서 18년간 주한미군대사관 직원으로 지내면서 외교관 지위를 이용해 수집, 유출시킨 대표적 작품이 최대 1만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뇌물로 바친 한국의 소유권자가 반환을 요청하지 않는 이상 되돌려 받기가 쉽지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게다가 헨더슨씨의 부인인 마이아 여사마저 몇 년 전 숨지면서 주인을 잃은 이들 유물들이 미 매사추세츠주의 공익재단으로 넘겨진 뒤 경매를 통해 팔려나가면서 뿔뿔이 흩어진상황이다. 그는 "헨더슨 컬렉션이 8, 9월께 경매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며 "경매에 참여해 직접 구입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혜문 스님이 헨더슨 컬렉션과 더불어 반환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 보스턴 미술관의 '금은제 라마탑형 사리구'는 올해 가시적인 성과를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올 1월 미술관을 방문한 이후 서신 등을 통해 협상한 결과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며 "9월 정도에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금은제 라마탑형 사리구'에는 부처님 진신사리와 당대의 고승인 지공, 나옹 스님의 사리가 함께 모셔져 있다.

이 같은 혜문 스님의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은 2004년부터 시작됐다. 12년 전 불가에 귀의한 뒤 봉선사에서 총무과장으로 재직할 당시 사찰의 문화재 현황을 조사하면서 없어진 문화재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다.

그는 2004년에 '문화재 제자리 찾기' 시민단체를 구성, 2006년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과 삼성 리움 박물관이 소장했던 현등사 사리구를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았다. 3년 전부터는 일본 궁내청에서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실의궤의 반환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지난 1월에는 해외반출문화재 반환을 위한 미국방문단을 구성해 문화재 실상을 조사했고, 지난달에는 북한을 방문해 미국 내 문화재 환수를 위해 남북 불교계가 함께 노력한다는 공동합의문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고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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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글 윤현진 기자/사진 박준형 기자]
"한국은 보아를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해외 어떤 팝스타도 보아만큼 뛰어난 퍼포머는 본 적이 없다"

미국에서 활동중인 한국계 뮤직비디오 감독 조셉칸(본명 안준희)이 8년 만에 고국을 찾았다. 조셉칸은 켈리 클락슨, 푸시캣 돌스, 브리트니 스피어스, 애미넴, 레이디 가가 등 세계적인 팝스타들의 뮤직비디오를 담당한 'Top Korean'이다.

올해 미국 음반 시장에 진출한 가수 보아의 뮤직비디오 'I did it for love'를 연출하며 한국에서도 많은 팬들의 주목을 받은 조셉칸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한국인 중 한 명이다. 부산 출생의 조셉칸에게 비록 한국에서의 추억은 전혀 없지만 여전히 그에게 한국은 자랑스러운 고국이다.

조셉칸은 1998년 미국 팝 아티스트 Brandy & Monica의 뮤직비디오인 'The Boy is mine'으로 한국인 최초 MTV Video Award에서 최우수 비디오상을 수상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2002 Grammy Award에서 당대 최고의 팝 아티스트인 에미넴의 뮤직비디오 'Without Me'로 최우수 비디오상과 최우수 감독상까지 거머쥐며 미국 최고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인지도를 굳히며 당당하게 미국의 최고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자리잡았다.

또 2004년 세계 최고의 여성 아이콘인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뮤직비디오 'Toxic'으로 2004 MTV Video Award에서 최우수 비디오상을 한 번 더 수상하며 현재 미국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가장 영향력 있는 뮤직비디오 감독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부산출생인 조셉칸은 3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이후 이번에 두 번째로 한국을 방문했다. 조셉칸은 지난 6월 8일부터 12일까지 한국에 머물며 한국 비즈니스 파트너인 붐칙 엔터테인먼트의 워크샵과 삼성전자, CJ미디어 등의 국내 주요 기업들을 비롯한 보아의 소속사 SM 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대표와의 개별적 미팅을 가진 후 현재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상태다.

다음은 조셉칸과의 인터뷰 일문일답니다.
- 한국 출생이라고 들었는데 미국으로는 언제 이민을 갔나?
▲ 원래 부산에서 태어났고 이후 3살 때 텍사스로 이민을 갔다. 5살 때 다시 이탈리아로 갔다가 9살 때 미국으로 돌아왔다.

-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성공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역경은 없었나?
▲ 항상 힘들었다. LA에 처음 갔을 때 30편의 뮤직비디오를 찍어 에이전시를 찾아갔다. 그런데 당시 그곳의 담당자가 내게 하는 말이 '재능이 없으니까 그만둬라'였다. 당시 내 나이 20살이었다. 하지만 생활자체가 부유하지 않았기에 그만둘 수가 없었고 뮤직비디오 일이 너무 좋았다. 내가 그만두라고 했던 사람들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다른 사람보다 10배의 노력을 더 쏟아부어야 했다. 정통 미국인이 아니기에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에 한번 실수하게 되면 '저 사람은 동양 사람이기에 우리문화를 이해 못해서 그래'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감독들과 똑같은 레벨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평가를 받을 때 당연히 내가 아닌 그들이 선택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노력과 더 높은 퀄리티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야 했다.

- 얼마전 보아의 할리우드 진출곡 'I did it for love' 뮤직비디오 연출을 맡아 큰 화제가 됐다. 보아의 뮤직비디오는 어떻게 맡게 됐나?

▲ 보아의 'Eat you up' 영상을 보고 보아의 파워풀한 퍼포먼스에 놀랐다. 보아는 굉장히 퍼포먼스적으로 춤과 노래가 모두 뛰어난 환상적인 가수다. 대단히 에너제틱한 퍼포머다. 그렇게 생각하던 어느날 보아 쪽에서 먼저 함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자는 제의가 왔기에 흔쾌히 응했다.

- 보아의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 어떤 부분에 가장 초점을 맞췄나?
▲ 전체적으로 어두우면서도 전사같은 느낌을 살렸다. 보아 뮤직비디오를 만들 때 주변의 환경적 요소보다 춤을 잘 추는 보아를 더 부각시키기 위해 일부터 심플하게 제작했다. 조셉칸의 지금까지 뮤직비디오를 보면 스토리가 있고 스페셜한 효과가 많은데 보아의 뮤직비디오에서는 기존의 조셉칸 스타일은 철저히 배제하고 보아를 살리는데 중점을 뒀다.

- 그렇다면 평소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때 가장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뭔가?
▲ 뮤직비디오를 보는 사람들이 노래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고자 한다. 특히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뮤직비디오를 통해 사람들이 노래와 교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노래를 그저 듣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래 속에 담긴 감정이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그 느낌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뮤직비디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 미국 음반시장에서의 보아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 두말할 나위 없이 보아는 대단하다. 미국 음반시장에서의 성공여부 역시 굉장히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해외 어떤 스타들과 비교해도 보아만큼 퍼포먼스를 잘 해내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보아는 예쁘고 춤도 잘 추고 노래까지 잘한다. 가능성은 무한하다. 그런 보아를 한국이 굉장히 자랑스러워해야 할 것이다.

- 특별히 뮤직비디오라는 장르를 추구하는 이유가 있나?
▲ 12살 때부터 취미로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영화를 만드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뮤직비디오는 짧은 시간 안에 강한 영상을 보여줄 수 있다. 원래 뮤지션들을 좋아한다. 영화가 마라톤이라면 뮤직비디오는 100m 달리기다. 빨리 움직이는 시간동안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다.

- 지난 2004년에 영화 '토크'를 찍었던데 영화에도 남다른 관심이 있나?
▲ 15살 때부터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어릴적부터 원래 내 꿈은 영화감독이었지만 할리우드 커넥션이 없어서 뮤직비디오부터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 가장 빠르고 값싸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뮤직비디오다. 뮤직비디오 디렉터로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 앞으로 영화쪽으로 진출할 생각도 있나?
▲ 당연하다. 나의 최종 목표는 영화다. 현재 영화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윌리엄 깁슨의 'Neuromancer'이라는 책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계획중이다. 1년 안에 크랭크인에 들어갈 생각이다. 캐스팅도 준비중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내 롤모델이다. TV쇼나 영화, 만화, 하이스쿨 코미디 등 아이디어는 많지만 SF액션 영화를 만들고 싶다. 나중에 회사를 더 크게 세우게 되면 분야를 나눠서 뮤비, 영화, TV쇼, 뮤지컬 등 여러 분야에서 내 아이디어를 펼치고 싶다.

- 최근 칸영화제를 비롯한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가 전세계 영화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인으로서 그 때 기분이 어땠나?

▲ 정말 자랑스럽다. 한국영화에는 코미디, 액션, 멜로 등 여러 가지 문화가 복합적으로 담겨있다. 다양한 장르가 잘 조화를 이뤄 훌륭한 완성작이 되는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영화 중 '태극기 휘날리며' '조폭마누라' '괴물'을 가장 인상깊게 봤다. 한국말을 부지런히 배워 언젠가는 한국배우들, 한국대사들로만 구성된 진짜 한국영화를 내가 직접 제작하고 싶다.

- 조셉칸에게 한국은 어떤 곳인가?
▲ 너무 어렸을 때 이민을 가서 한국에서의 특별한 추억은 없지만 종종 미국에서 한국의 꿈을 꿀 때가 있다. 신기하게도 꿈속에서는 한국말을 다 알아듣는다. 한국 국민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과 조직적으로 잘 유기된 모습을 앞으로도 꾸준히 배우고 싶다.

칸에서 한국영화가 선전하는 이유는 한국 사람들의 민족성 자체가 굉장히 성실하면서도 창의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인들만의 매력이자 장점이다. 나 또한 그런 한국문화를 배우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미국의 다른 감독들보다도 훨씬 더 강점을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 한국은 내가 크고 소중한 영양분이다.

- 한국을 빛내는 세계 최고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서 제2의 조셉칸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이 있다면?

▲ 나는 내가 절대로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최고라서 나를 서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긍정적으로 도전하라. 물론 재능도 중요하지만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용기와 자신감이 가장 중요하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 계속 꾸준히 연습하며 도전한다면 언젠가 실패하는 것도 즐기게 될 것이고 결국에는 성공할 것이다. 복서는 링에서 내려오면 더 이상 복서가 아니다. 계속 쓰러지더라도 링 위에서 계속 일어나 싸워야 진정한 복서다. 끊임없이 노력하며 즐기길 바란다.

윤현진 issuebong@newsen.com/박준형 soul1014@new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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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 성공스토리 ◆

"노르웨이에서 라면을 먹고 싶다면 '미스터 리(Mr. Lee)'를 찾으세요."

노르웨이 라면계 전설 이철호 씨(72ㆍ사진)는 '미스터 리'가 노르웨이에서는 라면을 뜻하는 고유명사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가 만든 라면 브랜드 '미스터 리'가 무려 20년 이상 노르웨이 라면시장 점유율 80% 이상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이철호 씨가 오슬로 근교 한 식당에서 80년대부터 지금까지 차고 있는 돌핀 전자시계를 들어보이고 있다.

덕분에 그는 노르웨이에서 '라면왕'으로 불리며 총리보다 더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2000년 오슬로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시상식 때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미스터 리' 조국의 대통령으로 소개될 정도였다.

이씨가 라면을 처음 노르웨이에 도입한 것은 1970년대 중반 그가 요리사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그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17세의 나이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노르웨이 땅을 밟았다. 처음엔 청소나 접시닦이 일을 하다 한 호텔 주방장 눈에 띄어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어 프랑스에 요리유학까지 갔다. 이씨가 60년대 중반 독일에서 노르웨이식 뷔페 식당을 열어 대박을 터뜨렸을 때 그의 주요 고객에는 독일 총리 등 유명인들이 포함됐다. 그가 다시 노르웨이로 초빙돼 요리사로 일하던 71년 그는 스웨덴 정부로부터 한국 출장을 요청받았다.

이씨는 한국 출장에서 처음으로 라면과 인연을 맺게 됐다. 그는 "한국에서 라면을 처음 맛보았는데 진짜 맛있었다"며 "요리사로서 노르웨이에 꼭 소개하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나 노르웨이인들에게 낯선 음식인 라면을 소개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우선 한국 라면을 노르웨이시장에 팔기 위해 거쳐야 하는 각종 통관 절차가 3년 이상 걸렸다. 특히 방부제 등 성분검사 통과가 까다로웠다. 게다가 노르웨이인들은 라면 요리를 할 줄 몰라 라면을 그냥 버리기 일쑤였다.

결정적인 문제는 한국 라면이 맵고 얼큰해 노르웨이인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그는 해결책을 찾으러 노르웨이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스를 가지고 한국의 유명 라면회사 연구소를 방문했다. 연구진과 함께 노르웨이인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새로운 라면 스프를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이씨는 "프랑스 독일 등에서 요리사로 일한 경험을 되돌아 보니 나라마다 독특한 소스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노르웨이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소스를 먼저 알아놓은 다음 거기에 맞추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주로 매운맛을 빼고 기름진 맛을 더했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는 "처음에 한국 라면을 그대로 도입했다가 입맛에 맞게 바꿔서 출시한 이후 매출이 급격히 늘었다"며 "당시 한국에서 노르웨이로 컨테이너 단위로 주문하는 사람은 내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매출 증가와 함께 그가 주력한 부분은 홍보였다. 벌어들인 수익 중 필요한 경비를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홍보에 투입했다. 그는 신문 방송 광고는 물론 한국 여행 경품까지 걸었다. 한국을 알리면 라면도 자연스럽게 알려질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미스터 리' 라면 표지에는 '소고기맛' '닭고기맛' 등 한글이 꼭 적혀 있는데 이것도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덕분에 노르웨이에서는 라면의 원조가 일본이 아닌 한국으로 알려져 있어 일본 라면이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사업이 계속 승승장구하던 89년 어느날 이씨는 갑자기 자신의 라면 회사를 노르웨이 최대 식품회사에 넘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팔아치우자 그의 주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이씨는 "내가 100살도 못살텐데 내가 없어도 '미스터 리' 라면이 영원히 지속되도록 하기 위해 그런 결정을 내렸다"며 "동양 사람들이 자기 묻힐 묘를 만들고 죽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더욱이 그의 딸 3명이 모두 사업을 물려받을 뜻이 없다고 밝혀 그는 더 쉽게 '미스터 리' 라면 사업을 넘길 수 있었다.

이씨는 90년부터는 라면 개발만 필요에 따라 해주고 한국과 노르웨이를 양국에 홍보하는 일에 전념해오고 있다. 그는 또 세계 최초로 해산물대학교를 노르웨이에 설립하는 것을 추진 중이며 인천 송도에는 '리틀 노르웨이'라는 노르웨이 타운 건설도 추진 중이다.

한편 그는 한국인들에게 노르웨이에 와서 다양한 사업을 해볼 것을 권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노르웨이에서 근면성실한 한국인이 성공하기 쉽다는 설명이다.

◆ 노르웨이선 '빨리빨리' 안통해

"노르웨이 사람들과 일하려면 서둘러서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몇 년이 걸려도 꾸준히 일을 해야만 합니다."

라면왕 이철호 씨는 노르웨이에서 사업 성공 비결을 묻자 이같이 대답했다. 신뢰를 쌓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도 있으나 노르웨이인 특성이 뭔가를 즉각적으로 하는 데 익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는 "만일 누군가가 노르웨이인에게 어떤 부탁을 하면 그냥 지나가는 말로 생각하고 부탁을 바로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며 "1년 후, 그리고 2년 후 꾸준히 부탁하면 진실성을 깨닫고 기꺼이 들어준다"고 말했다.

이씨는 따라서 한국 사람들이 막 덤벼들었다가 안 된다고 바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노르웨이에는 공무원 부정ㆍ부패가 거의 없어 뇌물로 매수하려는 생각은 완전히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노르웨이에서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절차에 보통 3~7개월이 걸리는데 이를 앞당기기 위해 무슨 수를 쓰면 오히려 추가 조사를 받게 돼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씨는 노르웨이 언어 습득도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노르웨이인은 대부분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으나 현지 언어를 모르면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사실 50년여 전 노르웨이로 이민 올 당시 자신의 영어 능력을 믿었으나 노르웨이어 습득의 중요성을 깨닫고 숙달되기까지 하루 3시간씩 자며 현지어 공부를 했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마지막으로 한국인으로서 노르웨이에서 사업을 한다면 한국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추천했다. 그의 '미스터 리' 라면은 1970년대 중반 출시될 때부터 갖가지 한글을 라면 겉봉에 넣었는데 호기심을 자극하는 등 고객들 관심을 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슬로(노르웨이) = 윤원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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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A 한국선수 초청 프로암대회도 열어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인더스트리시티에서 퍼시픽팜스리조트를 운영하는 존 셈켄(53) 사장은 한국 스포츠와 한국인에게 '푹 빠진' 사람이다. 그는 1999년 문을 연 세계적 다목적 스포츠시설인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센터의 건립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스테이플스센터를 홈 구장으로 쓰는 미 프로농구(NBA) 엘에이(LA) 레이커스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엘에이 킹스 구단의 지분도 갖고 있는 재력가다.

그가 최근 인더스트리 엑스포센터에서 열린 2009 국제태권도 페스티벌의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이 대회를 16년째 개최하고 있는 한국인 전영인 사범의 제의를 흔쾌히 수락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리조트를 대폭 할인해 선수단 숙소로도 내놨다.

지난 4월에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서 활약중인 한희원, 박인비, 최나연 등 한국 선수 20여명을 초청해 퍼시픽팜스리조트 안 골프장에서 프로암대회를 열었다. 한국 선수들만 참가해 수익금 중 일부를 미국여자프로골프 기금으로 전달한 이 대회의 후원을 맡은 것이다. 그는 "한국 선수들은 평정심이 좋고 끈기있게 노력한다. 특히 미국 골프계를 장악하다시피 한 여자 선수들의 실력은 놀랍다"고 칭찬했다.

셈켄이 한국 스포츠를 좋아하고 후원하는 것은 한국과의 남다른 인연 때문이다. 그는 4년 전 두 살 아래 한국인 이미혜(51)씨와 결혼했다. 결혼식도 미국에서 서양식과 한국의 전통혼례로 두 차례 치렀다. 그는 부인에 대해 "한국에서 태어나 8살 때 미국으로 건너와 지금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영향력 있는 부동산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뿐만 아니다. 셈켄은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8년 동안 전투 조종사로 복무한 '해군 파일럿'이었다. 그는 "옛 소련이 붕괴되기 직전이던 90년을 전후해 4년 동안 미국 항공모함이 동해에 배치됐을 때 한국에 파견된 적이 있다"고 했다. 이런 특이한 이력 덕분에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 탑건 > 의 기술자문을 맡았고,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셈켄이 운영하고 있는 퍼시픽팜스리조트의 실무 책임자인 운영담당 부사장도 한국인 임희원(53)씨다. 임씨는 퍼시픽팜스리조트에 대해 "로스앤젤레스 인근에서 골프코스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숙소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셈켄은 "한국의 영해만 가보고 육지는 아직 구경하지 못했다. 아내의 조국을 꼭 방문하고 싶다"며 밝게 웃었다.

로스앤젤레스/글·사진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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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 일본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김치는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는데 요즘엔 소주는 물론 막걸리, 떡볶이까지도 즐길 수 있게 됐죠. 한국에 대한 인식이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재세 재일본한국인연합회 회장(49)은 "최근 높아진 한국의 위상과 한류 열풍으로 달라진 일본 내 교민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며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9일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한국인이란 사실을 숨기고 살았던 사람들도 '커밍아웃' 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지하철 안에서 눈치를 보면서 우리말로 속삭이며 대화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며 웃었다. 한인회는 최근 10~20년 동안 일본에 건너와 정착한 한국인들이 결성한 단체다. 1945년 설립된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이 교포 중심의 조직이라면 한인회는 비교적 나중에 일본에 정착한 사람들이 만든 모임이다. 한인회는 35만여명을 거느린 민단에 비해 회원이 불과 5000여명에 지나지 않지만 유학생들의 정착 지원, 교민들의 이익 대변을 위해 활동영역을 넓혀 나가는 중이다. 민단은 해마다 8000~1만명 정도가 귀화를 하고, 고령으로 인한 자연 감소 등으로 조직력이 많이 약화돼 있다.

지난달 회장에 취임한 그는 무엇보다도 유학생과 젊은 인재들이 일본 땅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두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겪었던 고생을 생각해서라도 한국인 젊은이들의 일본 정착을 적극 지원하면 우리 때보다 훨씬 빨리 기반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벤처 비즈니스 육성 기구를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또 "한인회관 설립, 코리안타운 조성 작업도 임기 중에 추진해 나갈 과제"라고 밝혔다. 코리안타운 조성과 관련, "요코하마의 중화가처럼 이곳에 오면 한국에 가지 않아도 될 만큼 문화와 관습을 접목시킨 한인타운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며 "10년 이상 걸리는 사업이지만 현지 여론도 좋아 조성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민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교육문제를 꼽았다. 현재 일본 내 한국 학교는 도쿄, 교토, 오사카 3곳뿐이다. 총련계 민족학교가 전국에 77곳이 있는 것과는 큰 차이다. 그는 "학교 문제만큼은 정부에서도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며 "도쿄의 경우 우에노나 닛포리 등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최소한 한 곳은 더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 도쿄 | 조홍민특파원 dury129@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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