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년간 TV 광고와 홈쇼핑을 이용해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A상조회사. 광고에는 슬픈 곡조의 배경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장례식용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도우미와 최고급 리무진이 소비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이어 유명 여성 탤런트가 나와 “내 부모, 내 형제처럼 정성을 다한다”며 회원 가입을 권한다. 10년(120개월) 동안 매달 3만원씩, 총 360만원을 내면 이 회사의 특별한 장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19년 전통과 60여만 가입자를 내세우며 당장 수화기를 들어 전화 상담을 받으라고 재촉한다.

그러나 최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dart.fss.or.kr)에 공개된 이 회사의 재무상태는 광고와 딴판이었다. 주주가 투자한 자본금을 전부 까먹은 것은 물론 고객이 낸 돈 수백억원이 축나 있었다. 해당 기업의 지난해 사업 실적을 감사한 외부 회계법인이 금감원에 제출한 감사보고서에 나타난 내용이다. 감사를 한 공인회계사는 보고서에서 “계속기업으로 존속 능력에 중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대로 가다간 자칫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경고다.

중 앙SUNDAY가 금감원에 감사보고서를 제출한 대형 상조회사 8곳의 지난해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대구상조·새부산상조 두 곳만 흑자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나머지 6곳은 지난해 모두 합쳐 525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 중 부산상조를 제외한 5개 사는 회사 설립 이후 적자가 쌓여 발생한 부실(결손금) 규모가 총 1300억원에 달했다. 반면 이들 5개 사의 자본금은 총 12억5000만원에 불과하다. 무려 자본금의 100배 이상을 까먹은 셈이다.

상조업에는 소비자 보호장치가 전혀 없어 회사가 부실해지거나 문을 닫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고객에게 돌아간다. 5000만원의 자본금만 내면 누구나 상조업체를 차릴 수 있고, 대주주나 경영자가 고객 돈을 마음대로 갖다 써도 아무런 감시·감독을 받지 않는다. 획기적인 변화가 없다면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상조업이 발달한 일본과 비슷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미 국회에 관련 법안도 올라가 있다. 그러나 정부는 ‘소관 부처’ 타령으로 아까운 시간을 흘려 보내며 문제를 키우고 있다.

“소관 부처 명확하지 않다” 변명
4월 2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조찬 강연회.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공정거래 정책 방향’이란 주제로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이 연단에 올랐다. 그는 “불황기에 서민 피해 증가가 예상되는 분야를 집중 감시하고 있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상조업과 불법 다단계 판매에 대해 직권조사를 마치고 법 위반 여부를 검토·분석 중”이라고 강조했다. 상조업과 불법 다단계 판매를 같은 선상에 놓고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 러나 공정위는 상조업에 대한 조사 결과를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 본지는 이에 대한 공정위의 입장을 듣기 위해 대변인실을 통해 담당자의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상조업은 소관 부처가 명확하지 않아 인터뷰가 곤란하다”는 것이 공정위가 내세운 이유였다. “국회에서 의원입법으로 상조업의 소관 부처를 보건복지가족부로 하는 법안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도 이어졌다. 불과 한 달 전 백 위원장이 직접 상조업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던 것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것이다.

공정위의 이런 태도에 대해 복지부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미 2007년 정부 부처 간 협의를 거쳐 상조업은 공정위가 맡는 것으로 교통정리를 했다”며 “현재로선 공정위가 상조업을 관할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는 “만일 국회가 입법을 통해 소관 부처를 변경한다면 그때 가서 결정에 따르겠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정부가 소관 부처를 놓고 ‘책임 떠넘기기’ 공방이나 벌일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라는 데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상조업 관련 소비자 피해 상담은 2003년 58건에서 지난해 1374건으로 5년간 23배로 급증했다. 이 중 1166건(85%)은 상조회사가 고객의 해약 요구를 거부하거나 고객에게 과다한 위약금을 물린 경우였다. 올 들어 4월까지 피해 상담은 800건으로 벌써 2007년 연간 상담 건수(833건)에 육박했다.

동 국대 강동구(생사의례 전공) 교수는 “비교적 건전하다는 상조회사조차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객이 맡긴 돈의 3분의 1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며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국은퇴자협회 주명룡 회장은 “일부 상조회사의 부실이 자본금의 수백 배나 되는데도 버티는 것은 ‘금융 피라미드’가 아니고선 불가능하다”며 “상조는 도시보다는 농촌, 고학력·고소득층보다는 저학력·저소득층에게 급속히 파고들고 있어 심각성이 더욱 크다”고 지적했다.

금융 피라미드식 운영 의혹
상 조업체는 수백 개가 난립해 있는 것으로 추산되나 인허가가 필요 없는 자유업이어서 정확한 실태 파악이 어렵다. 한국상조업연합회는 전국적으로 400여 개 업체에 300만 명의 회원이 가입해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이 중 ‘장의사’ 수준의 영세업체를 제외하고 실제로 영업하는 상조회사는 100개 정도일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대부분 상조회사는 회계감사도 제대로 받지 않고 재무제표를 공개하지도 않아 부실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기 어렵다. 다만 ‘주식회사 외부감사에 관한 법’에 따라 자산 100억원 이상의 대형 업체는 금감원이 감사보고서를 받아 공개하고 있다.

이 보고서를 보면 상조업체 중 가장 덩치(자산 규모)가 큰 회사는 부산상조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총자산이 874억원에 달했고, 1982년 설립돼 역사가 가장 오래됐다. 2005년부터 3년 연속 흑자를 냈으나 지난해에는 주식 투자에서 큰 손실을 보면서 71억원의 적자로 돌아섰다.

업계 2위는 보람상조(보람상조개발과 보람상조라이프)로 752억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자산의 두 배 가까운 1482억원의 빚을 안고 있어 경영 사정은 좋지 않다. 적자도 2007년 127억원, 지난해 233억원으로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3 위 대구상조와 4위 현대종합상조의 경쟁도 치열하다. 자산 규모로 본 두 회사의 격차는 지난해 말 기준 7억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대구상조는 비교적 안정적인 경영으로 지난해 20억원의 흑자를 냈지만 현대상조는 120억원의 적자를 면치 못했다. 이 밖에 새부산상조가 5위, 국민상조가 6위에 올라 있다.

상조업 부실의 주원인으로는 ‘다단계 판매’와 비슷한 영업방식과 고객 돈을 자기 돈처럼 생각하는 경영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꼽힌다. 권택기(한나라당) 의원의 분석에 따르면 대형 업체 B사의 경우 고객이 100만원을 내면 66만원을 광고·판촉비 등 영업비용으로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 의원은 “영업비용이 과다하면 정작 회원에게 상이 닥쳤을 때 서비스가 부실해지거나 아예 서비스를 받지 못할 위험이 커진다”며 “일부 상조회사는 고객 돈으로 주식에 투자했다가 대규모 손실을 보거나 영업과 관계없는 부동산을 사들이는 데 골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조 연합회 정명근 사무총장은 “일부이긴 하지만 고객 돈으로 벤츠·BMW를 타고 다니며 재벌 행세를 하는 상조업체 사장도 있다”며 “그러다 돈이 떨어지면 슬그머니 회사 문을 닫고 잠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합회 차원에서 불공정 약관 등을 이유로 50개 사에 제명이란 중징계를 내렸지만 상당수는 여전히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며 “업계의 자율 정화 노력은 한계가 있으므로 하루빨리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실 상조업에 대한 대책은 이미 나와 있다. 현재 국회에는 상조업과 관련, 네 건의 법안이 계류 중이다. 권경석(한나라당) 의원의 ‘상조업법안’과 권택기 의원의 ‘할부거래법’ 개정안, 김춘진(민주당) 의원이 동시에 제출한 ‘상조업법안’과 ‘할부거래법’ 개정안이다.

일본선 회비 50% 외부 예탁 의무화
각 법안은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큰 방향에선 거의 일치한다. 골자는 ▶상조업을 현재의 자유업에서 등록제나 허가제로 바꾸고 ▶상조업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자본금 3억~5억원)을 규정하고 ▶고객이 낸 돈의 일부를 외부에 맡겨 부도나 폐업에 대비하며 ▶상조업자가 불법 행위를 저지르면 형사처벌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일본은 이미 1970년대에 상조회사를 허가제로 하고 고객 회비 중 최소 50%를 은행에 맡기거나 보증보험사의 보증을 받도록 하고 있다.

상조업 관련법은 여야 간 입장이 비슷하기 때문에 법을 집행할 정부 입장만 분명하다면 국회에서 합의 처리가 어렵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공정위의 태도다. 공정위는 지난해 10월 의원들이 낸 것과 비슷한 내용의 ‘할부거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공청회를 열어 전문가 의견도 들었다. 그러나 8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정부안을 국회에 내지 않고 있다.

강동구 교수는 “상조회사의 부실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닌데도 정부가 미적거리다 실기해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다”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 정위가 소관 부처의 모호성을 주장하는 근거는 김춘진 의원이 낸 법안이다. 김 의원은 상조업의 소관 부처를 복지부로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것은 민주당의 공식 당론도 아니고, 김 의원도 필요하다면 수정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김 의원실의 유경선 보좌관은 “원칙적으로 관혼상제에 관한 사항은 복지부가 맡는 것이 타당하다”며 “그러나 소관 부처가 문제가 된다면 시장질서를 바로잡는 것은 공정위, 산업 차원에서의 육성은 복지부로 이원화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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