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땅, 간도를 이대로 놔둘 겁니까? 이제 3주가 지나면 국제법상 간도는 영원히 중국의 땅이 됩니다.”

한 재미동포가 우리 민족의 고토 간도를 수복하기 위한 피맺힌 절규를 하고 있다. 주인공은 뉴욕의 폴 김(59·김태영) 박사. 김 박사는 10일(현지시간) “오는 9월4일이면 중국이 ‘우리 땅’ 간도를 실효 지배한 지 꼭 100년째가 된다. 100년은 국제법의 관례에서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최후 시한이다. 그 시한이 지나면 우리는 간도를 돌려달라는 합법적인 주장조차 제기할 수 없게 된다”고 관심을 촉구했다.

간도가 중국에 ‘공식적으로’ 넘어간 것은 1909년 9월4일 당시 청나라가 일본과 '간도협약‘을 맺고 이 지역의 철도부설권을 받는 조건으로 조선땅 간도를 넘겨주었다. 당시 일제는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조선 정부의 외교권을 박탈한 상태에서, 외교권을 불법적으로 사용, 그 자체가 무효인 것은 사실이다. 또한 1965년 일본 정부가 간도협약을 무효로 한다는 국제사회에 선언하기도 했다.

물론 중국이 간도를 현실적으로 점유하고 있지만 나중이라도 되찾을 근거를 만들기 위해선 국제법상 법률 시효 기한인 100년 안에 공식적인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 100년 초읽기에 들어간 현재까지 남북한 어느 정권도 수수방관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 박사는 “만일 누군가 소송을 제기하면 100년의 법률 시효를 묶어 둘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사비를 들여서라도 국제사법재판소에 소송을 하려고 많은 법조인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하지만 국제법상 소송 주체는 국가나 국제연합 관련 단체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 박사는 지난해 4월15일자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대한민국 영토 회복에 따른 국제사법 재판건’이라는 제목의 탄원서를 78명의 뉴욕 뉴저지 한인들의 서명지와 함께 발송했다. 김경근 뉴욕총영사와 UN의 반기문 사무총장에게도 참조 공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답신 등 일체의 반응이 없었고 김 박사는 다시 지난 6월15일 서한을 재발송했다.

이번에는 지난해 탄원서는 물론, 청·일 간 간도협약 무효 확인 요청 및 국제사법재판소송건이라는 소장을 한글과 영문으로 만들어 보냈다. 양식을 완벽하게 갖췄으니 대한민국 관인만 찍어 사법재판소에 보내달라는 읍소였다.

김 박사는 “이명박 대통령께 7월31일까지 정부의 입장을 알려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했지만 이번 역시 아무런 회신이 없었다. 이제 간도는 갑론을박하고 탁상공론을 할 시간이 없는 촌각을 다투는 일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우리 영토라는 주장을 공식적으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민간단체에서 실행하겠다”며 비장한 각오를 보이고 있다.

그는 우리 역사에 대한 일제의 왜곡과 한민족 역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1999년 ‘한민족 사관 정립 의식 개혁회’를 조직했다. 간도협약 99년을 맞은 지난해 9월에는 간도 문제를 풀기 위해 온 몸을 던질 각오로 ‘간도 되찾기 운동 본부’ 뉴욕 지부장을 맡았다. 뉴욕지부는 미국에서 유일한 간도 단체이다.

그는 “간도는 조선족 동포들이 많이 거주하는 랴오닝성과 지린성, 헤이룽장성 등 동북 3성 지역을 통틀어 부르며 한반도의 3배 크기다. 간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은 백두산 정계비를 비롯, 숱한 증거가 있다”며 “소위 서북공정의 이름으로 신장위구르 지역과 티벳에 신경 쓰던 중국이 간도를 영구히 저들 것으로 만들기 위해 시작한 것이 동북공정을 통한 고구려 역사 왜곡이었다”고 설명했다.

재야 사학자인 그는 애리조나 주립대에서 경제학으로 박사 학위(Ph. D)를 받았다. 하지만 서로 다른 분야의 준학사부터 박사까지 다양한 학위를 갖고 있는 독특한 이력의 주인공이다. 한국에서 화공학 학사 학위를 받고 모 전문대에서 임상병리학을 전공했다. 이후에 고려대 대학원에서 무역학 석사학위를 받고 잠시 실무를 익히기도 했다.

서른살 이 넘어 미국 유학을 결심한 그에게 고려대 대학원에서 논문을 지도한 김완순 교수가 “기왕에 공부하려면 학사 과정부터 하는 게 좋다”는 권유에 애리조나 주립대에서 대학 과정으로 시작하는 만용(?)도 부렸다. “지금 다시 하라면 절대로 못할 일이었어요. 몰랐으니까 그 공부를 했지요. 하지만 공부하고 나니까 어떤 미국인하고 얘기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생기더라구요.”

내친 김에 애리조나주립대에서 석사와 박사까지 마쳤다. 10년이 넘는 긴 세월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성에 안찼던지 플러싱에서 교육 사업을 하면서 NYU(뉴욕대)에서 TESOL까지 공부하는 등 지칠줄 모르는 학구열을 불태웠다. 스스로도 책읽고 공부하는 게 취미라고 하다시피 어찌보면 40년 동안 공부만 한 셈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일곱 번째이자 마지막 연구 대상이다. 그리고 그것에 김 박사는 남은 인생을 걸고 있다.

매 주 토요일 자신의 강의실에서 무료 역사강연회를 열고 있는 그는 “간도 문제는 민족의 자존심과, 후손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일제에 ‘도시락폭탄’을 던지고 산화한 윤봉길 열사의 심정으로 모든 걸 걸겠다”며 뜻있는 이들의 동참(doctorkim@gmail.com)을 바라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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