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땅, 간도를 이대로 놔둘 겁니까? 이제 3주가 지나면 국제법상 간도는 영원히 중국의 땅이 됩니다.”

한 재미동포가 우리 민족의 고토 간도를 수복하기 위한 피맺힌 절규를 하고 있다. 주인공은 뉴욕의 폴 김(59·김태영) 박사. 김 박사는 10일(현지시간) “오는 9월4일이면 중국이 ‘우리 땅’ 간도를 실효 지배한 지 꼭 100년째가 된다. 100년은 국제법의 관례에서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최후 시한이다. 그 시한이 지나면 우리는 간도를 돌려달라는 합법적인 주장조차 제기할 수 없게 된다”고 관심을 촉구했다.

간도가 중국에 ‘공식적으로’ 넘어간 것은 1909년 9월4일 당시 청나라가 일본과 '간도협약‘을 맺고 이 지역의 철도부설권을 받는 조건으로 조선땅 간도를 넘겨주었다. 당시 일제는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조선 정부의 외교권을 박탈한 상태에서, 외교권을 불법적으로 사용, 그 자체가 무효인 것은 사실이다. 또한 1965년 일본 정부가 간도협약을 무효로 한다는 국제사회에 선언하기도 했다.

물론 중국이 간도를 현실적으로 점유하고 있지만 나중이라도 되찾을 근거를 만들기 위해선 국제법상 법률 시효 기한인 100년 안에 공식적인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 100년 초읽기에 들어간 현재까지 남북한 어느 정권도 수수방관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 박사는 “만일 누군가 소송을 제기하면 100년의 법률 시효를 묶어 둘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사비를 들여서라도 국제사법재판소에 소송을 하려고 많은 법조인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하지만 국제법상 소송 주체는 국가나 국제연합 관련 단체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 박사는 지난해 4월15일자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대한민국 영토 회복에 따른 국제사법 재판건’이라는 제목의 탄원서를 78명의 뉴욕 뉴저지 한인들의 서명지와 함께 발송했다. 김경근 뉴욕총영사와 UN의 반기문 사무총장에게도 참조 공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답신 등 일체의 반응이 없었고 김 박사는 다시 지난 6월15일 서한을 재발송했다.

이번에는 지난해 탄원서는 물론, 청·일 간 간도협약 무효 확인 요청 및 국제사법재판소송건이라는 소장을 한글과 영문으로 만들어 보냈다. 양식을 완벽하게 갖췄으니 대한민국 관인만 찍어 사법재판소에 보내달라는 읍소였다.

김 박사는 “이명박 대통령께 7월31일까지 정부의 입장을 알려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했지만 이번 역시 아무런 회신이 없었다. 이제 간도는 갑론을박하고 탁상공론을 할 시간이 없는 촌각을 다투는 일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우리 영토라는 주장을 공식적으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민간단체에서 실행하겠다”며 비장한 각오를 보이고 있다.

그는 우리 역사에 대한 일제의 왜곡과 한민족 역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1999년 ‘한민족 사관 정립 의식 개혁회’를 조직했다. 간도협약 99년을 맞은 지난해 9월에는 간도 문제를 풀기 위해 온 몸을 던질 각오로 ‘간도 되찾기 운동 본부’ 뉴욕 지부장을 맡았다. 뉴욕지부는 미국에서 유일한 간도 단체이다.

그는 “간도는 조선족 동포들이 많이 거주하는 랴오닝성과 지린성, 헤이룽장성 등 동북 3성 지역을 통틀어 부르며 한반도의 3배 크기다. 간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은 백두산 정계비를 비롯, 숱한 증거가 있다”며 “소위 서북공정의 이름으로 신장위구르 지역과 티벳에 신경 쓰던 중국이 간도를 영구히 저들 것으로 만들기 위해 시작한 것이 동북공정을 통한 고구려 역사 왜곡이었다”고 설명했다.

재야 사학자인 그는 애리조나 주립대에서 경제학으로 박사 학위(Ph. D)를 받았다. 하지만 서로 다른 분야의 준학사부터 박사까지 다양한 학위를 갖고 있는 독특한 이력의 주인공이다. 한국에서 화공학 학사 학위를 받고 모 전문대에서 임상병리학을 전공했다. 이후에 고려대 대학원에서 무역학 석사학위를 받고 잠시 실무를 익히기도 했다.

서른살 이 넘어 미국 유학을 결심한 그에게 고려대 대학원에서 논문을 지도한 김완순 교수가 “기왕에 공부하려면 학사 과정부터 하는 게 좋다”는 권유에 애리조나 주립대에서 대학 과정으로 시작하는 만용(?)도 부렸다. “지금 다시 하라면 절대로 못할 일이었어요. 몰랐으니까 그 공부를 했지요. 하지만 공부하고 나니까 어떤 미국인하고 얘기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생기더라구요.”

내친 김에 애리조나주립대에서 석사와 박사까지 마쳤다. 10년이 넘는 긴 세월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성에 안찼던지 플러싱에서 교육 사업을 하면서 NYU(뉴욕대)에서 TESOL까지 공부하는 등 지칠줄 모르는 학구열을 불태웠다. 스스로도 책읽고 공부하는 게 취미라고 하다시피 어찌보면 40년 동안 공부만 한 셈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일곱 번째이자 마지막 연구 대상이다. 그리고 그것에 김 박사는 남은 인생을 걸고 있다.

매 주 토요일 자신의 강의실에서 무료 역사강연회를 열고 있는 그는 “간도 문제는 민족의 자존심과, 후손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일제에 ‘도시락폭탄’을 던지고 산화한 윤봉길 열사의 심정으로 모든 걸 걸겠다”며 뜻있는 이들의 동참(doctorkim@gmail.com)을 바라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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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 표지 (상주=연합뉴스) 경북 상주의 배익기(45) 씨가 집을 수리하던 중 발견한 훈민정음 해례본의 표지. 이 책은 국보 70호로 지정된 훈민정음 해례본과 비슷한 시기에 발간된 동일판본으로 추정된다. << 전국부 기사 참조 >> << 상주시 제공 >>

(상주=연합뉴스) 손대성 기자 = 국보 70호인 훈민정음(訓民正音) 해례본(解例本)과 동일한 판본이 경북 상주에서 발견됐다.

1일 상주시에 따르면 낙동면에 사는 배익기(45) 씨가 한 달 전쯤 집을 수리하기 위해 짐을 정리하던 중 훈민정음 해례본을 발견했다.

한자로 훈민정음의 글자를 지은 뜻과 사용법을 풀이한 해례본은 예의(例義), 해례(解例), 정인지 서문 등 3부분 서른 세 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번에 발견된 해례본은 예의 부분의 세 장과 정인지 서문의 한 장이 떨어져 나갔지만 보존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상주시와 배 씨는 한국국학진흥원에 감정을 의뢰해 1940년 안동에서 발견돼 국보 70호로 지정된 훈민정음 해례본과 동일한 판본이란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경북대 문헌학과 남권희 교수는 "종이 질이나 인쇄상태, 형태적 측면에서 세종 당시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연합뉴스) 경북 상주의 배익기(45) 씨가 집을 수리하던 중 발견한 훈민정음 해례본의 본문 일부. 이 책은 국보 70호로 지정된 훈민정음 해례본과 비슷한 시기에 발간된 동일판본으로 추정된다. << 전국부 기사 참조 >> << 상주시 제공 >>

한국국학진흥원 임노직 연구원도 "인쇄상태 등으로 미뤄볼 때 현재 간송미술관에 보관된 국보와 같은 초간본으로 추정된다"고 견해를 밝혔다.

임 연구원은 "특히 해례본 중간중간에 소장했던 사람이 훈민정음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붓글씨로 쓴 것이 남아 있고, 음운학적으로 정통해야 알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어 주목할 만하다"면서 "그 분이 임진왜란 이전에만 사용했던 반치음이나 여린히읗을 사용한 것으로 미뤄 임진왜란 이전의 판본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배 씨는 "고택을 수리하다 발견했다"고 밝혔을 뿐 자세한 내용에 대한 언급은 삼갔다.

상주시는 개인 소장품인 만큼 배 씨의 요청이 있으면 문화재 지정을 신청할 방침이다.

sds1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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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 꼬레아, 코리아-서양인이 부른 우리나라 국호의 역사 >

[프레시안 김하나/기자]
어릴 적 흔히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의 서양식 표기는 Corea이지만, 일본에 의해 Korea로 바뀌었다는 얘기 말이다.

올림픽이나 각종 국제 행사가 있을 때면 영문 표기가 Japan인 일본이 먼저 입장하고 Korea인 대한민국은 그 뒤에 등장하는 것을 보며, 괜히 억울해하곤 했다. 그게 다 일본 때문이라고 여겼으니까.

일본은 식민지인 조선이 C로 시작하는 나라인 게 못마땅했단다. 그래서 자신들보다 뒤에 오는 알파벳 K로 바꾸었다나.

가뜩이나 나라를 잃었던 역사도 억울한데, 일본이 그런 장난까지 쳐놓았으니, 민족 정서 제대로 훼손됐다. 이 이야기에서 괜한 억울함을 느꼈던 게 기자만은 아니었으리라.

그래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붉은 악마들은 Korea가 아닌 Corea라고 적힌 응원 띠를 들고, '오 필승 꼬레아'를 그렇게 열심히 불렀나 보다.

하지만,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을 때 로마식 국호는 Republic of Korea였고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나라 이름이 대한민국인데 왜 'Dae-Han'으로 시작하는 로마자 국호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또 북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데, 로마자 국호는 Democratic People's of Korea다. 왜 우리는 Korea를 국호로 사용하는 것일까? 대체 Corea는 뭐고, Korea는 무엇일까?

Cauly, Carli, Coray, Corey, Cory, Corai, Coria, Coree, Core…Corea!

흔히 의문을 품어봤음직한 차이다. 대개는 곧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차이에 의문을 품은 저자가 천 년의 시간을 살피며 우리나라 국호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 나왔다.


< rimgcaption > ▲Corea의 C가 K가 되기까지 충실하게 천 년 가까이 되는 시간을 고찰한 책 '코리아, 꼬레아-서양인이 부른 우리나라 국호의 역사.' 이 책의 지은이는 통일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로마자 국호는 Corea'로 '한국 국호는 꼬레아'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프레시안

< 꼬레아, 코리아-서양인이 부른 우리나라 국호의 역사 > . 이 책의 지은이 오인동은 우리나라 국호를 둘러싼 의문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고문헌과 고지도 속에서 'Korea'라는 표현의 흔적을 찾아나섰다.

그가 서양의 고문헌과 고지도 속에서 찾아낸 우리나라 로마자 국호의 흔적은 다양했다. Coree, Core, Coray, Corea, Chausien, Cauly, Carli, Corey, Cory, Corai, Coria….

이 책에 따르면 13세기 몽골 제국을 방문하고 쓴 동방견문록마르코 폴로는 고려(高麗)의 존재를 막연히 알고 Cauli라고 적었다.

그 뒤 나온 번역본 등에서는 Cauly, Carli, Kauli, Kaoli 등 각국의 언어적 특성에 따라 제각기 번역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표기가 존재했던 것은 아직 고려의 존재가 서양 사람들의 인식 속에 각인되지 못했다는 증거다. 실제로 이때 고지도에는 한반도는 섬으로 그려져 있는 게 태반이었다.

하지만, 15,6세기 유럽은 신항로를 개척했고, 아시아에 진출해 점점 고려의 존재에 대해 알아간다. 점점 서양의 언어에서 '고려'의 음가는 정착돼 간 것이다. 다양하게 불리던 고려를 Core라고 적은 지도가 등장하고, 점점 Corea로 정착해 간다.

Core(고려)+a (land)=Corea

이 책에 따르면 Corea라는 국호는 Core에 a가 붙어 생긴 말이다.

라틴어에서는 고유 명사에 접미사 a 또는 ia가 붙으면 그 땅(land), 나라(nation) 또는 지역(region)을 의미한다. 그래서 Corea(고려의 땅, 고려 지역 또는 고려국)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 중국 로마자 국호가 China가 된 것도 이와 같다. 서양은 중국의 존재를 진나라로 처음 알게 됐고, 그래서 Chin 뒤에 a를 붙인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15,6세기는 한반도엔 분명히 조선이란 이름을 가진 나라가 있었다. 왜 서양은 여전히 이곳을 '조선'이 아닌 '고려'로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고려란 국호가 5세기 고구려 장수왕이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고구려라는 국호를 고려로 바꾼 뒤부터 13세기까지 지속됐기 때문이다. 이 시기 아랍 상인들을 통해 고려의 존재는 서양에 전해졌고, 또 몽골 제국 때 서양인들은 고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미 서양인들에겐 '고려'로 인식이 굳어진 것.

시간은 흘러 19세기 제국주의 시대가 됐고, 서구 열강들은 한반도의 존재를 확실히 알아간다. 그러나, '대한제국'으로 조선의 국호가 바뀌었을 때도 미국과 프랑스 등 서구 열강은 대한제국이란 국호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여전히 Corea로 국호를 사용하겠다고 대한제국에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그만큼 천년의 시간 동안 Corea는 우리를 대표하는 국호로 자리를 잡아간 것이다.

그런데,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미국이 세계의 주도권을 장악해 가는 과정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미국은 어떤 이유에선가 Corea 대신 Korea라고 더 많이 적었다. 그래서 천년 동안 자연스럽게 통용돼 왔던 Corea가 밀려나고, Korea로 정착됐다. 오늘날 남과 북이 채택한 Korea는 승전국이 주로 사용하던 언어 관습에 따라 표기된 것이다. 미국에 대해 적대적인 북한마저도 영어 표기는 미국 관습을 따라 Korea를 택했다는 게 흥미롭다.

"로마자 국호는 Corea로, 한국 국호는 꼬레아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려가 Corea가 되기까지, 그리고 Corea의 C가 K가 되기까지 충실하게 천 년 가까이 되는 고지도와 고문헌, 각 시대의 선교사들의 서한문과 저서, 19세기 조선과 서양 각국이 체결한 조약문, 윤치호의 일기까지 저자는 실로 방대한 자료를 다루었다. 지은이 오인동은 그 과정에서 옛 포르투갈어 문장을 번역하고, 지도 속에 깨알같이 적혀 있는 글자를 읽으려고 확대경과 씨름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이 책은 탄생했다.

지은이 오인동은 하버드 의대 조교수와 MIT 생체공학 강사 등을 거쳐 현재 L.A. 인공관절연구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는 한반도에 크나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에 살면서, 조국과 국외의 한인들이 올바른 역사 인식과 시대정신을 갖는 것이 필요한 일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미국 의료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한편, 1990년대 중반부터는 L.A. 한인 사회에서 통일 연구 기구인 'Korea-2000'을 결성해 조국의 분단 극복과 통일을 위해 활동해왔다.

그는 통일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로마자 국호는 Corea로 한국 국호는 꼬레아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Corea 국호 되찾기 작업'에 매진했고, '조국 통일과 남북 간의 근본 문제들'이라는 논문집을 엮어 통일로 가는 단계에서 써야 할 국호, 국기, 국가에 대한 소견을 펼치기도 했다. 이 논문집은 1998년 남측의 김대중 정부와 북측의 김정일 정부에 전달됐다.

이런 이력을 가진 지은이는 책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적었다.

"지난 100년 동안에 쓰였을 뿐이고, 해방 후에는 차분한 성찰 없이 미국과 소련을 따라 써온 Korea를, 몇백 년의 풍상을 우리 민족과 함께 겪어온 Corea와 비교할 수는 없다. 그간 잃어버리고 살아왔던 Corea를 되찾아 우리 뜻대로 쓴다는 것 자체가 민족사적 긍지를 느끼게 해줄 것이라 확신한다. 이 자그마한 역사적 고찰이 통일 국호가 Corea로 채택되는 데 필요한 자료가 될 수 있길 바란다."

김하나/기자 ( aza1486@pressi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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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출범 2년 맞는 전문연구사업단
자연·생태 연구 '거대 화산체 위 돌출섬' 확인
주변 바닷속 거대 해산·강한 심층해류도 발견


"과학으로 독도를 지킵니다."

독도의 자연·생태를 연구하는 과학자들한테는 어떤 '연구 사명'이 배어 있는 듯하다. 2006년 '독도의 지속 가능한 이용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출범한 한국해양연구원 독도전문연구사업단의 박찬홍 단장은 "독도에 과한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발견하고 널리 알려, 독도의 실효적 지배국으로서 철저한 관리 의지를 대내외에 알리는 게 과학자가 독도를 지키는 길"이라고 말했다. 연구자 100여명이 참여해 독도의 해양 생태와 해수, 지질 연구를 수행해 온 사업단은 다음달로 만 2년을 맞는다.

지금까지 독도 연구를 통해 드러난 독도 자연의 다양한 모습을 사업단 연구자들한테 들어본다. 사업단이 최근 '독도 종합정보시스템'(dokdo.re.kr)이란 누리집을 열어 일반인도 독도 연구의 최근 성과를 찾아볼 수 있다.

■ 독도는 2000m 거대 화산체 위의 작은 점

바닷물 위의 독도는 동쪽과 서쪽 두 개의 작은 섬과 수십개의 암석군으로 이뤄져 있다. 동도와 서도라 불린다. 동도는 높이 98.6m, 지름 450m이며 서도는 높이 168., 지름 500m다. 하지만 수면 위의 두 섬은 사실 '빙산의 일각'이다.

김창환 해양연구원 박사는 "바닷물 위의 독도는 지름 10㎞, 깊이 2000m나 되는 거대 화산체 위에 작게 돌출한 두 점"이라며 "독도 주변 바닷속에는 거대한 '해산'이 세 개가 더 있는 것으로 확인돼 2005년 한국해저지명위원회가 '안용복 해산' '심흥택 해산' '이사부 해산'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말했다.

최근까지 연구를 통해, 바다 위에 솟아오른 독도 봉우리는 화산섬 독도의 분출구 주변('화구륜'의 일부)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앞으로 화산섬 분출구의 정확한 지점이 어디인지, 독도의 독특한 구조가 동해 전체의 생성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따위가 흥미로운 연구 과제로 꼽힌다.

■ 1800m 밑 '독도 심층 해류' 발견

'독도 효과'라는 말도 생겼다. 독도 주변에서는 상·하층의 바닷물이 수직으로 뒤섞이면서 표층 수온이 주변에 견줘 낮게 나타나는 현상이 관찰됐다. 조류가 강한 연안의 섬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인데, 먼바다에 있는 독도에서도 관찰돼 눈길을 끈다.

또 바닷물이 상층에선 남향 또는 남서향으로 흐르지만, 심층에선 독도 주변에서 최대 초속 28.47㎝로 북쪽을 향하는 강한 해류가 새로 발견됐다. 보통 심층 해류의 유속은 초속 몇㎝ 가량이다. 장경일 서울대 교수 연구팀이 '독도 심층 해류'라는 이름을 붙였다. 동해 먼바다의 바닷물이 해저 울릉분지로 흘러들어오는데, 이 때 밀려든 심층수가 독도 주변에서 다시 먼바다로 흘러나가는 해수의 흐름이 1800m 아래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이 심층 해류는 10~40일 주기로 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재학 해양연구원 박사는 "해수의 특성을 파악하는 일은 해양 연구의 기초 중 기초"라며 "독특한 해양 현상에 '독도'라는 이름을 붙여 외국에 널리 알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한편, 몇 해 전엔 미국 연구팀이 독도 남서쪽 해역에서 차가운 물 덩어리가 빙글빙글 도는 독특한 해양 현상을 발견해 '독도 냉수 소용돌이'라는 이름을 붙여 학계에 널리 알린 바 있다.

■ 계절 따라 생태 다양…신종 잇따라

독도 연구가 본격화하면서 독도 생태의 계절 변화도 연구되고 있다. 동식물 플랑크톤의 변화는 변화무쌍하다. 식물 플랑크톤이 대규모 증식을 준비하는 3월엔 독도 주변의 엽록소 농도가 12월보다 높다. 또 동물 플랑크톤은 12월엔 난류 덕분에 따뜻한 물을 좋아하는 종이, 3월엔 한류 덕분에 차가운 물을 좋아하는 종이 번식해 계절에 따라 플랑크톤 종이 다른 것으로 조사됐다.

사업단은 독도에서 123종의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분리했으며, 이 중 35종의 일부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했다. 신종의 미생물 6종을 발견했고, 신종 저서동물 2종을 찾아냈다.

박 단장은 "동해와 독도 해역은 다양한 해양환경 특성과 생태계를 지녀 국내외 학자의 관심을 끌 만한 더 없이 좋은 연구 대상"이라며 "독도(Dokdo)와 동해(East Sea)라는 이름이 국제학계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널리 알려 독도 영유권을 공고히 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 새 생물종 '독도' 학명 붙여 세계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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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연세대 소장 '건상열차분야지도' 등 2점
"현존 최고 국보 228호보다 시기 앞선 듯"
핼리혜성 관측 일지 '성변등록'도 공개
15일 오후 연세대 학술정보원(옛 중앙도서관) 내 전시실. 옛 천문도와 천문학, 수학 관련 고문서 40여 점이 13일부터 전시 중이다. 다음 달 28일까지 계속되는 '한국 과학의 전통과 연세'를 주제로 한 전시회다.

전시작 중 조선시대의 필사본 천문도 한 점이 눈길을 끈다. '건상열차분야지도(乾象列次分野之圖·가로 74cm, 세로 140cm)'. 이 천문도의 별자리 그림은 국내 최고(最古) 천문도인 국보 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각석'은 돌에 새겼다는 뜻)을 닮았다. 이름도 맨 앞 글자만 다를 뿐이다. '乾'도 하늘이란 뜻이니 의미는 같다.

'국보 228호의 필사본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 유물을 소개한 글이 눈에 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제작을 위해 시작(試作)한 것으로 추측되는 자료다." 이 추정이 맞다면 국보 228호보다 제작 시기가 앞서는 국보급 천문도인 셈이다.

그 근거는 뭘까. 발문에 적힌 이 유물의 제작 시기는 '홍무(洪武) 28년'으로 1395년(태조 4년)이다. 국보 228호의 제작 시기는 1395년 음력 12월로 제작 연도가 같다.

'한국천문학사'를 펴낸 나일성 연세대 명예교수는 국보와 같은 계통의 천문도이면서 구성이 다르고 국보 제작을 주도한 권근(1352∼1409)의 이름만 발문에 적혀 있는 점에 주목했다. 국보에는 권근 등 제작에 참여한 학자 12명의 이름과 관직이 적혀 있다.

이 유물은 또 국보와 달리 별자리 그림 바깥 둘레에 주천도수(周天度數·하늘의 둘레를 나타낸 눈금)가 없다. 국보 천문도는 18세기까지 절대적 권위를 누렸기 때문에 국보 이후 제작된 같은 계통의 목판본, 필사본 천문도는 구성과 별자리 그림이 국보와 똑같은 데 비해 이 천문도는 국보와 달라 후대 유물로 보기 어렵다는 게 나 교수의 설명. 나 교수는 "권근의 이름만 적혀 있는 것으로 볼 때 천문도를 돌에 새기기 전 실수를 줄이기 위해 만든 여러 시안 가운데 한 점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필사본 천문도(가로 83.5cm, 세로 139cm) 한 점도 주목된다. 이 천문도는 국보 228호 계통의 천문도지만 별자리 그림의 방위가 국보에 비해 시계 방향으로 90도 틀어져 있고 별자리 그림을 28구역으로 나눈 '28수(宿)'의 구획을 나타내는 방사선, 적도와 황도, 주천도수가 없다.

나 교수는 이 천문도가 고려 13세기 말∼14세기 초에 제작된, 국보의 모본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후대의 필사본이라면 국보와 천문도의 구성이 다를 리 없고 별자리 그림 이외의 구성 요소가 이처럼 간략할 수 없다는 것.

국보 228호는 고구려의 천문지식을 기초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 교수는 "'고려사'에, 탁월한 천문학자 오윤부(?∼1305)가 '일찍이 스스로 천문을 그려 바쳤더니 일자(日者·날의 길흉을 점치는 사람)가 다 취하여 이를 본받았다'고 적혀 있다"며 "천문도의 아이디어가 조선시대에 갑자기 나타났을 리 없는 만큼 고려시대에 제작된 다양한 종류의 천문도를 바탕으로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작 중 조선시대에 천문, 지리학 등의 사무를 맡았던 관청인 관상감의 핼리혜성 관측 기록이 적힌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22호 성변등록(星變騰錄)도 흥미롭다.

이 유물은 1759년 3월 5일 출현한 핼리혜성이 3월 29일 소멸할 때까지의 변화상을 빠짐없이 관측 기록한 것이다. 날짜별로 혜성의 이동 경로, 혜성의 꼬리 길이, 모양, 색깔까지 자세히 기록했고 3월 27일 혜성이 보이지 않는데도 혜성이 소멸한 것으로 추측할 뿐 관측을 계속해 29일 소멸을 확정했다.

김영원 연세대 학술정보원 국학연구실장은 "당시 핼리혜성은 전 세계에서 관측돼 기록으로 남았지만 '성변등록'처럼 상세한 기록은 유례가 없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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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제1의 유학지로 부상…한국어 인기도 급상승
(울란바토르=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 칭기스칸의 후예들이 사는 곳, 대륙의 나라 몽골에 한국유학 열풍이 불고 있다.

`드림 코리아'를 외치며 한국으로 떠난 노동자들의 뒤를 이어 이제는 몽골의 젊은 학생들이 더 나은 직장을 위해, 미래를 위해 저마다 한국 유학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한국유학에 대한 열기가 높아지면서 한국어의 인기도 덩달아 상승하고 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시내 초중고교에서는 한국어가 러시아어를 제치고 가장 인기있는 제2외국어로 떠오르고 있으며 20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최로 열린 한국어능력시험에는 500명이 넘는 몽골인들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 뜨거운 한국어 학습 열기 = 지난 18일 울란바토르 시내에 있는 23번학교(몽골의 국립학교는 대부분 설립된 순서 등에 따라 번호로 이름을 대신한다)의 4학년 한국어반 교실.

50여명의 학생들이 한국인 교사 권오석(45)씨의 지도에 따라 한국어 수업에 한창이었다.
오늘의 수업 내용은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한국어로 재연하는 `역할놀이'였다.

아이들은 칠판 앞으로 나와 서로 역할을 나눠 비교적 또렷한 한국어 발음으로 상황 재연을 하는가 하면 A4용지 한 장 분량의 글을 한국어로 줄줄 외기도 했다.

외국어 특수목적학교인 이 학교는 우리로 치면 외국어고 정도에 해당한다.
다만 몽골은 초중고교가 나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초등학교 1학년부터 졸업반인 11학년(몽골은 10학년제였다가 지난해 9월 11학년제가 도입됐고 올 9월 다시 12학년제로 전환된다)까지 총 2천200여명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학생들은 영어, 러시아어,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등 5개의 제2외국어 중 2개를 선택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1주일에 5~7시간씩 배운다.

이중 한국어를 선택해 배우고 있는 학생은 300여명. 이 학교는 울란바토르에서 한국어 교육을 가장 먼저 실시한 곳으로 1992년부터 한국어를 제2외국어에 포함시켜 가르치고 있다.

울란바토르의 또 다른 초중고교인 사립 멍게니학교도 몽골에서 한국어 교육을 가장 열심히 하고 있는 학교로 꼽힌다.

역시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영어 등 5개 제2외국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한국어는 300여명의 학생이 배우고 있으며 최근 23번학교가 개교 50주년 기념으로 주최한 제1회 한국어 올림피아드에서 전체 우수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엔. 르확그와 교장은 "사회주의 체제였던 1990년 이전만 해도 제2외국어는 러시아어가 대부분이었으나 민주주의로 전환되면서 여러 언어를 가르칠 수 있게 됐다"며 "최근 들어서는 한국어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아주 뜨겁다"고 말했다.

이곳 몽골 초중고교 한국어반 학생들 대부분이 졸업 후 가장 원하는 것은 바로 한국 대학교로 유학을 가는 것이다.

학생들은 한국에서 온 취재진에게 한국으로 유학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국의 의대에 진학할 방법은 없는지, 장학금 혜택은 어떤지 등등을 묻기에 여념이 없었다.

23번학교 11학년 순데리아(17)양은 "우리반 30명 중 대부분이 한국 대학교로 진학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 유학을 하고 나면 더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며 "나 역시 한국으로 유학 가 통역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 급증하는 한국 유학생 = 한국 유학에 대한 열망은 실제 한국 내 몽골 유학생 급증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몽골 정부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국에 유학 중인 자국 출신 유학생(학ㆍ석ㆍ박사 과정)수가 총 1천700여명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한국 내 외국인 유학생수로 따지면 중국, 일본, 베트남에 이어 네번째로 많은 숫자이지만 몽골로서는 전세계를 통틀어 가장 많은 규모다.

몽골 출신 유학생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나라가 러시아도, 미국도 아닌 바로 한국이라는 것이다.

`1천700명'이 그리 많다고는 볼 수 없을지 몰라도 몽골 전체 인구가 270만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굉장히 큰 규모다.

유학생을 포함해 현재 한국에 체류중인 몽골인 전체 숫자를 봐도 그렇다.
법무부는 현재 한국 내 몽골인 유학생, 노동자가 총 3만3천명 가량인 것으로 집계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 체류 외국인수로 보면 중국, 베트남, 필리핀, 태국에 이어 다섯번째이지만 인구 대비로 보면 단연 몽골이 1위다.

박진호 주몽골 대사는 "몽골 인구의 1.2% 가량이 한국에 있는 셈이어서 동네마다, 친척들마다 한국에 나가있지 않은 가정이 없을 정도"라며 "밀려드는 비자 발급 요청을 수용하기가 벅차다"고 말했다.

◇ 한국어능력시험에 지원자 몰려 = 한국 유학을 희망하는 학생이 크게 늘면서 한국어능력시험에 도전하는 몽골인들도 급증하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출제, 채점을 주관하는 한국어능력시험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외국인 및 재외동포들을 대상으로 매년 4월과 9월 두 차례 실시된다.

1997년 제1회 시험이 치러진 이후 매년 세계 각국에서 응시하려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으며 몽골 역시 최근 3~4년 간 지원자가 말 그대로 `급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1999년 200명이던 몽골인 지원자는 2004년 289명으로 큰 변동이 없었으나 2005년 486명으로 배 가까이 늘어난 뒤 2006년에는 584명, 2007년에는 925명으로 증가했다.

지난 20일 울란바토르 인문대학에서 실시된 제13회 시험엔 총 582명이 지원했으며 9월에 한번 더 실시될 예정이어서 올해 처음으로 지원자가 1만명을 돌파할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한국어능력시험은 유학 등에 필요한 일반 시험과 취직을 위한 실무 시험 등 두 가지로 나뉘는데 몽골의 경우 지원자 582명 전원이 일반 시험 지원자들이었다.

그만큼 한국 유학을 계획중인 학생들이 많다는 반증이다. 몽골에서는 토플보다 한국어능력시험에 응시하는 학생수가 훨씬 많을 정도다.

울란바토르 대학 한국어과를 졸업하고 현재 몽골 정부에서 통역비서로 일하고 있는 어트겅바타르(26)씨는 "최상급인 6급을 따기 위해 다섯번째로 시험에 응시했다"며 "서울대학교로 유학을 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역시 한국어 6급에 도전한 뭉흐차츨(16)양은 "얼마전 울란바토르 대학이 주최한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1등, 글짓기 2등을 했다"며 "한국으로 유학 가 몽골과 한국의 관계발전에 도움이 되는 외교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 한국 교육정책도 벤치마킹 대상 = 한국어능력시험 급증세에서도 볼 수 있듯 한국 유학생이 이처럼 최근 몇년 새 급격히 늘어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불과 3년 전인 2005년까지만 해도 한국 내 몽골 유학생은 200~300명 수준이었으나 2006년부터 이 숫자가 `수직상승'하기 시작했다는 게 몽골 정부의 설명이다.

이는 몽골을 비롯해 아시아권을 달구고 있는 한류, 지리적ㆍ역사적으로 가까운 이점 등 때문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2006년을 기점으로 본격화된 한국 정부의 몽골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우리나라 교육과학기술부는 아시아권 개발도상국에 교육분야 IT 기술 등 우리의 교육 노하우를 전수하는 일을 정책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이 일환으로 몽골과는 2005년 교육협력을 위한 약정(MOU)을 체결했다.

MOU 체결 이후 몽골에는 한국의 교육정책을 벤치마킹한 성과가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모델로 해 2년 전부터 `몽골식 수능'을 시행하고 있으며 EBS와 같은 교육방송국을 설립하는 작업도 추진중이다.

중고 컴퓨터 5천여대를 한국에서 지원, 웬만한 초ㆍ중ㆍ고교, 대학에 모두 한국의 컴퓨터가 보급돼 있고 2006년부터 몽골 초중고교 교원의 20% 가량이 한국을 방문해 교육 정보화 연수를 받고 돌아왔다.

한국행을 택하는 유학생이 2006년 이후 급증한 것도 바로 이런 양국의 정책적인 교류에 힘입은 바 크다.

몽골 교육문화과학부 벌러르마(48) 장관은 "몽골 교육 개혁을 위해 아시아 여러나라의 교육제도를 검토했는데 한국이 가장 훌륭한 벤치마킹 대상이었다"며 "지금은 몽골의 우수학생을 한국으로 보내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양국이 체결한 MOU가 이처럼 몽골 교육계를 변화시키는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게 한 데는 숨은 공로자의 역할도 컸다.

한국 교육부에서 파견돼 현재 몽골 교육문화과학부 교육자문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손윤선(51) 서기관이 그 주인공이다.

한국의 교육전문가 1명을 몽골 정부에 장기 파견한다는 MOU 내용에 따라 2006년 몽골에 온 그는 교육 기자재 지원, 유학생 파견 등의 교류가 실제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몽골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 유학 설명회를 열고 형편이 어려운 유학생들에겐 자비로 학비를 대주기도 하며 세종학당을 만들어 한국어 등을 가르치기도 하는 등 비공식적 지원도 아끼지 않아 몽골 내에서는 `한국 전도사'로 불리고 있다.

이런 공로를 몽골 정부로부터 인정받아 지난 2월에는 몽골 정부의 최고 훈장인 북극성 훈장을 한국인으로서는 세번째로 수상했다.

손 서기관은 "내가 하는 일이 이곳 사람들에게 이렇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한국에선 미처 몰랐다"며 "한국으로 유학보낸 학생들이 10년 후 돌아와 몽골 발전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면 굉장히 뿌듯할 것 같다"고 말했다.

◇ 교재 등 인프라ㆍ장학금 지원 절실 = 이러한 한국 유학 붐을 지속시키기 위해 지원이 필요한 분야는 훨씬 더 많다.

우선 한국어 교육과 관련해 훌륭한 교사, 교재를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
한국어 교사의 경우 최근 몽골 대학교에 한국어과를 설치한 곳이 늘면서 과거보다는 수급 문제가 나아졌지만 원어민 교사가 부족해 몽골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단원들에게 상당수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체계적인 한국어 교재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학생용으로 제작된 한국어 교재가 없어 대부분의 학교에서 일반 성인들이 쓰는 교재를 사용하고 있다.

몽골 제2의 도시 에르든트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코이카 단원 이정순(33)씨는 "에르든트 국립 도서관에 한국어 번역서가 단 두 권밖에 없다"며 "한국어 교육에 필요한 사전 하나를 구하는 것도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한국 유학을 원하는 학생들에겐 학비, 생활비 등을 해결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한국의 비싼 대학 등록금은 장학금이 없으면 감당할 수 없는 액수다.

몽골 과학기술대 담딩수렝 총장은 "정부 장학생은 한정돼 있고 학교를 통해 장학금을 받더라도 25~70%에 그치기 때문에 학생들 입장에선 어려움이 많다"며 "미국처럼 외국인 학생들이 공부를 하면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돈도 벌 수 있도록 한국 정부에서 정책적인 배려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y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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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연구센터, 일본 외무성 자료 반박

일본
외무성은 지난 2월 〈다케시마(竹島·독도를 일본에서 부르는 말)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10가지 포인트〉라는 14쪽 분량의 팸플릿을 만들어 홈페이지에 올렸다. 일본어·영어는 물론 한국어판으로도 제작된 이 팸플릿은 독도 영유권 문제를 오도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독도연구센터는 최근 〈독도는 과연 일본 영토였는가?〉라는 제목의 현안분석 자료를 만들어 일본 외무성의 팸플릿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한국은 옛날에는 독도가 있는 줄 몰랐다?

↑ 1882년 일본에서 발행된〈동판조선국전도〉(독도박물관 소장). 일본 영토를 붉은 색으로 칠한 이 지도는 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점선 안)를 다른 색으로 칠해 조선 영토임을 분명히 했다. 일본은 나중에 독도를 죽도(다케시마)라 불렀다. 조선일보 DB

일본 외무성 자료는 '일본은 옛날부터 독도를 인식하고 있었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나가쿠보 세키스이(長久保赤水)의 〈개정 일본여지노정전도(日本輿地路程全圖)〉를 들고 있으나, 독도연구센터는 "이 지도의 1779년 초판은 일본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울릉도·독도를 채색하지 않았으므로 오히려 두 섬을 일본 영토가 아닌 곳으로 인식했던 증거가 된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또 한국 문헌에 등장하는 '우산도(于山島)'는 독도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울릉도 외에 우산도가 따로 있었다는 '2도(島) 의식'은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증보문헌비고》 등 숱한 문헌에서 보이며 1757년 〈동국대전도〉부터는 독도의 위치를 울릉도 동쪽으로 정확히 표시했다.

◆울릉도·독도가 조선땅임은 일본측이 인정

일본측 자료는 1618년 일본 요나고(米子) 주민이 돗토리(鳥取) 번주로부터 울릉도 도해(渡海)면허를 받은 뒤로 일본인이 독도를 정박장으로 삼아 17세기 중엽까지 '독도 영유권'을 확립했다고 했지만, 도해면허란 외국에 나가 고기잡이를 할 때 발급하는 것이므로 그 자체가 울릉도·독도를 자국 영토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1696년 일본에서 울릉도 도항을 금지한 뒤에도 독도 도항은 금지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독도가 울릉도에 부속된 섬이었음은 당시 일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1870년의 일본측 보고서 《조선국 교제 시말 내탐서》도 '송도(독도)는 죽도(울릉도)의 속도(屬島)'라고 써서 조선령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조선의 독도 영유권을 재확인한 숙종 때의 민간외교관 안용복(安龍福)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했지만, 이는 이미 2005년 일본 오키섬에서 발견된 안용복 취조 기록으로 신빙성이 확인됐다.



◆1900년 대한제국 칙령의 '석도'는 독도
일본측 자료는 일본이 1905년 시마네(島根)현 고시를 통해 독도 영유권을 재확인했다고 했지만, '독도의 일본 영토 편입'을 내용으로 하는 이 고시는 '무주지(無主地) 선점'의 논리로서 '일본의 고유 영토였다'는 주장과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1900년 대한제국 칙령 41호에서 관할 구역을 '울릉 전도(全島)와 죽도·석도(石島)'라고 했는데 '석도'는 독도를 '독섬' '돌섬'으로 부르던 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이미 우리의 독도 영유권이 확립돼 있었으므로 관할구역과 명칭만 썼다. 자료는 또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미국이 독도를 일본령으로 인정했다'고 했지만 이것은 냉전 구도에서 일본을 포섭하려던 미국이 최종 단계에서 이 사안 자체를 삭제한 것일 뿐이다. 1950년 연합군 최고사령부 훈령(SCAPIN) 2160호를 통해 독도를 미군의 폭격연습지구로 설정한 것을 두고 '일본 영토로 인정했다'고 했지만, 1953년 독도를 연습장에서 제외한 것은 한국 정부의 항의를 수용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영토에 경비대 주둔은 당연한 일
일본측 자료는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이 '해양주권 선언' 발표하면서 독도를 불법 점거한 데 대해 일본이 엄중 항의했다고 했으나, 이 대통령의 '평화선' 선언과 독도경비대 주둔 등은 영토에 대한 주권 행사로서 국제법적으로 정당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일본측 자료는 '한국측이 독도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 회부를 거부한다'고 했지만, 대한민국의 영유권이 확립된 영토를 국제재판할 이유는 없다. 독도연구센터는 "그것은 일본측이 '대한민국의 완전한 해방과 독립'을 부정하고 과거 제국주의 침탈을 정당화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지난 1월 제작한 동영상 '역사 갈등을 넘어' 중 독도 영유권 문제를 다룬 부분.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유석재 기자
동북아역사재단이 지난 1월 제작한 동영상 '역사 갈등을 넘어' 중 독도 영유권 문제를 다룬 부분.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유석재 기자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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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흥사 사리함서 완공시기 577년 확인
아스카데라 건립 연도·탑 구조 등 일치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절인 나라(奈良)현 아스카데라(飛鳥寺)가 6세기 말 축조된 백제 왕흥사(王興寺)를 본떠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일본 고고학계에서 제기됐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16일 보도했다.

나라현 다카이치(高市)군 아스카(明日香)촌에 있는 아스카데라는 백제왕이 승려와 장인을 보내 577년 건립을 시작했다는 기록이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있어 애초부터 백제와 깊은 연관이 있는 절이었다.

일본 학자들이 왕흥사를 이 절의 모델로 지목하는 것은 지난해 충남 부여 왕흥사터에서 출토된 사리함 명문을 통해 왕흥사 완공 시기가 여태까지 알려진 600년이 아니라 577년인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또 문양이나 구조로 볼 때 아스카데라의 기와는 두 가지 다른 계통의 가마에서 구운 것인데 왕흥사 기와도 똑 같이 두 가지 계통을 보이고 있다. 절의 본당 앞에 세운 목탑의 기둥받침돌(심초석)이 지상노출식이 아니라 지중매설식이라는 점도 같다.

오하시 가쓰아키(大橋一章) 와세다(早稻田)대 교수(불교미술사)는 "왕흥사에 이어 아스카데라 계획이 추진되었을 것"이라며 "백제가 불상이나 경전을 일본에 주었지만 불교가 확산되지 않자 절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사가와 마사토시(佐川正敏) 도호쿠가쿠인(東北學院)대 교수(고고학)는 "아스카데라는 목탑의 기둥받침돌 바로 아래에 사리함을 넣었지만 왕흥사는 약간 남쪽으로 치우쳐 사리함을 묻었다"며 "중국과 한반도를 거쳐 사찰 양식이 전해지면서 일부 변용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왕흥사는 백제 위덕왕이 죽은 자신의 아들을 위해 창건한 절로 지난해 국보급 사리함이 발견돼 고고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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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우수한 언어(문자)가 아니다.
한글은, 인류 역사상 아주 중요한 지적 작업 중의 하나이다. "

이 글은 영국의 아주 유명한 백과사전에 실린 한글에 대한 설명이라고 합니다.
어느 백과사전인지는 확인 못해봤고, 몇년 전 TV강의에서 어떤 강사가 하던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어쨌든, 한글을 문자 이상의 고차원적인 인류의 산물로 본다는것 자체가 한글의 우수성이 외국에서 얼마나 크게 평가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죠.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얼마나 깊게 알고 있으며
또 얼마나 한글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래서 제가 알고 있는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몇 자 적어보고자 합니다.
혹, 표준어에 안맞는 부분이 있더라도 너그러이 이해 바랍니다.


한글이 혀의 모양을 따서 아주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거라는 건 다 아실겁니다.
그 외에도 한글이 우수한 점은 소비자 중심의 언어라는 것입니다.
즉, 만드는 사람 중심이 아닌 쓰는 사람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언어라는 거죠.

한글 이외의 문자는 단어를 발음하는데 있어 사전정보를 알고 있어야 발음이 가능하지만 (영어같은 경우 발음기호를 알고 있어야 발음을 할 수 있죠...안그러면 제멋대로죠.. 가령, person이라는 것을 읽을 때, 사람에 따라서 퍼손도 될 수 있고 페르슨도 될 수 있고 페르손도 될 수 있고 그렇다는 거죠..)

한글은 가나다라..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만 알면 모두 발음할 수 있는 언어입니다.
그래서 하루만에 배울 수 있는 문자체계인 거죠.
이게 바로 세종대왕때 민본주의의 개념이 있었다는 걸 의미한답니다.

높으신 분들이야 한글같은 쉬운 언어가 별로 필요가 없었지만 훈민정음에서 나랏말쌈이 백성과 달라.. 여린 백성을 위하여.. 라는 글귀처럼 백성을 위하여 즉, 민본주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문자이기 때문에 매우 쉬운 거라고 합니다.

또, 구어와 문어가 정확히 일치하는 유일한 언어랍니다.
말하는 음절과 글자가 딱 맞게 떨어지는 언어는 역시 한글뿐이라는 거죠.
영어로 book 이라고 하면 이게 몇글자로 읽어지는지 도통 알수가 없는데 한글은 책 이러면 한음절로 발음된다는 걸 알 수 있으니까 역시 우수한 문자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유엔에서 아프리카의 문자가 없는 원주민들에게 권하는 문자체계가 한글이라고 하네요.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뿌까띠뿔레 우까자뿔뽀까" 라는 요상야릇한 말을 표현하기에는 한글만큼 정확한 문자체계가 없다는 이유이지요.

또 한글은 세계 문화유산에도 등록이 되어있으며 유네스코에서 세계의 문맹율을 줄이는데 기여한 상을 주는데 그 상 이름이 바로 세종대왕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상을 아직 한번도 못받았다고 하네요. 왜일까요?
우리나라에서는 문맹율이 1%도 안되기 때문에 문맹 퇴치할 일이 없으니까 그렇겠죠!


언젠가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언어학자들의 학술회의에서 한글을 세계공통어로 사용하면 좋겠다는 논의도 있었다고 하는데 한국학자들은 한명도 없었다고 하는 얘기를 어디서 들었던 기억도 납니다.

어느 블로그에서인가 읽은 것 같은데, 어쩌다가 외국 친구들과 자기네 나라 문자의 우수성에 대해 논쟁을 펼치게 되었는데 'Macdonald'를 자기네 나라 말로 써보고 누가 더 비슷하게 읽는지를 해보자고 했답니다. 그러자 우리나라 사람이 한글로 '맥도날드'라고 쓰고 '맥도날드'라고 읽자 다른 나라 사람들 깨갱하면서 꼬리내렸다면서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께 감사드리며 어깨으쓱했었다는 글을 본적이 얼핏 기억이 납니다.


이러한 문자체계로서의 한글의 우수성과 동시에 우리나라말, 즉 한국어의 우수성에 대해 또 몇마디 할까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아직 노벨문학상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참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입니다. 그 이유인즉슨, 우리나라말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거죠.
“가자미 냄비에 물을 잘잘 부어 살근살근 끓이고 졸졸 졸여서 노리끼한 고기를 보시기에 소복하게 담아서 괴괴한 달빛 아래에 사랑하는 님과 둘이서 술 한 잔 곁들이니 살살 목을 넘는 요맛이 달콤하기도 하다.” [퍼온글]

이런 표현을 글쓴이의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100% 전달하면서 외국어로 제대로 번역할 수 있을까요?
가령, 빨갛다라는 의미에 대한 우리나라의 표현은 굉장히 많죠.
영어로는 red? redtic? 이거 말고 더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어로는 붉다. 빨갛다. 벌겋다. 붉그스름하다. 뻘겋다. 발그레하다. 새빨갛다.
같은 빨갛다는 말이지만 말마다 그 표현하고자 하는 느낌이 각양각색이죠.
그래서 우리나라말이 배우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노벨 문학상이 나오기를 기대해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말할때 상대적으로 제스쳐를 안쓴다고 하는데요
이유가 말로 해도 웬만한 뜻은 다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가 싶습니다.
(저만의 생각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한 언어도 쓰지 못하는 사람이 30%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최소한 한글, 한자, 영어, 로마자를 쓰니까 피라미드로 보면 가장 상위에 속해있는 그룹이겠지요?
(게다가 경상도사투리, 강원도 사투리, 전라도 사투리..까지 합하면..^^)
우리나라에서 초등학교만 나와도 세계적으로는 차원높은 언어적 유희를 즐기는 층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시 한글 얘기로 돌아와서..
우리는 항상 한글을 써서 한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편한것인지 알수가 없습니다.
눈 멀쩡한 사람이 장님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과 눈의 소중함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겠지요.

비록 실제 쓰여진 역사는 백년정도밖에 안됐지만, 외국에서 더 알아주는 한글에 대해 자긍심을 가져야겠습니다.
다행인건 북한에서나마 한글이 파괴되지 않고 보존되고 있다는 점이죠.
북한말이 웃기긴 웃기지만, 사실 그런 건 북한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어,일어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말도 잘 알아야겠죠!

영어, 일어.. 하지 말자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싸워 백번 이긴다고 했으니 영어, 일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등 당연히 해야죠.
그러나 적을 알고 나를 모르면 안되듯이 우리나라말을 제대로 알고 영어.. 기타 등등을 하자는 것이지요.

예전에 봤던 뉴스인데(아래주소), 쉬운 한글 놔두고 어려운 영어/한자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http://news.naver.com/photo/read.php?mode=LTD&office_id=028&article_id=0000215130&section_id=103&view=all
 

저는 한국인의 우수성을 주장하는 것은 아주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한글의 우수성은 주저하지 않고 주장합니다.
조상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것 중에 가장 가치있는 유산이 바로 한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수한 우리 한글 우리가 보존하고 아끼고 잘 활용하고 자긍심을 가집시다.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적어봤습니다.
결론은, 한글날을 공휴일로!!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된 사실이 서글픕니다.
저 직장인인데, 몇개 남지 않은 연차(휴가)라도 꼭 써서 쉬어야겠습니다.^^
상사가 왜? 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할지가 살짝 걱정이 되긴 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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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 우주식단에 오른 전통음식

《4월 12일 지상 350km 상공을 돌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는 세계 최초 우주인인 유리 가가린을 추모하는 조촐한 만찬이 열린다. ISS에 결합된 우주인의 생활공간인 즈베즈다 모듈의 식탁에 마련된 특별식 메뉴는 다름 아닌 한국의 밥과 된장국, 김치. 한국인 최초로 우주에 가는 고산 씨가 차린 밥상에서 러시아 우주인 3명과 미국 우주인 2명이 둥둥 떠다니며 한국의 맛을 즐길 예정이다. 그간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음식에 길들여져 있던 이들 우주인의 입맛을 한국의 음식이 바꿀 수 있을까. 4월 우주에서 벌어질 한국과 미국 러시아의 음식 삼국지를 살펴봤다. 》

우주식품 인증받은 10종 미-러 우주식에 도전장

4월 ISS서 열리는 ‘가가린 추모만찬’에 첫 등장

○ 우주에서는 미국과 러시아식만 통해

‘우주식은 정말 맛없다’는 20세기 우주비행사들의 푸념은 이제 옛말이다. 우주 음식이 우주인의 영양보충뿐만 아니라 지루한 우주 생활에 활력을 주는 요소로 인정받으면서 지구에서 먹던 그 맛 그대로의 음식이 다양한 형태로 제공되기 시작한 것이다.

ISS 우주인의 식단은 러시아 우주음식이 절반, 그리고 미국식이 나머지 절반을 차지한다. 우주 비행을 하기 몇 달 전 우주인은 150여 가지의 우주음식을 미리 맛보고 채점을 한다. 의학 전문가는 이 중 80여 종을 선택해 약 2주(16일)마다 바뀌는 개별 식단을 짠다.

러시아 우주식은 정부 주도로 만들기 때문에 우주인에게 꼭 필요한 전통음식이 주를 차지한다. 보르시치(빨간 순무가 든 수프)나 트보로크(우유를 발효시켜 만든 음식)가 대표적인 예다. 이 밖에도 통조림에 든 생선이나 고기도 맛볼 수 있다. 음식에 기름기가 많아 한국인의 입에는 다소 맞지 않는다는 평이다.

미국은 일찌감치 상업화에 눈을 돌렸다. 다국적 식품회사에 우주음식 개발을 맡겨 일반인도 구입해 맛을 볼 수 있다. 치킨 콘소메와 버섯크림 수프, 치즈와 닭고기가 들어간 볶음밥, 과일 칵테일, 달걀 스크램블 등 지금까지 200가지가 넘는 식단이 개발됐다. ○ 떨어진 입맛 자극할 한국 우주식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13일 김치, 밥, 고추장, 된장국 등 한국의 전통 식품 10종을 러시아 의생물학연구소(IBMP)로부터 우주식품 최종 인증을 받았다고 밝혔다. 한국 우주인은 4월 8일 소유스호에 자신이 먹을 한국 우주음식 4kg을 싣고 우주로 올라간다.

한국 우주음식은 중력이 거의 없고 고립된 환경에서 오래 보관할 수 있으면서도 먹음직스러운 형태와 맛을 유지하도록 개발됐다. 진공포장용기에 든 볼품없는 음식만 보던 우주인 사이에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우주밥은 고온살균과 무균포장으로 수분을 65% 함유했다. 수분을 이처럼 높이 유지한 이유는 차진 맛을 내기 위해서다. 김치는 고유의 맛과 씹는 느낌을 주면서도 국물이 흐르지 않도록 캔 안에 흡수패드를 넣었다. 매운맛과 짠맛을 줄이고 단맛을 늘린 고추장은 외국 우주인도 소스로 먹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실제로 러시아와 미국 음식이 주도하던 우주식단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올해 일본과 유럽의 모듈이 ISS에 새로 건설되면서 우주식단에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의 전통음식 100여 가지가 추가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도 이 대열에 낄 수 있도록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정읍 방사선연구원 이주운 박사는 “한국 우주음식이 ISS 식단에 정식으로 오르면 우리 음식을 세계에 알릴 뿐 아니라 경제적인 파급 효과도 매우 크다”고 말했다.

안형준 동아사이언스 기자 but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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