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09.08.31 21:00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강원
 

< 8뉴스 >

< 앵커 >

포성이 그치지 않는 먼 이국 땅에서 한글을 이용해 소수민족의 문자를 만들어 보급하는
한국인이 있습니다. 목숨을 건 문맹퇴치의 공을 인정받아서, 교육문화방면의 업적이 뛰어난 전문가에게 수상하는 유네스코 공자상까지 수상하게 됐는데요.

테마기획에서 장선이 기자가 소개합니다.

< 기자 >

옛 소련의 침공과 탈레반 지배하의 내전을 거쳐 미국과도 전쟁을 치르며 총성이 끊이지 않았던 아프가니스탄.

우리와는 종교나 문화도 달라 별 인연이 없는 이곳에서 한국인 윤주홍 씨가 문맹 퇴치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윤주홍/유네스코 공자상 수상자 : 가난의 문제도·장래의 희망도 여러분 언어의 발전 없이는 어렵습니다. 여러분들 언어를 사랑 하십니까? 보전하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이 모임의 결과는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 입니다.]

윤 씨가 이역만리에 첫 발을 디딘 것은 10년 전.

언어학을 공부하던 대학 때부터 간직한 새로운 문자 개발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윤 씨는 말이 있으면서도 글이 없던 아프간 북부 파사이족 마을에 정착해 지난 2003년 마침내 부족 문자를 만들었습니다.

하나의 글자에 하나의 소리가 있는 한글의 원리를 활용했습니다.

먹고 사는 것조차 힘들었던 부족민들은 처음에는 이방인이 만든 문자를 외면했습니다.

게다가 치안 불안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 순간도 많았습니다.

동료가 무장괴한들이 쏜 총에 맞아 숨졌고, 자신의 집 앞에 폭탄이 설치돼 가족이 위험에 처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윤 씨는 포기하지 않았고 시간이 갈수록 반응은 놀라웠습니다.

지난 2007년 부족어 수업에 대해 아프간 정부로부터 정규 교육 과정으로 인정받았고, 수업에 참여하는 부족민의 문맹 퇴치율은 100%에 달했습니다.

지금은 백여 명의 파사이족 교사가 윤 씨가 만든 문자를 부족민 22만 명 전체에게 보급하고 있습니다.

[후배들 교육시키는 것, 훈련시키는 것을 돕는 역할을 하고 싶고… 굉장히 보람을 느끼고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구나' 하는 그런 자부심도 있습니다.]

윤 씨는 다음달 유네스코 공자상을 받을 예정이지만 다른 부족의 문자를 만드는 일에도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장선이 su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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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48)는 '한국 대학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최초의 외국인 교수'로 불린다. 지난해 9월 부교수로 임용돼 1년간 학생들을 가르쳐 온 그는 17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국민이 왜 영어를 유창하게 잘해야 하느냐"며 영어 몰입교육·조기교육을 겨냥한 '쓴소리'를 내놓았다. 그는 "영어가 어떤 사람에게 필요한지 알고 교육정책이 세워져야지 영어를 아주 잘해야 하는 계층은 많지 않다"며 "관광·무역 등은 중국어가 더 필요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발음을 중시하고, 영어 선생님으로 미국인 백인 저학력자를 필리핀인 박사보다 선호하는 것은 한국 특유의 '랭킹주의'에서 기인한 것"이라며 "랭킹주의는 2차대전 무렵 일본이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강요되던 것인데, 그게 왜 2000년대 한국에서 재현돼야 하는지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어라는 외피(外皮)보다는 속에 있는 콘텐츠가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파우저 교수는 미국 미시간대를 졸업한 1983년 서울대 어학연구소에서 1년간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과의 인연을 맺었다. 미국에서 2년간 석사 학위를 준비한 것 외에는 93년까지 육군종합행정학교·KAIST·고려대 등에서 줄곧 교편을 잡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한국어 교수'가 아닌 '영어 선생님'이었다.

파우저 교수는 최근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의 한글 도입에 대해 "한국인에게는 자랑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면서도 "한글을 수출했다면 한국도 그에 상응하는 문화적 수용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한국이 진정한 다문화 사회가 되려면 결혼이민자 여성들의 모국 문화를 배우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미·일 3개 국어에 능통한 그는 '한글 세계화 프로젝트'에 대해 "국제적 위상과 교류가 늘면서 한국어 교육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다만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한글 세계화를 하는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대국(大國)처럼 되고 싶어하는 일종의 제국주의적 발상은 아닌지 우려된다"며 "한국은 '세종학당'을 프랑스의 '알리앙스 프랑세즈'나 독일의 '괴테 인스티튜트'같이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학당 프로젝트가 해외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외국인 선생을 체계적으로 끌어안지 못하고, 정부 산하기관 여러 곳에서 '중구난방'식 한국어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파우저 교수는 한국 대학생들에 대해 "교수와의 교류가 잦고 예의도 바르다"면서 "반대로 대학생들의 꿈이 너무 작아진 것은 부정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80~90년대에는 회사를 세우겠다든지 사회를 향한 큰 차원의 고민이 많았지만, 지금은 취직이 제1의 관심사"라며 "공무원이나 교사같이 안정적인 철밥통 직장에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 정환보기자 botox@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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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동안 바라본 한국, 자부심 가져도 좋은 나라”



1960 년대 후반 주한미군으로 문산의 비무장지대에 2년간 근무했던 존 던컨 교수. 그는 당시 한국 시골의 모습은 조선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을 풍경이었을 거라고 회상했다. 그로부터 40여 년 뒤. 던컨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미국 UCLA에선 ‘한류’에 빠져든 백인 학생들의 모습도 낯설지 않다고 한다. [김태성 기자]

때론 밖에서 바라보는 게 더 정확할 때가 있다. 미국 UCLA 한국학연구소장인 존 던컨(64) 교수. 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다녔고, 한국인과 결혼했고, 한국말이 완벽하고, 지금도 한국을 수시로 오가는 외국인이다. 주한미군으로 한국에 배치돼, 한국과 치명적 사랑에 빠진 이후 40여 년. 그는 끊임없이 한국과 한국인을 관찰해왔다. 그에게 40년 전과 지금의 한국은 어떻게 다를까. 뭐가 변했을까. 그게 듣고 싶어 던컨 교수를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 9일 서울시내 한 호텔 커피숍에서 이뤄졌다.


-UCLA 대학의 한국학연구소 규모는 얼마나 됩니까.

“ 한국 문학·역사·미술사·지리학·인류학·음악·종교학·언어학 등 다양한 영역을 교수 11명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부 강의를 듣는 학생이 2000~2500명 정도입니다. 저는 ‘한국 문명사 개설’이란 강의를 하는데 정원 120명이 꽉 찹니다. 제가 20년 전 UCLA에서 처음 강의할 때는 수강생이 거의 한국계 미국인이었죠. 그런데 올해 수강생 120명 중 50여 명만 한국계 미국인이고 나머지 70여 명은 비(非)한국계 학생이에요.”

-1960년대에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다 한국에 매력을 느껴서 한국학을 전공한 걸로 아는데, 뭐가 그리 매력적이던가요.

“ 대학을 다니다 학비를 벌려고 입대했어요. 1966년 9월에 한국에 와서 68년 12월까지 문산의 비무장지대에서 근무했는데 한국에는 서양에 없는 게 있었어요. 의리하고 정(情) 같은 것. 한국이 좋아서 제대 직전에 고려대 사학과에 편입학 상담을 했죠. 한국말이 짧다고 떨어졌어요. 귀국했다 다시 돌아와 1년간 어학연수를 하고 찾아가니까 그땐 허락하시더라고요.”

-40년 전 한국과 지금은 차이가 많겠죠.

“ 시골은 거의 다 초가집이었어요. 전기가 들어가는 마을도 별로 없고요. 대부분 고무신 신고 다녔고. 물론 서울은 꽤 큰 도시였죠. 70년도에 인구가 540여만 명이었으니까요. 택시하고 버스도 있고. 상수도가 들어가는 집들도 꽤 있었지만 하수도 시설은 별로 없었어요. 그때와 비교하면 서울은 완전히 국제수준의 대도시가 됐지요. ”

-이런 급격한 변화의 사례가 또 있을까요.

“ 영국이 300년, 미국이 100년, 일본이 60년 걸린 걸 한국은 30년 사이에 이룬 거예요.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런 변화를 소화해낸 것도 놀라운 일이죠. 늘 시끄럽고 문제가 많은 게 사실이지만 전반적으로 한국은 잘했다고 봐야 해요. 경제성장뿐만이 아닙니다. 민주화를 쟁취해 냈고, 교육 분야도 많은 성장이 있었습니다. 60년대엔 대부분 초등학교만 졸업했죠. 중학교 진학률이 50%가 안 됐어요. 지금은 거의 100%가 고교까지 가고, 대학 진학률도 80%가 넘지 않습니까? 한국은 경제·정치·교육·문화적인 면에서 굉장히 큰 변화를 일으킨 나라거든요.”

-밖에서 보기에 한국 민주주의는 어떻습니까.

“ 제가 한국에 있을 때 3선 개헌, 군인들의 고려대 난입사건 등이 있었어요. 지금 그런 일은 상상할 수 없죠. 민주주의가 아주 뿌리박혔다고 생각해요. 시민단체 같은 건 미국보다 한국이 더 발전해 있어요. 한국이 미국보다 더 민주주의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도 있어요. ”

-조선 당쟁부터 시작해 최근의 좌우 대립까지, 한국인에겐 ‘분열의 DNA’가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역사학자로서 어떻게 보세요.

“ 아이고, 일본 학자들이 주장한 식민지사관이 아직도 살아남았군요. 그래요. 조선시대 당쟁은 심했죠. 동서로 갈렸다가, 남인·북인 갈리고, 노론·소론에 대북·소북까지, 한없이 그랬잖아요. 그래서 일본이 조선 사람들은 스스로 나라를 다스리지 못한다고 얘기했죠. 하지만 전(前)근대적인 중앙집권 관료 국가들은 어디나 다 당쟁이 심했습니다. 한국이 특별한 게 아니거든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라고요?

“ 제가 고려대 졸업하고 하와이대에서 석사를 했는데요, 거기도 다민족 사회잖아요. 거기서 한국 사람들이 ‘일본은 저렇게 잘 뭉치는데 우린 뭐냐’고 해요. 한데 일본계 미국인들한테 물어보면 ‘ 우리는 안으로 분열이 굉장히 심하다. 잘 뭉치는 건 중국인이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인한테 물어보면 ‘우리끼린 만날 싸운다. 잘 뭉치는 건 백인이다. 그러니까 하와이 인구에서 25%밖에 안 되는데 다 장악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해요. 백인한테 물어보면 뭐라는 줄 아세요? ‘저 동양에서 온 놈들 조심해라. 지들끼리 잘 뭉친다’ 이럽니다.”

-전 세계적으로 쇠퇴하는 민족주의가 왜 한국에서만 강해지고 있을까요?

“유럽도 70~80년 전에는 지금의 동북아와 비슷한 상황이었어요. 프랑스와 독일이 굉장히 안 좋았죠. 전쟁도 하고. 그래도 유럽은 영국·프랑스·독일의 경제 규모가 비슷했죠. 한데 동북아는 안 그래요. 중국이 너무 커버렸어요. 균형이 안 잡히는 체제거든요. 한국 입장에선 민족주의를 완전히 없애기엔 시기상조입니다. 주변 강대국 속에서 통일을 이뤄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민족주의적인 정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폐쇄적인 게 아니라 ‘열린 민족주의’로 나아가야 하죠.”

-한국에선 법치가 안 된다고 하는데요.

“아무리 그래도 많이 나아졌습니다. 옛날에는 진짜 힘으로, 노골적으로 그랬지요. 권력기관의 부정부패도 일상 속에서 늘 겪었어요. 경찰도 그렇고, 구청만 가도 그랬고요. 한국은 옛날보다는 법을 존중하는 나라가 됐다고 봐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까.

“ 그럼요. 제가 중남미 학자들과 네트워크가 있는데 멕시코·브라질·칠레·아르헨티나, 이런 나라들 가보면 한국에 대한 관심이 지대합니다. 어떻게 해야 한국처럼 경제성장도 하고 민주화도 하느냐는 거죠. 동남아 쪽에서도 한국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고요. 중국도 사실은 한국을 하나의 모델로 삼고 있다는 지적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일부 학자는 한국의 역사를 자학적으로 평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제 청산도 못했고, 농지개혁도 실패했고 기득권층만의 역사라면서.

“저도 옛날엔 그런 생각을 했던 게 사실인데요, 이젠 아니라고 봅니다.”

대담=김종혁 문화스포츠에디터
정리=배노필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 존 던컨 박사=1945년생. 미국 애리조나주(州) 출신. 미국에서 한국연구가 가장 활발한 UCLA 한국학연구소장이다. 주한미군 근무를 마친 뒤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고려대 사학과에 편입했을 만큼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강한 사람이다. 부인은 고려대에서 만난 대학 1년 선배. 미 하와이대와 워싱턴대에서 고려 말~조선 초에 대한 연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내의 대표적인 친한파 인사로 미국 중·고교 교과서에 있는 한국 관련 내용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한국을 1년에 서너 번씩 방문한다. 저서에 『조선 왕조의 기원』(2000), 『다시 생각하는 유교: 한·중·일, 베트남의 과거와 현재』(공편·2002)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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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뉴시스】노창현특파원 = 한인 2세들로 구성된 뉴욕취타대가 뉴욕 메츠의 홈구장 시티필드에서 신바람나는 공연을 펼쳤다.

이춘승 단장이 이끄는 뉴욕취타대는 14일(현지시간) 뉴욕 메츠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경기전에 열린 '플러싱 커뮤니티 나이트' 행사에서 한국 전통가락과 리듬을 뉴욕의 야구팬들에게 선사해 큰 박수를 받았다.

퀸즈한인회(회장 김금옥)의 주선으로 이뤄진 이날 공연에서 15명의 뉴욕취타대는 '아리랑'을 연주한데 이어 사물놀이의 신바람나는 리듬으로 뉴요커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뉴욕 취타대에 이어 공연한 루이 암스트롱 밴드는 난생 처음 보는 악기와 독특한 리듬에 매료돼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는 후문이다. 특히 5박자와 11박자 등이 반복되며 정형화된 리듬을 깨는 연주에 대해 질문세례를 하는 등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춘승(33) 단장은 "미국인에게 우리의 전통음악을 선보였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뉴욕의 유명한 루이 암스트롱 밴드가 우리의 독특한 타악기 리듬에 놀란 것 같다. 올해가 가기전에 공동 콘서트를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전했다.

지난해 10월 한인 2세들을 대상으로 해외 취타대로 유일하게 창단한 뉴욕취타대는 한인사회의 아이콘인 코리안 퍼레이드를 비롯, 각종 행사에서 한국의 전통음악을 연주하며 민간외교사절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취타대는 조선시대 임금의 행차 때 운라와 나발, 용고, 자바라 등 우리 전통 궁중악기들을 불며 제식행렬을 선보이는 악대로 이춘승 단장이 지난해 사비로 악기 30여점을 한국서 들여왔다.

한국의 타악기 명인으로 잘 알려진 이춘승 단장은 지난 2006년 7월 국악도 1호로 미국의 음악대학에서 합창지휘를 전공하고 있다. 국악관현악단의 지휘자를 꿈꾸는 그는 미국서 공부하면서 우리 2세들에게 전통음악을 통해 정체성을 심어주겠다는 일념으로 애쓰고 있다.

지난해에 '대한민국 취타대 여름캠프'를 처음 연데 이어 올해도 8월 23일부터 28일까지 포코노에서 여름 캠프(chunseung2@gmail.com)를 열고 취타대 연주는 물론, 사물놀이와 모듬북 연주도 가르칠 예정이다.

이춘승 단장은 "뉴욕취타대가 메이시스 추수감사절 퍼레이드와 할로윈 퍼레이드, 내년 2월에는 뉴올리언즈의 세계적 축제 마디그라 페스티벌에 초청 공연을 하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robi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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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문자보다 우수하다"
아(亞) 소수민족 찾아다니며 학자들이 '한글 세계화'
정부차원 총괄단체 절실

말은 있지만 문자가 없는 소수민족에게 한글을 표기수단으로 전파하는 운동은 민간 차원에서 여러 차례 전개되어 왔다.

이현복(73)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글 해외전파'의 개척자이다. 이 교수는 1994~2003년 매년 두세 차례 태국 북부의 소수민족인 라후(Lahu)족을 찾아 한글을 전파하는 활동을 펼쳤다. 처음 5년은 라후어의 음운을 분석하는 작업을 통해 어떤 글자가 필요한지 연구했고, 이후 산골마을 사람 20여명을 대상으로 라후어를 한글로 표기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우리말 발음에 없는 목젖소리나 콧소리 등을 표기하기 위해 한글 자음과 모음을 24개에서 80개까지 늘린 '국제한글음성문자'(IKPA·International Korean Phonetic Alphabet)도 개발했다.

이 교수가 한글 해외전파에 관심을 가진 것은 영국 런던대에 유학하던 1960년대부터였다. 그는 "로마자를 뿌리로 하는 국제음성기호(IPA)보다 한글이 훨씬 뛰어난 음성체계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훈민정음학회가 찌아찌아족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만 ‘쓰기’(부리) 교재. 왼쪽 위에 한글로 적은 ‘렝까뿌에 깔리맏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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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김성용 특파원 = "미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UC버클리의 한국학 연구가 재정 문제로 위기를 맞게 됐지만 모두가 힘을 합치기 위해 모였습니다."

미국 서부의 명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동아시아 어문학과 교수와 학생, 동문, 교포들 100여명이 11일(현지시간) 버클리대 동문회관에서 한국학을 살리기 위한 특별한 모임을 가졌다.

이들은 이날 한국학 연구 교수진과 강좌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기금 모금 행사와 한국학 연구에 공헌한 인사들에 대한 포상식 등을 가지며 한국학에 관심과 지원을 호소했다.

버클리대의 한국학 강좌는 미국 이민 1세대 지식인들의 주도로 광복을 맞기도 전인 1942년에 시작돼 지금은 70년 가까운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글로벌 금융 위기와 경기 침체 여파가 버클리대의 한국학 연구 분야에까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재정 적자 위기에 처한 캘리포니아주가 주요 대학에 대한 주정부 예산 지원을 대폭 감축했고 UC버클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주요 학과별로 인력ㆍ설비 등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버클리대에서 8년째 한국어를 가르쳐온 동아시아 어문학과 전임강사 고기주씨는 "날로 발전을 거듭해 온 한국학 강좌와 연구가 지난해 이후 경제 위기의 영향으로 더없는 어려움에 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씨를 포함해 미국 유학길에 올라 언어ㆍ문학 또는 교육학 분야 석박사 학위를 가진 버클리대 한국학 강사는 현재 6명이지만 내년 이후 예산 축소로 교수 인력이 감축될 가능성이 있어 한국학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교수진의 감축은 강좌 수의 감소를 의미하는 것이고 강좌 규모가 축소된다는 건 그만큼 연구의 질과 내용을 퇴보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버클리대의 한국학 강좌는 여느 강좌보다는 인기를 끌어온 게 사실이다. 강좌 학생 수가 250-350명 가량으로 강좌 신청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아 접수를 못한 채 대기자 명단에 올리고 있다.

올해엔 특히 한국어 초급부터 5급까지의 강좌에 한국계 학생보다 외국인 학생이 처음 많아지는 인기도를 보였고 조만간 한국학이 전공 학위로 승격될 것이란 예상이 나오면서 교수진이나 학교측도 무척 고무돼 있었지만 재정 문제가 최대 걸림돌로 등장한 것이다.

고씨는 "8년 전 처음 왔을 때 한국어 교사가 2명이었으나 매년 성장을 거듭해 지금은 교사진이 6명이 됐고 강좌 신청 학생들이 너무 많아 돌려보내야 할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이런 일이 생기게 됐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동아시아 어문학과장 앨런 탄스만 교수는 이날 행사에서 "한국학이 동아시아 어문학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ks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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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박희진 기자] 넌버벌 퍼포먼스 '점프'에 대한 해외 취재진의 열기가 뜨겁다. 태권도를 뼈대로 화려한 무술과 코미디가 결합된 '점프'를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은 해외 관광객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취재진의 발길 또한 끊이지 않고 있다. 해외 관광객들이 유난히 북적이는 요즘, 종로 '점프' 전용관은 해외 관객과 공연 취재진의 발길로 분주하다.

지난 19일 세계 30개 나라에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는 'TVB' 홍콩 공중파 방송의 홍콩판 '무한도전'이 '점프'를 방문해 한국문화를 소개했다. 주말 황금 시간대에 방영되고 있는 '이분고하(耳分高下)'라는 이 프로그램은 90분 분량의 특별기획으로 한국특집으로 제작된다. 10명의 홍콩 연예인들이 한국을 방문해 '점프'를 관람하고 함께 즐기는 시간을 갖는다. 이를 통해 한국 문화를 체험하며 한국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이다.

'점프'의 해외취재는 이날 홍콩방송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달에는 일본 '추쿄' 방송의 취재진이, 이전에는 말레이시아 방송 'TV3'을 비롯해 싱가포르의 국영방송 '채널U', 캐나다 신문사 '토론토 스타'와 튀니지 국영방송 'Tunisie7' 등이 연이어 다녀갔다.

'점프' 제작사 예감 관계자에 따르면 "앞으로 몇 달간을 해외프레스의 촬영이 예약된 상황"이라며 "중국 지역 신문이나 일본 지역 방송국 등 프레스들의 러브콜이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어 "관심을 보이는 매체와 나라들이 예전보다 다양해지고 범위가 넓어졌다"며 "늘어난 해외관객과 비례해 해외 프레스의 한국 콘텐츠 관심도 지속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점프'는 대사로 극이 전달되지 않고, 신체 무언극으로 진행돼 세계인들의 소통이 가능한 작품이다. 한국의 태권도와 아크로바틱 등 화려한 '무술'과 드라마가 살아있는 코믹한 웃음으로 부담 없이 다가온 한국적의 이미지를 담아낸 공연이다.

2005년에 이어 2006년에 두 번째로 세계적인 축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여한 '점프'는 참가작 중 가장 먼저 티켓이 매진돼 세계적인 축제에서도 주목받은 바 있고, 2006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는 장기공연 되기도 했다. 게다가 찰스 왕태자를 비롯해 브레드 피트안젤리나 졸리 스타가족도 '점프' 공연을 관람했다.

jin@osen.co.kr

< 사진 > 홍콩 지상파 방송 'TVB' 제작진이 '점프'팀과 함께 홍콩판 '무한도전'을 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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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한국문학은 작품의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그 독특한 어휘와 토속적 뉘앙스를 외국어로 옮기는 번역의 어려움 탓에 세계무대에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서야 뒤늦게 번역의 중요성에 눈뜬 문학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여전히 한국문학의 번역은 지난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우리 한국문학을 번역해 세계에 알리는 어려운 작업을 벌이고 있는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의 수사(修士)가 있다. 오래도록 서강대 교수로 살다가 정년퇴직하고 서강대 옆 오피스텔에 연구소를 꾸려 여전히 한국문학 번역에 매달려 있는 테제공동체의 안선재(67·본명 브러더 앤서니·영국) 수사. 얼마 전 선종(善終)한 김수환 추기경의 '한국에 와달라.'는 주문에 선뜻 응해 한국 땅을 밟아 귀화까지 한 생활 속 수도자다.

신촌역과 서강대 캠퍼스의 중간쯤 되는 지점에 오뚝하니 선 허름한 오피스텔 12층. 꽃샘추위에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을씨년스러운 날, 작은 방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오피스텔을 찾았다. 궂은 날씨와 어둑한 조명 때문인지 조금은 어둡다 싶은 오피스텔 초인종을 누르니 기다리고 있던 노 수사가 큰 손을 내밀어 손을 반긴다. 왠지 꾸밈이 없을 것만 같은 편안한 얼굴. 푸근한 인상에 편한 마음으로 손을 잡았지만 잘 정리된 집안의 분위기가 순간 객을 긴장하게 만든다. 사방의 벽에 빼곡히 꽂힌 한국 책들, 책상 위에서 몸을 사르는 은은한 향 내음, 그 향 내음에 잘 어울리는 다기들, 그리고 공간 곳곳을 장식하는 그림과 붓글씨들. 번역 작업에 매달리는 서재라기보다는 오히려 수도자의 은밀한 신앙공간 성격이 강한 독특한 방이다.

천상병 '귀천'·고은 '화엄경'등 번역

"번역을 하다가 가끔씩 머리를 식히려 향을 사르곤 하는데 마음에 드시는지요." 지리산 자락에서 어렵게 구한 차라며 우려내 따라 주는 차 맛이 일품이다. 생각대로 화제는 자연스럽게 번역에서부터 풀어졌다. "한국문학에 관심이 많아 번역을 하고 있지만 정말 쉽지 않아요. 텍스트를 정해 1차번역 정도만 하고 세밀한 번역은 전문가에게 맡기지요." 지금까지 안선재 수사의 손을 거쳐 번역되어 책으로 마무리된 한국 시, 소설만 해도 25권. 천상병의 '귀천(Back to Heaven)', 고은의 '화엄경(Little Pilgrim)', 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Faint Shadows of Love)', 서정주의 '밤이 깊으면(The Early Lyrics)' …. 수사가 손에 잡히는 대로 빼어서 객에게 보여주는 책들이 모두 굵직굵직한 한국 문인들의 시, 소설. 그 공으로 해서 받은 상도 적지 않다. 대한민국문학상 번역상(1991년), 대산문학상 번역상(1995년), 옥관문화훈장(2008년)…. 어떻게 이 많은 작품들을 골라 번역해 냈을까.

"1988년 서강대에서 영문과 강의를 하던 중 문득 한국문학을 번역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 학생들에게 영문학 강의를 하는 것보다 직접 한국문학에 파고들고 싶은 욕심이었지요." 서강대 교수에게 뜻을 전해 가장 먼저 1990년 구상 시인의 시를 파고들었고 지금까지 모두 25권의 책을 번역해 세상에 내놓게 됐다. 수사의 이름 '안선재'도 고은 시인의 '화엄경'을 번역하면서 얻은 이름. 인도를 돌아다니며 53명의 스승을 만난 선재 동자의 역정에서 자신의 한 면을 보았고 또 닮고 싶어 본명 앤서니와 비슷하게 붙인 이름이다. 벽면에 걸린 그림이며 글씨들로 눈길을 옮기자니 사연들을 들려준다. "편액 '난석산방'(夕山房)은 고은 시인이 연구소에 달라며 써준 것이고 '다선일미'(茶禪一味)는 김지하 시인의 선물입니다. 그 옆의 불상 사진은 구상 선생이 일본에서 구해 선물하신 것이지요."

53명의 다양한 선지식을 만나고 다닌 화엄경 속 선재 동자만큼이나 안 수사의 삶은 다양한 가지를 쳐왔다. 옥스퍼드의 수재 문학도가 수사의 길을 택해 한국 땅을 밟고 대학교수에서 한국문학 번역가로 살아가는 파격의 연속. 그의 삶은 수사 자신의 말마따나 '예측불허'이다.

어려서부터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 교회를 다녔지만 중·고등학교는 감리교 계열의 학교에 진학했다고 하니 그의 신앙과 생각은 처음부터 자유로웠던 것 같다. 옥스퍼드 대학에 서 중세, 근대 영문학을 전공해 학사와 석사 학위를 딴 뒤 공부를 계속할 요량으로 프랑스에 갔다가 인연을 맺은 테제공동체가 한국에 온 계기다. 1940년 프랑스의 테제에서 시작된 테제공동체는 개신교와 가톨릭 등 종파를 가리지 않는 독특한 공동체. 화해와 일치를 통해 세상 사람들의 갈등 극복과 평화 찾기 운동을 생활 속에서 실천해 가는 수사들의 모임이다.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혼란기, 자유로운 생각의 소유자였던 그가 테제공동체에 마음을 빼앗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내가 갈 길은 이것이다." 그토록 매달려 살던 모든 학문과 종전의 삶을 송두리째 버리고 평생 구도자의 길을 선택, 파리 공동체에서 5년간을 살았고 1977년 필리핀 남부 다바오의 판자촌 주민들과 어울려 살던 무렵 우연히 판자촌을 찾아온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한국에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김수환 추기경 이야기는 1972년 이미 들은 적이 있어요. 당시 사제의 신분으로 파리 테제공동체에 들렀던 김 추기경은 한국의 암울한 군사독재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테제공동체 수사들이 기도하는 모습에 몹시 감명 받았던 것 같아요." 7년 뒤 머나먼 필리핀에서 사목하다가 우연히 김 추기경을 다시 만났고 한국에 관심 많던 수사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달라."는 추기경의 요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고 한다.

● 故 김수환 추기경 요청으로 한국 와 귀화

격동기인 1980년 한국에 들어와서도 김수환 추기경과의 인연은 계속됐다. 주일 미사 때 김수환 추기경은 영문 자료 번역 등을 자주 수사에게 맡겼다고 한다. 김수환 추기경이 화곡동의 테제공동체 한국 지부를 찾았던 일화도 들려준다. "테제공동체에 관심이 많았던 김 추기경이 찾아왔는데 대접할 게 없었어요. 라면을 끓여 드렸는데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점심을 대접받았다며 웃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서강대 교수로 살기 시작한 것은 광주민주화운동으 로 대학 문이 굳게 닫혔던 1980년. 외국인만 학교를 출입할 수 있었던 시절 우연히 방문한 서강대측이 프랑스어 회화를 가르칠 교수가 없다고 해서 학교 문이 다시 열린 뒤부터 2년반 동안 프랑스어 기초를 강의했다고 한다. 이후 영어회화와 영문학 전임강사로 줄곧 강단에 섰고 학과장도 두 번이나 지낸 뒤 지난 2007년 2월 정년퇴임하고 이곳에 연구소를 차린 것이다.

화곡동 테제공동체 한국지부에서 프랑스, 스위스 출신 수사 3명과 함께 살며 아침 일찍 이곳 연구소로 출근해 하루 종일 번역에 매달려 살다가 화곡동 숙소로 돌아간다. 주일 미사에 참석해 강론을 하기도 하고 화곡동 공동체를 찾아오는 한국인 신자들과 오순도순 이야기하며 미사도 함께 드린다.

생의 극적인 전환을 계속해온 안선재 수사. 한국에 귀화한 노 수사의 앞날이 궁금해진다. "영국에서 프랑스로,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숱하게 옮겨 살았지만 한국은 정착한 땅이지요. 하지만 이 땅에서 내가 할 일은 아직도 끝이 안 잡힙니다." '인생은 40세가 돼야 비로소 시작하는 것'(Life begins at 40)이라는 영국 속담을 들려주는 노 수사는 "한국에서 인생이 시작됐고 그 삶은 곧 신앙이고 거스를 수 없다."며 언제까지나 '어린 나그네'(고은 시인의 화엄경 번역서 이름)로 살아가겠다고 한다.

■ 안선재 수사는

▲1942년 영국 잉글랜드 출생 ▲1964년 옥스퍼드대 학사 ▲1967년 옥스퍼드대 석사 ▲1969년 박사학위 논문 준비중 파리 테제공동체 방문, 수도자의 삶 결정 ▲1969~1974년 파리 테제공동체에서 생활 ▲1977년 필리핀 판자촌에서 사목중 김수환 추기경 만남 ▲1980년 수사로 한국 생활 시작 ▲1980~2007년 서강대 교수, 학과장 ▲1990년 한국문학 번역 시작 ▲2007년~ 서강대 정년퇴임 후 오피스텔에서 한국문학 번역

글 사진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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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뉴시스】

뉴욕한인문화패 비나리와 이민자 권익옹호와 정치력 신장을 위해 애쓰는 청년학교(회장 정승진)가 정월대보름을 맞아 지신밟기행사를 7일(현지시간)맨해튼 32가 코리아타운에서 가졌다.

풍물패들은 32가 한인상가를 돌면서 액운을 몰아내는 지신밟기와 복조리를 나누워 주며 한인상가의 번영을 기원했으며 이날 행사에는 뉴욕대학 풍물패 누리도 참여했다. /정재두특파원 cjd1020@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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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가회동-통의동 연결
전통ㆍ현대 어우러진 문화벨트
국제 교류ㆍ한국작가 육성 기지로
아시아 최고 아트밸리 재탄생 기대


미술을 좋아해 인사동을 즐겨 찾았던 소설가 박완서 씨는 "인사동 길에 들어서면 전통이 뿜어내는 (특별한) 공기가 가슴을 꽉 차게 한다"고 되뇌곤 했다. 어질고 넉넉한 백자항아리며 텁텁한 토기, 아름다운 목기들이 마치 열병식하듯 주르르 늘어서서 오가는 이들을 맞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많은 이들이 "인사동은 길목만 들어서도 기분이 좋다"고 외쳤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 인사동은 문화의 향기는 퇴색된 채 목청 큰 호떡장사와 관광기념품이 난무하는 거리가 됐다. 물론 몇몇 화랑들이 건재하곤 있지만 과거의 고졸한 맛은 찾기 힘들다. 그래서 등장한 곳이 삼청동이다. 삼청동으로 통칭되는 서울 북촌 일대는 인사동에서 옮겨간 미술관과 갤러리가 중심이 되고, 독특한 아트숍과 패션숍, 식당들이 뒤를 받쳐주며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의 거리'가 됐다.

하지만 삼청동에도 아쉬움이 있었다. 바로 경복궁 동편에서 삼청동으로 오르는 길 초입에 '턱' 하니 자리잡은 국군기무사령부가 그것이었다. 마치 접근하면 발포(?)라도 할 듯 삼엄한 경비병들과, 견고한 담자락으로 무장한 군부대는 문화와는 도무지 걸맞지 않는 시설이었다.

그러던 것이 새해 들어 이명박 정부가 기무사 터에 국립미술관 서울관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함에 따라 삼청동 일대는 확실한 전기를 맞게 됐다. 특히 이 터에 '미술관이 들어서야 한다'며 1996년부터 시인 조병화(작고), 건축가 장세양 등과 함께 민간운동을 펼쳤던 정준모 고양문화재단 감독, 이두식 홍익대 교수 등은 환영성명을 내고 "앞으로가 중요하다"고 천명하고 있다. 즉 기무사를 중심으로 한 북촌 일대 아트밸리를 보다 총체적이면서도 전향적인 비전 아래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

▶교류와 혁신 주도할 신개념 미술관을=기무사 터는 대지면적 2만7354㎡(8289평), 건평 3만4490㎡(1만451평)로 미술관이 들어서기 적당한 규모다. 물론 과천 국립현대미술관보다는 작지만 이제는 양보다 질이 중요한 시대다. 특히 기무사에는 일제 때 경성제대부속병원으로 쓰였던 고풍스런 국군서울지구병원(근대문화재) 건물이며 검박하지만 잘 리노베이션하면 쓸모 있게 활용할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고무적이다. 지하로 경복궁과 연결돼 있는 것도 관심을 모은다. 따라서 문제는 미술관의 성격이다. 북촌 일대 아트밸리를 하나로 묶을 구심점으로서 신선하면서도 과감하고, 역동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미술관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 서 미술관 정책을 맡고 있는 용호성 예술정책과장은 "기무사 미술관은 건립계획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성격과 일정이 크게 달라진다"며 "기존 건물을 뼈대만 남기고 헐 수도 있고, 내부만 약간 손볼 수 도 있는 등 리노베이션이나 리모델링의 기법이 다양해 현재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고 밝혔다. 기무사 터 매입비는 1135억원으로, 올해 200억원의 예산이 책정된 상태. 향후 건립 예산 등이 순조롭게 확보될 경우 완공까지 4년이 걸릴 전망이다. 즉 2012년께 완공되는 셈.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우선 미술관의 성격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다. 도심에 이렇다 할 대형 전시관이 없으니 전시관을 만들라는 주문이 있는가 하면, 낡은 발전소를 보란 듯 활용한 런던의 테이트 모던미술관처럼 현대미술계를 리드할 미술관이 되어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이에 대해 용호성 과장은 "단순히 전시관으로 쓰기엔 도심공간으로 아까운 측면이 많다"며 "아시아의 독보적인 '문화 랜드마크'를 대전제로, 해외 미술계와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센터이자 유망한 한국작가를 월드 스타로 키우는 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을 적극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예술의전당이 들어서자 인근에 악기점 등 각종 문화공간이 생겨나며 자연스럽게 아트벨트가 됐듯 기무사 미술관도 도심의 아트밸리를 리드하고, 시너지를 많이 낼 수 있는 곳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과천 미술관처럼 닫힌 미술관이 아닌, 국제미술계와 적극적으로 호흡하고 소통하는 미술관이 돼야 한다는 것. 또 시장적 측면에서도 아시아를 대표하는 허브가 되어야 한다는 복안이다.

그는 "뉴욕의 PS1미술관이라든가 뉴뮤지엄, 샌프란시스코의 SF MoMA, 시카고 MoCA, 부다페스트의 루드비히미술관처럼 과감한 현대미술 전시를 펼치는 미술관은 물론이고, 런던의 테이트모던, 독일의 공공미술관 등을 다각도로 벤치마킹하되 '유연하면서도 신선한 미술관'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립미술관 조성 계기로 북촌의 아트밸리 급부상= 기무사 터의 미술관 조성으로 사간ㆍ소격ㆍ삼청ㆍ팔판ㆍ통의ㆍ가회동 등 북촌 일대는 '아시아 최고의 아트밸리'로 부상할 가능성이 커졌다. 더구나 북촌은 뉴욕의 소호, 베이징의 다산쯔(大山子)에 못지않은 다양한 특성을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을 비롯해 창덕궁 창경궁 종묘가 어우러져 600년 서울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국가 상징거리인 광화문과도 지척이다. 그뿐인가. 가회동과 안국동엔 전통한옥이 운집해 있다. 이처럼 차별화된 문화유산을 거느리고 있는 데다 도보로 이동이 가능할 정도의 적당한 면적과 좁은 뒷골목의 다채로운 볼거리도 매력적이다.

현재 이 지역에는 민속박물관 고궁박물관 금호미술관 아트선재센터를 비롯해 박물관 및 미술관 20여개, 갤러리는 80여곳이 넘는다. 또 향후 건립이 줄을 이을 전망이다. 정독도서관이 며 동십자각을 비롯해 아트숍, 디자인숍까지 포함할 경우 문화 관련 시설은 200여곳을 훌쩍 상회한다. 따라서 북촌 일대의 한옥촌과 갤러리, 아트숍 및 패션숍, 레스토랑과 구심점인 국립미술관이 어떻게 윈윈하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독보적 아트밸리로 부상하는가가 관건이다.

한 가지 고무적인 것은 삼청동 아트밸리가 최근 정부 발표로 권역이 더욱 넓어지고 세분화ㆍ전문화되고 있다는 점. 즉 사간동 삼청동에 이어 통의동 가회동 재동 일대까지 문화 관련 시설이 파고들고 있다. 이는 그만큼 우리 국민들의 문화에 대한 수요가 점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긍정적 수요를 건설적 측면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아울러 북촌의 마지막 대형 부지인 옛 미국대사관 숙소와 금융연수원 등도 장기적으로는 문화공간으로 활용되어야 진정한 도약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좁은 도로, 태부족한 주차장, 치솟은 부동산값 등 문제도 많아=아트밸리는 꼭 밝은 면만 있는 건 아니다. 삼청동 일대 대로변은 이미 평당 7000만원을 상회할 정도로 부동산 가격이 치솟아 있다. 뉴욕의 경우 소호의 낡은 공장에 미술가들이 모여들며 문화거리로 부상하자 상점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며 작가들은 이스트빌리지로 떠났고, 급기야 최근에는 윌리엄스버그, 덤보 등 브룩클린의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서울 북촌도 이를 답습할 공산이 크다.

주말이면 통행조차 어려울 정도의 좁은 도로와 턱없이 부족한 주차장도 문제다. 게다가 올망졸망한 이면도로의 낡은 건물은 나름대로 아기자기한 맛은 있지만 화재 등 사고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전통한옥들이 아트밸리 조성으로 인해 마구잡이로 훼손될 우려도 있다. 따라서 미술관 설립과 함께 북촌의 '아트밸리로서의 마스터플랜'이 만들어져야 한다. 당장은 좀 손해를 보고,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보다 큰 밑그림을 그려 장기적으로 한국을 대표할, 아니 아시아를 대표할 아트밸리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경쟁력 있는 아트밸리는 침체된 문화계에 활기를 불어넣고 제2, 제3의 백남준을 길러내는 소중한 예술메카가 될 것이니 말이다.

이영란 기자/yrle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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