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카운티 커뮤니티 칼리지 디스트릭트 최연소 여성 이사
"한인 등 아시안계 학생들 권익 옹호 앞장설 것"
(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벌써부터 주 상원의원 출마 제의도 받지만 우선 4년 임기의 교육평의회 이사로서 맡은 바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생각입니다."

한국인으로는 최초이고 여성으로서는 최연소로 지난 5월 1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 커뮤니티 칼리지 디스트릭트(교육구) 교육평의회 이사에 당선된 티나 박(33.한국명 다희) 씨.

여성부와 인천광역시, 매일경제신문사 공동주최로 25∼28일 하얏트리젠시인천 호텔에서 열리는 제9회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그는 25일 저녁 인터뷰에서 유창한 영어와 우리말을 섞어가며 '정치인'(politician)으로의 화려한 변신을 당당히 밝혔다.

"5명이 입후보했는데 40대 흑인 여성인 현직 이사와 제가 결선 대결을 벌였고 마침내 승리했습니다. 현직 이사를 꺾고 당선된 것은 3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야단이었습니다."

박 씨는 올 3월 예비선거에서 2위를 차지했고 결선 투표에서 14만8천243표(54.2%)를 얻어 현직 이사인 안젤라 레독 후보를 2만3천여 표차로 여유있게 누르는 이변을 연출했다.

그는 6살 때인 1983년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고 뉴욕 롱아일랜드 호프스트라대학 4학년 때 전국에서 12명 중 한 명으로 뽑혀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들어갔다. "당시 저희 학교에서 수 백명이 응모했는데 저 한 사람이 선발됐습니다."

그리고 2003년 NYSE와 증권거래위원회(SEC) 등 3개 금융기관이 참여해 미국내 7개 대형은행들 간의 '빅딜'을 성사시킨 '글로벌 세틀먼트' 작업에 참여했고 2005년 LA로 이주해 3년간 프라이빗 컨설팅 회사에서 일했다.

그러다 2008년 11월 미 대선 직후 민주당 정가 모처로부터 LA카운티 커뮤니티 칼리지 교육구 교육평의회 이사로 출마하라는 제의를 받았다.

"2008년 미 대선 때 힐러리 클린턴 진영에서 선거자금을 모으는 일에 참여하면서 보여준 능력을 높이 샀던 모양입니다. 도와주겠다며 출마를 권유했습니다."

그가 LA 커뮤니티 칼리지 디스트릭트에서 일한 것은 7월 15일 선서를 한 후부터 고작 한 달여밖에 안됐지만 '초짜' 분위기를 풍기지 않는다.

"내달 디스트릭트 챈슬러(교육구청장)을 임명해야 하고 기업이나 '인바이론멘탈 그린'(Environmental Green) 같은 단체들과 자매결연해 대졸자들의 일자리를 늘려주는 사업도 시작했습니다."

LA 커뮤니티 칼리지 디스트릭트 안에 상ㆍ하원 지역구가 포함돼 있어 이 지역 교육평의회 이사가 갖는 영향력이 지대하다. 자기 지역구 내 학교에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상ㆍ하원 의원들의 노력이 치열하단다.

LA 커뮤니티 칼리지 디스트릭트에는 9개의 칼리지가 소속돼 있고 미국내 수 백개 커뮤니티 칼리지 디스트릭트 가운데 제일 크다. 4년 임기의 평의회 이사 7명이 이 교육구의 모든 지출을 승인하고 정책을 감독한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여성으로서는 최연소로 이런 자리에 오르니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들의 사기가 오르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아시안계 학생들로부터 관내 학교를 방문하는 '캠퍼스 투어'는 언제하는지 등을 묻는 이메일을 많이 받습니다. 학교에서 한인 학생들에게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말도 듣고 있습니다. 또 선서식에서도 한국말로 '한인들에게 힘이 되겠다'고 말했거든요. 조만간 아시안계 미국인들을 위한 여러 지원책이 강구될 것입니다."

신학대학 총장인 아버지와 한의사인 어머니를 둔 1남2녀 중 차녀인 그는 아직 미혼이다.
kjw@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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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빌딩안에서 벼 수확
다케나카 헤이조(맨 앞) 일본 총무상이 11일 도쿄 중심가 고층건물 지하온실에 마련된 논 ‘파소나02’에서 벼 사이를 걸어가고 있다. 지난해 2월 인력자원서비스회사 파소나가 선보인 이 온실은 농민들에게 수경재배와 발광다이오드 등 신기술 농법을 가르치기 위한 시설이다.

도쿄/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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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한겨레 신문에 실린 사진이에요. 인터넷에서는 컬러로 나왔네요.
 
이 사진에 대해서 前 도시농업위원장으로서, 한마디 해야 겠습니다.
 
위 사진은 건물의 지하 층에 온실을 만들어 쌀농사를 지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햇빛을 대체하는 것은 발광다이오드 이고, 수분과 영양 공급은 보다 쉬웠겠죠.
 
 근데, 저렇게 하면, 땅(지상)에서 하는 것보다 '에너지'가 더 소모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발광다이오드는 어떻게 에너지를 공급받는지 궁금하군요.
 
 예전에 위와 같은 방식의 농업을 생각한 사람이 많았었던것 같습니다. 도시화로 인해 농지가 줄어들면, 주택부족을 아파트건설로 해결하는 것처럼, 농지부족도 "식물공장"의 형태로 해결하자는 것이죠.
 
 '도시내 식물공장'은 지상위의 땅을 한번만 쓰는 것이 아니라, 그 건물의 층 수 만큼 곱배기로 쓸수 있다는 것이죠. 햇빛을 대체하는 것은 '발광다이오드'등으로 해결하면 되니까요.
 
암튼, 오대민, 이영애씨가 같이쓰고, 황우석박사가 추천한 "도시농업"(학지사, 2006)이라는 책에는 위와같은 것도 도시농업의 범주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자연의 에너지, 햇빛을 받지 않고 키운 작물은 "야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네요.
 
이진아 씨가 지난번 녹색평론에 쓴 글에서, (심야)전력으로 데운 물의 파장이 사람이 몸에 별로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이야기와 연계해서 생각해보면, 발광다이오드의 빛을 받아 키운 작물이 햇빛을 받은 작물보다 좋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농지부족의 해소를 도시내 식물공장의 방법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農'의 근본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위와 같은 방식은 '우주 공간에서 달나라 식민지 건설시, 식량공급 대책'이거나, 혹은 '핵공격을 받아 형성된 구름이 수개월간 햇빛울 차단하였을시에, 지하공간에서 생존하기 위한 방법'이 될것 같습니다.
 
결국은 가진 자들의 놀음밖에는 안될것 같네요.
 
대피할 지하공간이 없는 사람은  굶어주거나, 그렇게 되겠죠.
 
세상에는 문제의 해결을 근본적으로 돌파하는 사람이 적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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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6월 15일, 연세대 1학년에 다니던 18세 청년이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이 청년을 데리고 가던 75세 미국 할머니는 비행기가 이륙하자 그에게 말했다. "이제부턴 한국말을 할 수 없다." 그 말이 서글프고도 매정하게 들렸던 청년은 할머니에게 물었다. "언제까지요?" 대답은 단호했다. "네가 영어로 꿈을 꿀 수 있을 때까지(Until you can dream in English)."

이 미국인 할머니는 '대지'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구한말의 역사적 사건들을 소재로 한 소설 '살아있는 갈대'를 쓰기도 한 대문호 펄벅(Pearl S. Buck·1892~1973) 여사다. 청년은 펄벅 여사가 혼혈아들을 돕기 위해 1964년 설립한 펄벅 재단의 제1호 장학생으로 선발된 로버트 박(60·한국명 박철수)씨다.

9 일 저녁,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난 박씨는 수십년 전 일을 떠올리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미국 휴스턴에서 목사 일을 하면서 유학생들을 위한 영어 학교 교장으로도 근무 중인 그는 최근 재미 교포 월간지에 연재했던 미국식 영어 배우기에 대한 칼럼을 모아 '펄 S.벅에게 배운 미국 영어'(도서출판 금토)라는 책을 펴냈다.

로버트 박 목사./오종찬기자 ojc1979@chosun.com
필라델피아 교외의 펄벅 여사 자택에서 3년간 여사와 함께 살면서 미국 생활을 시작했던 박씨는 "내 영어의 토대는 펄벅 여사가 만들어주신 것"이라고 말했다.

" 여사님은 제게 매일 단어 외우기, 발음하기, 듣기, 말하기 등을 맹훈련시켰어요. 같은 단어나 문장들을 수십 번 소리를 내어 반복해 읽게 했죠. 3개월 후, 마침내 영어로 꿈을 꾸게 되자 여사님이 말씀하셨죠. '네가 생각을 영어로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턴 한국말을 해도 된다'."

그는 펄벅 여사와 함께 재단 기금마련을 위해 미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여사로부터 '살아있는 영어'를 배웠다.

"미국에 온 첫해에 메인주로 여행을 갔어요. 바닷가재가 유명해 거의 매일 먹었는데 며칠 지나니 좀 질리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저녁엔 이탈리아 요리를 먹으면 어떻겠냐고 말씀드렸더니 여사께서 'Let's play it by ear'라고 대답하셨어요. 귀로 연주를 하자는 뜻인 줄 알고 의아해 여쭤보았더니 '그때 가서 결정하자'는 뜻이라고 설명해 주셨지요."

주 한 미군이었던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박씨는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다. 편견에 가득 찬 주위의 시선, 급우들의 따돌림과 놀림…. 혼혈아인 그에게 한국생활은 상처투성이였다. 기회가 찾아온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장학생으로 선발할 혼혈아를 찾고 있던 펄벅 여사와 인연이 닿아 인터뷰를 하게 되었어요. '소원이 뭐냐'고 묻기에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난 여기서 미래가 없다'고요."

그로부터 2년이 지나 청년은 '소원'을 이뤘다. 미국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했고 은행에 들어가 은행장까지 지냈다. 그는 "펄벅 여사야말로 내 인생의 은인"이라고 말했다. "기억에 남는 일화요? 철없던 틴에이저 때라…. 19세 생일날 흰색 스포츠카를 깜짝 선물해주신 게 가장 기억에 남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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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대학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사고하고 생각할 수 있는 학생을 길러 내는 겁니다. "

한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지난해 미국 종합대 학장 자리에 오른 우정은(50) 교수가 9일 국내 대학의 세계화 방안에 대해 일성을 날렸다.

미국 동부 명문 주립대인 버지니아대학교 문리대 학장인 우 교수는 홍콩과학기술대와 공동학위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를 하기 앞서 지난 8일부터 이틀 간 서울을 방문했다.

●"석학 모셔오는데만 급급하면 예산 낭비"

우 교수는 국내 대학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 사업에 대해 "유수의 석학을 모셔오는 데만 급급한다면 예산만 수십억원 낭비하는 꼴이 될 것"이라면서 "그들의 학문적 노하우를 어떻게 활용할 건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자연과학분야 미국 교수들의 '티칭 노하우(teaching know-how)는 무조건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생각할지를 더 중요하게 가르친다. 한국 교수들도 이런 방식을 배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상업주의나 무조건 세계화 바람에 휩쓸리는 행태는 대학의 자세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 대학은 물론 세계 주요 대학들도 세계화 압력을 과도하게 받는 바람에 대학의 고유한 '미션'을 잃어 버릴 때가 많다."면서 "한국 대학이 세계의 유수 대학으로 발돋움하려면 이 부분에 가장 역점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 교수는 미국 과학도들의 현주소도 지적했다. "미국이 세계 수준의 과학기술을 자랑하지만 젊은 과학도들이 너무 국내에만 매몰돼 있어 외국의 커리큘럼과 언어 등 경쟁을 벌일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남편은 국제정치학자 브루스 커밍스

샬러츠빌에 위치한 버지니아대학교는 서부 캘리포니아 UC 버클리대와 더불어 미국 최고 명문 주립대학으로 꼽힌다. 우 교수가 미시간대 교수 시절의 연구실적과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6월 외국인 여성으론 처음으로 이 대학 학장 자리에 올랐을 때 그에게 쏠린 관심은 지대했다. 컬럼비아대 정치학 박사 출신으로 1996년 백악관 자문위원을 역임했고 아시아개발은행(ADB), 맥아더 재단 등의 정책 자문역을 맡기도 했다. 저서로 '동아시아 신자유주의와 개혁'(2007년) 등 7권을 출간했다. 미국 내 동아시아, 북한정책 전문가인 그는 '한국전쟁의 기원'의 저자인 국제정치학자 브루스 커밍스의 부인이기도 하다. 취임 후 1년을 맞은 지난달 한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 교수는 "예산이 900만 달러나 삭감돼 기금 마련에 가장 역점을 쏟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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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최근호, 영어권 디아스포라 작가 조명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얼마 전 세상을 뜬 '순교자'의 소설가 김은국에서부터 '딕테'의 차학경, '네이티브 스피커'의 이창래까지……. 모두 영어로 작품을 써서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은 한국계 작가들이다.

최근 이들의 계보를 잇는 영어권 한국계 작가들의 활약상이 외신을 타고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이들은 보편적인 정서에 호소하는 수준 높은 작품들로 다문화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세계 독자에게 그 작품성을 인정받는다.

인천문화재단에서 펴내는 격월간 문화비평지 '플랫폼' 최근호는 '영어권 디아스포라 작가들이 뜬다'라는 기획특집을 마련해 영어권 한국계 작가들을 집중 조명했다.

올 들어 그 활약상이 전해지기 시작한 대표 작가로 제니스 리(37)와 문나미(41)씨를 꼽을 수 있다.

홍콩에서 태어난 한인 2세 제니스 리는 올해 초 출간한 데뷔작 '피아노 티처'가 출간되자마자 미국과 홍콩에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고 전 세계 23개국에 판권이 팔리며 단숨에 주목을 받았다.

또 어린 시절 미국에 이민 간 문씨는 지난해 말 출간한 첫 소설 '마일즈 프롬 노웨어'로 영어로 쓰인 전 세계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한 영국 오렌지상의 신인상 후보로도 올랐다.

문씨는 아쉽게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화장품 판매원과 웨이트리스, 형사 등 다양한 경험을 거쳐 소설가가 된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으로 또 한 번 해외 언론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2007년 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작가 이민진(38)씨도 한인 1.5세대 재미교포다.

변호사 출신이기도 한 이씨는 작품 속에서 자신과 같은 한인 1.5세대가 겪는 정체성 갈등을 내밀하게 그렸는데, 출간 당시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과 맞물려 더욱 주목받기도 했다.

앞서 한국계 아버지와 유대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수잔 최(40)와 한국계 아버지, 스코틀랜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알렉산더 지(42)도 비교적 일찌감치 미국 문단에서부터 주목을 받았다.

1998년 펴낸 첫 소설 '외국인 학생'으로 이름을 알린 수잔 최는 미국 언론재벌 허스트의 딸인 패티 허스트 납치 사건을 소재로 한 2004년작 '미국 여자'로 퓰리처상 최종 후보까지 올랐다.

지난해에는 테러범 시오도르 존 카진스키의 실화를 모티브로 소수인종에 대한 미국사회의 보이지 않는 편견을 그려낸 '요주의 인물'로 다시 한 번 호평을 받았다.

알렉산더 지 또한 2002년 펴낸 첫 장편 '에딘버러'가 '퍼플리셔즈 위클리'가 선정한 '올해 최고의 책' 중 하나로 선정되는 등 첫 소설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소설에서 작가는 자신과 동일한 가족적 배경을 가진 동성애자 애피어스 지를 등장시켜 성적 트라우마를 지닌 소수자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이들 작가는 이전 세대의 회고담이나 자서전적 글쓰기에서 머물지 않고 다문화사회에서 누구든 맞닥뜨릴 수 있는 보편적인 문제들로 폭넓은 독자층에 어필한다.

정은귀 인하대 교수는 "한국계 미국문학이라고 묶을 수 있는 이들 작가는 온몸으로 '탈경계'를 살면서 성과 국가, 민족 등 여러 가지 다른 층위에서 이산의 안과 밖을 경험하고 그 경험이 체화된 글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설명: 위로부터 제니스 리, 문나미, 이민진)
mihy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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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종 로열티 年 135억원 '굴레
국산품종 꾸준히 개발… 장미 점유율 1%- > 8% 결실

가장 대중적인 꽃이라 할 수 있는 장미와 국화. 누구나 좋아하는 과일인 딸기와 키위(참다래). 3,4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 재배되는 이들 작물은 외래종 일색이었다. 토종은 사실상 '씨'가 말랐다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 장미, 경기도농업기술원는 '그린뷰티'를 개발해 처음으로 해외에 품종 보호권을 판매했다. 이르면 연내 로열티를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 키위(참다래), '제시골드' ' 한라골드' 2개 품종이 뉴질랜드의 '제스프리골드' 에 대항하고 있다. 제주·경남 등으로 보급이 늘어 4~5년 내 제스프리골드를 제칠 것으로 기대된다.

↑ 딸기, 일본 품종에 거의 의존했던 딸기는 국산품종 '매향'' 설향' 등을 개발해 2005년 5%에 그친 점유율을 작년 43%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외래종 종자를 쓰는 대가는 만만치 않았다. 키위의 대표브랜드로 꼽히는 '제스프리골드'는 국내 키위 생산의 10%를 차지하고 있지만, 제주의 계약재배 농가들은 판매액의 15%를 꼬박꼬박 로열티로 뉴질랜드 제스프리사로 보내고 있다. 18일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우리 농가가 외래 종자 및 종묘를 구입해서 쓰고 그 대가(로열티)로 해외에 지불해야 하는 금액은 지난해만 무려 135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종자주권'을 되찾기 위한 토종 종자들의 약진이 눈부시다. 특히 로열티 부담이 큰 장미, 국화, 딸기, 키위가 외래종 골리앗에 도전장을 내밀기 시작했다.

농진청이 개발한 '제시골드' '한라골드' 등 순수토종 골드키위 2개 품종은 '제스프리골드'에 대항해 기염을 토하고 있다. '제시골드' 등 토종 골드키위가 선보인 지는 3년밖에 되지 않았고, 재배면적도 아직 제스프리골드의 절반에 못 미친다. 그러나 토종 골드키위는 로열티 한푼 물지 않고 인건비는 30% 정도 낮추면서 제스프리보다 40%정도 더 비싼 가격에 팔려 나간다.

김성철 농진청 온난화대응농업연구센터 연구사는 "토종 골드키위 재배 면적이 지난해 30㏊에서 올해 50㏊로 늘어나는 등 빠른 속도로 보급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약 10억원 가량의 로열티를 절약할 뿐 아니라 4~5년내에는 점유율에서도 제스프리골드를 앞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 품종에 거의 의존하다시피 했던 딸기는 '매향' '설향' 등 국산 품종의 개발ㆍ보급으로 토종의 보급률이 2005년 9%에서 지난해 43%까지 높아졌다. 2012년에는 딸기도 다른 농작물처럼 종자 로열티 지불 의무가 생기는 만큼 국산 품종 보급률을 올해 60%, 내년 70%까지 끌어올려 토종 종자로 일본 품종을 대체하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이렇게 되면 연간 30억원 가량의 로열티를 절감하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장미와 국화도 전략적으로 국산 신품종 개발ㆍ육성이 집중되면서 국산품종 점유율이 2005년 1%에서 지난해 8%까지 높아졌다. 특히 장미의 경우, 경기도농업기술원이 개발한 '그린뷰티'는 국산 품종으로는 처음으로 해외로 품종보호권이 판매됐는데, 올해 에콰도르 농가에서 재배가 시작돼 이르면 연내 로열티를 받을 수도 있다.

해외 로열티 지불액은 우리나라가 식물 분야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는 '국제 식물 신품종 보호동맹(UPOV)'에 가입한 첫해인 2002년 13억8,000만원에서 2004년 50억4,000만원으로, 2006년 125억9,000만원, 2007년 133억1,000만원으로 5년만에 10배 이상으로 불었다.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품종보호 대상 작물이 2002년 113개에서 지난해에는 223개로 늘면서, 로열티 부담도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중 로열티가 많이 나가는 작물로는 장미(72억원), 난초(26억원), 키위(15억원), 국화(10억원)가 상위권을 달린다.

반면 우리나라가 품종을 수출해 다른 나라로부터 받는 로열티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호밀품종인 '윈터그린'이 2003~2007년 캐나다로부터 3만달러를 받은 게 거의 전부다. 품종 로열티 수입은 사실상 제로(0)에 가깝다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박종현 농진청 연구관은 "아직도 해외로 나가는 종자로열티가 막대하지만 우리도 국내 농가의 로열티 부담을 덜기 위해 외국산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순수 토종 신품종을 개발, 보급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국내 시장은 물론이고 그린뷰티(장미)처럼 해외 시장 공략에도 성공하는 사례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문향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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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글 윤현진 기자/사진 박준형 기자]
"한국은 보아를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해외 어떤 팝스타도 보아만큼 뛰어난 퍼포머는 본 적이 없다"

미국에서 활동중인 한국계 뮤직비디오 감독 조셉칸(본명 안준희)이 8년 만에 고국을 찾았다. 조셉칸은 켈리 클락슨, 푸시캣 돌스, 브리트니 스피어스, 애미넴, 레이디 가가 등 세계적인 팝스타들의 뮤직비디오를 담당한 'Top Korean'이다.

올해 미국 음반 시장에 진출한 가수 보아의 뮤직비디오 'I did it for love'를 연출하며 한국에서도 많은 팬들의 주목을 받은 조셉칸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한국인 중 한 명이다. 부산 출생의 조셉칸에게 비록 한국에서의 추억은 전혀 없지만 여전히 그에게 한국은 자랑스러운 고국이다.

조셉칸은 1998년 미국 팝 아티스트 Brandy & Monica의 뮤직비디오인 'The Boy is mine'으로 한국인 최초 MTV Video Award에서 최우수 비디오상을 수상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2002 Grammy Award에서 당대 최고의 팝 아티스트인 에미넴의 뮤직비디오 'Without Me'로 최우수 비디오상과 최우수 감독상까지 거머쥐며 미국 최고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인지도를 굳히며 당당하게 미국의 최고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자리잡았다.

또 2004년 세계 최고의 여성 아이콘인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뮤직비디오 'Toxic'으로 2004 MTV Video Award에서 최우수 비디오상을 한 번 더 수상하며 현재 미국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가장 영향력 있는 뮤직비디오 감독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부산출생인 조셉칸은 3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이후 이번에 두 번째로 한국을 방문했다. 조셉칸은 지난 6월 8일부터 12일까지 한국에 머물며 한국 비즈니스 파트너인 붐칙 엔터테인먼트의 워크샵과 삼성전자, CJ미디어 등의 국내 주요 기업들을 비롯한 보아의 소속사 SM 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대표와의 개별적 미팅을 가진 후 현재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상태다.

다음은 조셉칸과의 인터뷰 일문일답니다.
- 한국 출생이라고 들었는데 미국으로는 언제 이민을 갔나?
▲ 원래 부산에서 태어났고 이후 3살 때 텍사스로 이민을 갔다. 5살 때 다시 이탈리아로 갔다가 9살 때 미국으로 돌아왔다.

-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성공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역경은 없었나?
▲ 항상 힘들었다. LA에 처음 갔을 때 30편의 뮤직비디오를 찍어 에이전시를 찾아갔다. 그런데 당시 그곳의 담당자가 내게 하는 말이 '재능이 없으니까 그만둬라'였다. 당시 내 나이 20살이었다. 하지만 생활자체가 부유하지 않았기에 그만둘 수가 없었고 뮤직비디오 일이 너무 좋았다. 내가 그만두라고 했던 사람들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다른 사람보다 10배의 노력을 더 쏟아부어야 했다. 정통 미국인이 아니기에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에 한번 실수하게 되면 '저 사람은 동양 사람이기에 우리문화를 이해 못해서 그래'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감독들과 똑같은 레벨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평가를 받을 때 당연히 내가 아닌 그들이 선택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노력과 더 높은 퀄리티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야 했다.

- 얼마전 보아의 할리우드 진출곡 'I did it for love' 뮤직비디오 연출을 맡아 큰 화제가 됐다. 보아의 뮤직비디오는 어떻게 맡게 됐나?

▲ 보아의 'Eat you up' 영상을 보고 보아의 파워풀한 퍼포먼스에 놀랐다. 보아는 굉장히 퍼포먼스적으로 춤과 노래가 모두 뛰어난 환상적인 가수다. 대단히 에너제틱한 퍼포머다. 그렇게 생각하던 어느날 보아 쪽에서 먼저 함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자는 제의가 왔기에 흔쾌히 응했다.

- 보아의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 어떤 부분에 가장 초점을 맞췄나?
▲ 전체적으로 어두우면서도 전사같은 느낌을 살렸다. 보아 뮤직비디오를 만들 때 주변의 환경적 요소보다 춤을 잘 추는 보아를 더 부각시키기 위해 일부터 심플하게 제작했다. 조셉칸의 지금까지 뮤직비디오를 보면 스토리가 있고 스페셜한 효과가 많은데 보아의 뮤직비디오에서는 기존의 조셉칸 스타일은 철저히 배제하고 보아를 살리는데 중점을 뒀다.

- 그렇다면 평소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때 가장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뭔가?
▲ 뮤직비디오를 보는 사람들이 노래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고자 한다. 특히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뮤직비디오를 통해 사람들이 노래와 교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노래를 그저 듣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래 속에 담긴 감정이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그 느낌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뮤직비디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 미국 음반시장에서의 보아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 두말할 나위 없이 보아는 대단하다. 미국 음반시장에서의 성공여부 역시 굉장히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해외 어떤 스타들과 비교해도 보아만큼 퍼포먼스를 잘 해내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보아는 예쁘고 춤도 잘 추고 노래까지 잘한다. 가능성은 무한하다. 그런 보아를 한국이 굉장히 자랑스러워해야 할 것이다.

- 특별히 뮤직비디오라는 장르를 추구하는 이유가 있나?
▲ 12살 때부터 취미로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영화를 만드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뮤직비디오는 짧은 시간 안에 강한 영상을 보여줄 수 있다. 원래 뮤지션들을 좋아한다. 영화가 마라톤이라면 뮤직비디오는 100m 달리기다. 빨리 움직이는 시간동안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다.

- 지난 2004년에 영화 '토크'를 찍었던데 영화에도 남다른 관심이 있나?
▲ 15살 때부터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어릴적부터 원래 내 꿈은 영화감독이었지만 할리우드 커넥션이 없어서 뮤직비디오부터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 가장 빠르고 값싸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뮤직비디오다. 뮤직비디오 디렉터로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 앞으로 영화쪽으로 진출할 생각도 있나?
▲ 당연하다. 나의 최종 목표는 영화다. 현재 영화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윌리엄 깁슨의 'Neuromancer'이라는 책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계획중이다. 1년 안에 크랭크인에 들어갈 생각이다. 캐스팅도 준비중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내 롤모델이다. TV쇼나 영화, 만화, 하이스쿨 코미디 등 아이디어는 많지만 SF액션 영화를 만들고 싶다. 나중에 회사를 더 크게 세우게 되면 분야를 나눠서 뮤비, 영화, TV쇼, 뮤지컬 등 여러 분야에서 내 아이디어를 펼치고 싶다.

- 최근 칸영화제를 비롯한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가 전세계 영화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인으로서 그 때 기분이 어땠나?

▲ 정말 자랑스럽다. 한국영화에는 코미디, 액션, 멜로 등 여러 가지 문화가 복합적으로 담겨있다. 다양한 장르가 잘 조화를 이뤄 훌륭한 완성작이 되는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영화 중 '태극기 휘날리며' '조폭마누라' '괴물'을 가장 인상깊게 봤다. 한국말을 부지런히 배워 언젠가는 한국배우들, 한국대사들로만 구성된 진짜 한국영화를 내가 직접 제작하고 싶다.

- 조셉칸에게 한국은 어떤 곳인가?
▲ 너무 어렸을 때 이민을 가서 한국에서의 특별한 추억은 없지만 종종 미국에서 한국의 꿈을 꿀 때가 있다. 신기하게도 꿈속에서는 한국말을 다 알아듣는다. 한국 국민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과 조직적으로 잘 유기된 모습을 앞으로도 꾸준히 배우고 싶다.

칸에서 한국영화가 선전하는 이유는 한국 사람들의 민족성 자체가 굉장히 성실하면서도 창의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인들만의 매력이자 장점이다. 나 또한 그런 한국문화를 배우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미국의 다른 감독들보다도 훨씬 더 강점을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 한국은 내가 크고 소중한 영양분이다.

- 한국을 빛내는 세계 최고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서 제2의 조셉칸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이 있다면?

▲ 나는 내가 절대로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최고라서 나를 서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긍정적으로 도전하라. 물론 재능도 중요하지만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용기와 자신감이 가장 중요하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 계속 꾸준히 연습하며 도전한다면 언젠가 실패하는 것도 즐기게 될 것이고 결국에는 성공할 것이다. 복서는 링에서 내려오면 더 이상 복서가 아니다. 계속 쓰러지더라도 링 위에서 계속 일어나 싸워야 진정한 복서다. 끊임없이 노력하며 즐기길 바란다.

윤현진 issuebong@newsen.com/박준형 soul1014@new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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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 성공스토리 ◆

"노르웨이에서 라면을 먹고 싶다면 '미스터 리(Mr. Lee)'를 찾으세요."

노르웨이 라면계 전설 이철호 씨(72ㆍ사진)는 '미스터 리'가 노르웨이에서는 라면을 뜻하는 고유명사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가 만든 라면 브랜드 '미스터 리'가 무려 20년 이상 노르웨이 라면시장 점유율 80% 이상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이철호 씨가 오슬로 근교 한 식당에서 80년대부터 지금까지 차고 있는 돌핀 전자시계를 들어보이고 있다.

덕분에 그는 노르웨이에서 '라면왕'으로 불리며 총리보다 더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2000년 오슬로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시상식 때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미스터 리' 조국의 대통령으로 소개될 정도였다.

이씨가 라면을 처음 노르웨이에 도입한 것은 1970년대 중반 그가 요리사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그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17세의 나이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노르웨이 땅을 밟았다. 처음엔 청소나 접시닦이 일을 하다 한 호텔 주방장 눈에 띄어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어 프랑스에 요리유학까지 갔다. 이씨가 60년대 중반 독일에서 노르웨이식 뷔페 식당을 열어 대박을 터뜨렸을 때 그의 주요 고객에는 독일 총리 등 유명인들이 포함됐다. 그가 다시 노르웨이로 초빙돼 요리사로 일하던 71년 그는 스웨덴 정부로부터 한국 출장을 요청받았다.

이씨는 한국 출장에서 처음으로 라면과 인연을 맺게 됐다. 그는 "한국에서 라면을 처음 맛보았는데 진짜 맛있었다"며 "요리사로서 노르웨이에 꼭 소개하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나 노르웨이인들에게 낯선 음식인 라면을 소개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우선 한국 라면을 노르웨이시장에 팔기 위해 거쳐야 하는 각종 통관 절차가 3년 이상 걸렸다. 특히 방부제 등 성분검사 통과가 까다로웠다. 게다가 노르웨이인들은 라면 요리를 할 줄 몰라 라면을 그냥 버리기 일쑤였다.

결정적인 문제는 한국 라면이 맵고 얼큰해 노르웨이인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그는 해결책을 찾으러 노르웨이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스를 가지고 한국의 유명 라면회사 연구소를 방문했다. 연구진과 함께 노르웨이인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새로운 라면 스프를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이씨는 "프랑스 독일 등에서 요리사로 일한 경험을 되돌아 보니 나라마다 독특한 소스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노르웨이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소스를 먼저 알아놓은 다음 거기에 맞추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주로 매운맛을 빼고 기름진 맛을 더했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는 "처음에 한국 라면을 그대로 도입했다가 입맛에 맞게 바꿔서 출시한 이후 매출이 급격히 늘었다"며 "당시 한국에서 노르웨이로 컨테이너 단위로 주문하는 사람은 내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매출 증가와 함께 그가 주력한 부분은 홍보였다. 벌어들인 수익 중 필요한 경비를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홍보에 투입했다. 그는 신문 방송 광고는 물론 한국 여행 경품까지 걸었다. 한국을 알리면 라면도 자연스럽게 알려질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미스터 리' 라면 표지에는 '소고기맛' '닭고기맛' 등 한글이 꼭 적혀 있는데 이것도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덕분에 노르웨이에서는 라면의 원조가 일본이 아닌 한국으로 알려져 있어 일본 라면이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사업이 계속 승승장구하던 89년 어느날 이씨는 갑자기 자신의 라면 회사를 노르웨이 최대 식품회사에 넘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팔아치우자 그의 주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이씨는 "내가 100살도 못살텐데 내가 없어도 '미스터 리' 라면이 영원히 지속되도록 하기 위해 그런 결정을 내렸다"며 "동양 사람들이 자기 묻힐 묘를 만들고 죽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더욱이 그의 딸 3명이 모두 사업을 물려받을 뜻이 없다고 밝혀 그는 더 쉽게 '미스터 리' 라면 사업을 넘길 수 있었다.

이씨는 90년부터는 라면 개발만 필요에 따라 해주고 한국과 노르웨이를 양국에 홍보하는 일에 전념해오고 있다. 그는 또 세계 최초로 해산물대학교를 노르웨이에 설립하는 것을 추진 중이며 인천 송도에는 '리틀 노르웨이'라는 노르웨이 타운 건설도 추진 중이다.

한편 그는 한국인들에게 노르웨이에 와서 다양한 사업을 해볼 것을 권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노르웨이에서 근면성실한 한국인이 성공하기 쉽다는 설명이다.

◆ 노르웨이선 '빨리빨리' 안통해

"노르웨이 사람들과 일하려면 서둘러서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몇 년이 걸려도 꾸준히 일을 해야만 합니다."

라면왕 이철호 씨는 노르웨이에서 사업 성공 비결을 묻자 이같이 대답했다. 신뢰를 쌓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도 있으나 노르웨이인 특성이 뭔가를 즉각적으로 하는 데 익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는 "만일 누군가가 노르웨이인에게 어떤 부탁을 하면 그냥 지나가는 말로 생각하고 부탁을 바로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며 "1년 후, 그리고 2년 후 꾸준히 부탁하면 진실성을 깨닫고 기꺼이 들어준다"고 말했다.

이씨는 따라서 한국 사람들이 막 덤벼들었다가 안 된다고 바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노르웨이에는 공무원 부정ㆍ부패가 거의 없어 뇌물로 매수하려는 생각은 완전히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노르웨이에서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절차에 보통 3~7개월이 걸리는데 이를 앞당기기 위해 무슨 수를 쓰면 오히려 추가 조사를 받게 돼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씨는 노르웨이 언어 습득도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노르웨이인은 대부분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으나 현지 언어를 모르면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사실 50년여 전 노르웨이로 이민 올 당시 자신의 영어 능력을 믿었으나 노르웨이어 습득의 중요성을 깨닫고 숙달되기까지 하루 3시간씩 자며 현지어 공부를 했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마지막으로 한국인으로서 노르웨이에서 사업을 한다면 한국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추천했다. 그의 '미스터 리' 라면은 1970년대 중반 출시될 때부터 갖가지 한글을 라면 겉봉에 넣었는데 호기심을 자극하는 등 고객들 관심을 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슬로(노르웨이) = 윤원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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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A 한국선수 초청 프로암대회도 열어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인더스트리시티에서 퍼시픽팜스리조트를 운영하는 존 셈켄(53) 사장은 한국 스포츠와 한국인에게 '푹 빠진' 사람이다. 그는 1999년 문을 연 세계적 다목적 스포츠시설인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센터의 건립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스테이플스센터를 홈 구장으로 쓰는 미 프로농구(NBA) 엘에이(LA) 레이커스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엘에이 킹스 구단의 지분도 갖고 있는 재력가다.

그가 최근 인더스트리 엑스포센터에서 열린 2009 국제태권도 페스티벌의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이 대회를 16년째 개최하고 있는 한국인 전영인 사범의 제의를 흔쾌히 수락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리조트를 대폭 할인해 선수단 숙소로도 내놨다.

지난 4월에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서 활약중인 한희원, 박인비, 최나연 등 한국 선수 20여명을 초청해 퍼시픽팜스리조트 안 골프장에서 프로암대회를 열었다. 한국 선수들만 참가해 수익금 중 일부를 미국여자프로골프 기금으로 전달한 이 대회의 후원을 맡은 것이다. 그는 "한국 선수들은 평정심이 좋고 끈기있게 노력한다. 특히 미국 골프계를 장악하다시피 한 여자 선수들의 실력은 놀랍다"고 칭찬했다.

셈켄이 한국 스포츠를 좋아하고 후원하는 것은 한국과의 남다른 인연 때문이다. 그는 4년 전 두 살 아래 한국인 이미혜(51)씨와 결혼했다. 결혼식도 미국에서 서양식과 한국의 전통혼례로 두 차례 치렀다. 그는 부인에 대해 "한국에서 태어나 8살 때 미국으로 건너와 지금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영향력 있는 부동산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뿐만 아니다. 셈켄은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8년 동안 전투 조종사로 복무한 '해군 파일럿'이었다. 그는 "옛 소련이 붕괴되기 직전이던 90년을 전후해 4년 동안 미국 항공모함이 동해에 배치됐을 때 한국에 파견된 적이 있다"고 했다. 이런 특이한 이력 덕분에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 탑건 > 의 기술자문을 맡았고,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셈켄이 운영하고 있는 퍼시픽팜스리조트의 실무 책임자인 운영담당 부사장도 한국인 임희원(53)씨다. 임씨는 퍼시픽팜스리조트에 대해 "로스앤젤레스 인근에서 골프코스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숙소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셈켄은 "한국의 영해만 가보고 육지는 아직 구경하지 못했다. 아내의 조국을 꼭 방문하고 싶다"며 밝게 웃었다.

로스앤젤레스/글·사진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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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 일본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김치는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는데 요즘엔 소주는 물론 막걸리, 떡볶이까지도 즐길 수 있게 됐죠. 한국에 대한 인식이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재세 재일본한국인연합회 회장(49)은 "최근 높아진 한국의 위상과 한류 열풍으로 달라진 일본 내 교민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며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9일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한국인이란 사실을 숨기고 살았던 사람들도 '커밍아웃' 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지하철 안에서 눈치를 보면서 우리말로 속삭이며 대화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며 웃었다. 한인회는 최근 10~20년 동안 일본에 건너와 정착한 한국인들이 결성한 단체다. 1945년 설립된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이 교포 중심의 조직이라면 한인회는 비교적 나중에 일본에 정착한 사람들이 만든 모임이다. 한인회는 35만여명을 거느린 민단에 비해 회원이 불과 5000여명에 지나지 않지만 유학생들의 정착 지원, 교민들의 이익 대변을 위해 활동영역을 넓혀 나가는 중이다. 민단은 해마다 8000~1만명 정도가 귀화를 하고, 고령으로 인한 자연 감소 등으로 조직력이 많이 약화돼 있다.

지난달 회장에 취임한 그는 무엇보다도 유학생과 젊은 인재들이 일본 땅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두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겪었던 고생을 생각해서라도 한국인 젊은이들의 일본 정착을 적극 지원하면 우리 때보다 훨씬 빨리 기반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벤처 비즈니스 육성 기구를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또 "한인회관 설립, 코리안타운 조성 작업도 임기 중에 추진해 나갈 과제"라고 밝혔다. 코리안타운 조성과 관련, "요코하마의 중화가처럼 이곳에 오면 한국에 가지 않아도 될 만큼 문화와 관습을 접목시킨 한인타운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며 "10년 이상 걸리는 사업이지만 현지 여론도 좋아 조성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민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교육문제를 꼽았다. 현재 일본 내 한국 학교는 도쿄, 교토, 오사카 3곳뿐이다. 총련계 민족학교가 전국에 77곳이 있는 것과는 큰 차이다. 그는 "학교 문제만큼은 정부에서도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며 "도쿄의 경우 우에노나 닛포리 등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최소한 한 곳은 더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 도쿄 | 조홍민특파원 dury129@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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