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평론가인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이 시대 최고의 문제작가 중 한 명이다. < 세상을 뒤흔든 여인들 > 부터 < 조선왕 독살사건 > 까지 그가 쓰는 역사 이야기는 늘 도발적이며 파격적이다. 학계의 정설 또는 통설이 뿌리부터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같은 내용이라도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전혀 다른 이론으로 재구성해낸다. 그에 따르면 정조는 병으로 죽은 게 아니라 살해되었고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은 후대에서 지어낸 새빨간 거짓말이다. 이런 주장을 그저 작가의 상상력으로 하는 게 아니라 역사적 문헌을 토대로 실증적 연구를 거쳐 내놓는다. 소설이 아니라 학술인 것이다.

대중은 이런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자연히 매료된다. 1997년 이후 그가 낸 책은 30여 권. 1년에 2~3권가량을 내지만 그때마다 화제와 반향을 부른다. < 이덕일의 여인열전 > < 오국사기 > <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 등 숱한 베스트셀러를 내면서 그는 전국적인 유명인사가 됐다.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가 대학 강단에 서지 않고 오로지 책, 그것도 지루하고 딱딱하기 쉬운 역사서적을 써서 '먹고사는 데' 성공한 최초의 인물이 아마 그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그가 새 책을 냈다 하면 만사 제쳐놓고 서점으로 달려가는 팬들이 생겨났을 정도다. 이미 그는 많은 이의 '역사 스승'인 것이다.







그런 그를 학계에선 정통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센세이셔널한 주장으로 남들의 이목이나 끄는 이단아(異端兒)로 취급하려 든다. 때로는 몇몇 허점을 짚으며 엉터리라고 무시한다. 하지만 그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덕일 소장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사학계는 조선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주류사관, 식민사관론자들이 대부분 장악하고 있어 진실이 통하지 않는 구조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어느 쪽이 옳은지 여기서 섣부르게 판단할 필요는 없다. 이덕일 소장이 '다수에 맞서는 외로운 소수'라고 해서 동정적으로 보아줘야 할 이유도 없다. 학문의 세계에선 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누가 더 정확한 문헌과 고증을 통해 설득력 있는 논리와 근거를 제시하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이 소장은 요즘 한 일간신문에 주목할 만한 글을 연재하고 있다. '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라는 제목부터 그가 무언가를 작심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실제 그는 글머리에서 "주류 역사학계의 기존 이론체계를 뒤집어엎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무슨 이론이 어떻게 잘못되었기에 뒤집어엎어야 한다는 걸까. 이번주 '이종탁이 만난 사람'이 이 소장을 찾아간 것은 그렇게 공개 도전장을 낸 배경을 들어보기 위해서다. 인터뷰는 지난 24일 서울 마포에 있는 그의 연구소에서 있었다.

본론에 앞서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는 드라마 선덕여왕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극중에 나오는 미실을 두고 실존인물이다, 아니다, 말이 많은데요.

"저는 드라마를 잘 보지는 않습니다만 미실이 역사 속 실존인물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이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미실이 안 나온다는 점을 근거로 듭니다. 화랑세기는 8세기 무렵 쓴 것이고 삼국사기, 삼국유사는 12~13세기에 쓴 것입니다. 뒤에 쓴 책에 안 나온다고 앞에 쓴 책을 위서라고 말하면 논리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기초적인 사료 비판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지요."

여기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미실이 나오는 문헌은 < 화랑세기 > 다. 신라시대 김대문이 쓴 이 책은 현존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1989년 부산의 한 가정에서 그 필사본(筆寫本)이 공개됐다. 여기에 화랑의 기원, 역대 화랑의 지도자와 함께 미색(美色)을 무기로 신라 3대 왕과 성관계를 가지며 임금보다 더 큰 권력을 휘두른 미실에 대해 자세히 언급돼 있다. 다수 역사학자들은 이 필사본을 필사자인 박창화(1899~1962)의 위작으로 보고 있으나 서강대 이종욱 총장 같은 학자는 진짜라고 주장하는 등 진위 논란이 지금까지 가시지 않은 상태다. 이 필사본을 진짜로 보는 이덕일 소장은 "우리 역사에서 복수의 여성들에게 일부종사(一夫從事)를 시킨 남성은 많아도 복수의 남성에게 일부종사(一婦從事)를 시킨 여성은 미실이 유일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필사본을 진짜로 보아야 할 근거가 있나요.

"그게 가짜가 아닌 이유는 너무나 많습니다. 우선 그 책에 등장하는 인물이 수백 명입니다. 이들을 가로세로 어느 쪽으로 놓고 보아도 엇갈리지가 않아요. 양주동이 한자와 이두가 섞인 향가를 우리말로 번역했다고 자칭 국보라고 한 게 1930년대입니다. 박창화의 필사본도 그 시기에 만들어졌어요. 만약 위서라면 향가를 한자로 지었다는 얘기거든요. 그런 능력을 가졌다면 박창화는 우주보(宇宙寶) 소리를 들어야 할 겁니다. 또 '신라 지배층의 성풍습이 이렇게 문란해서 어떻게 나라를 유지하겠느냐, 그러니 위서다'고 하는데, 유교 사관의 관점에 불과합니다. 원문을 필사하는 과정에서 일부 누락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위작으로 단정할 근거는 되지 않아요."

필사자가 성애소설을 썼다는 이력을 들어 의심하기도 하던데요.

"그는 일본 궁내성 도서관 촉탁이었습니다. 이 직책을 의미 있게 보아야 합니다.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얼마나 많은 문화재와 도서를 약탈해갔습니까. 희귀한 사료들이 궁내성 도서관에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창화가 그곳 자료를 보고 베꼈다고 유추하는 게 상식 아닌가요. 저는 중국 서안이나 낙양, 일본 궁내성 같은 곳에 한국사 관련 고대 사료가 지금도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국가 차원에서 그런 곳에 목적의식적으로 사람을 파견해 먹고살게 하면서 자료 찾게 하면 아마 중요한 게 나올 거예요. 그 방법이 일본·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응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역사학자로서 TV 사극의 역사 왜곡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건 간단한 문제입니다. 역사를 연구하다 보면 사료와 사료 사이에 빈 공간이 나옵니다. 사극은 이 부분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메우는 거죠. 사료 자체를 비틀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사극을 빙자한 SF입니다. 예를 들어 드라마 주몽에서 소서노가 주몽을 만날 때 어린 여자로 나와요. 사료에 보면 유부녀야 맞거든요. 그런 식은 안 된다는 겁니다."

사극 얘기는 이쯤에서 접고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주류학계와 한판승부를 벌이겠다는 각오인 듯한데 배경이 무엇입니까.

"애초부터 예상한 싸움인데 그 시기가 조금 빨리 왔습니다. 역사학계에는 두 가지 흐름이 있는데 하나는 단재 신채호, 백암 박은식과 같은 독립운동가에 연원을 두는 사관이고, 다른 하나는 일제시대 때 조선사편수회에 있던 세력의 후예들이 보여주는 식민사관입니다. 이중 후자, 즉 인조반정 이후 집권한 노론벽파의 자손들이 광복 이후 학계를 장악했어요. 그래서 역사교과서가 노론의 시각으로 쓰여졌습니다. 우리가 엉터리 역사를 배우고 자란 것이지요. 이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싶었는데 요즘 들어 더 심화하고 있어요."

그렇게 느낀 계기가 있을 것 같은데요.

"올 초 정조의 어찰이 발견되자 정조독살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정조독살설을 못마땅히 여기던 노론의 후손들이 일제히 출동한 셈이지요. 그런데 어찰이 무슨 독살설의 진위를 가리는 사료라도 된답니까. 정조가 정적이던 노론의 거두 심환지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러니까 심환지는 정조 측근이었다, 그러니 왕을 독살했을 리가 없다고 한다면 박정희가 김재규의 손에 죽은 것은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시저가 부루투스에게 죽은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전혀 근거없는 노론벽파적 시각일 뿐이죠."

독자들 이해를 돕기 위해 노론에 대해 설명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숙종 때 서인들이 남인들에게 정권을 빼앗겼다가 다시 찾은 후 남인의 재기를 막기 위해 정치공작적인 방법을 동원합니다. 여기에 서인들이 반발해 소론이 생겨나고 노장 서인들은 노론이 됩니다. 노론은 사도세자를 죽이는 데 가담합니다. 사도세자가 죽자 그의 죽음을 동정하는 시파와 죽음을 당연시하는 벽파로 다시 갈라집니다. 이 노론벽파가 기득권층이 되어 대대로 내려온 것이 오늘날 한국사학계 주류입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볼게요. 정부에서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 동북아역사재단을 만들었잖아요. 그런데 동북아재단이 동북공정의 논리를 그대로 옹호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게 무슨 뜻인지요.

"동북공정의 핵심논리는 과거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사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한강 이북이 과거 중국 영토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동북아재단의 홈페이지에는 한사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내용의 글을 버젓이 올려놓고 있어요."

이 대목에서 그는 지도책을 보여줬다. 중국사회과학원에서 1982년 출판했고 96년 3차 인쇄한 것으로 표기된 중국역사지도집이다. 여기에 유주자사부(幽州刺史部·유주 자사가 백성을 다스리는 구역이라는 뜻)란 장에 보니 평양은 물론 한강 이북이 모두 중국 땅으로 표시돼 있다. 그는 "이게 중국의 공식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둘 중 하나겠군요. 동북아재단 연구원들이 동북공정 논리를 잘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거나 말입니다. 아무래도 모를 리는 없겠지요.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지 않았다는 연구는 1960년대 북한에서 이미 나왔어요. 이후 저를 포함해 남한의 몇몇 학자도 평양지역설이 잘못되었음을 밝히는 논증을 했고요. 만약 그들이 학자의 양심으로 한사군 평양지역설을 믿는다면 적어도 동북아재단에는 들어가지 말아야죠. 국민 세금을 들여 재단을 설립한 목적에 위배되는 거잖아요."

이런 이야기에 주류학계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제가 제기한 문제가 잘못되었다면 반박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들은 일절 말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연재 끝나기만 기다리는 것 아닌가 싶어요. 전에 MBC에서 정조독살 문제로 100분토론을 하자고 했어요. 저는 수락하면서 그랬죠. 아마 저쪽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요. 결국 불발되더군요. 아무도 안 나온다고 했다는 것이지요."

왜 그렇게 비주류의 길을 걷게 됐나요.

"대학원 다닐 때 노론사관에 동조하지 않으면 강단에 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나의 역사관을 펼칠 수 있는 길을 가야겠다 마음먹었죠. 이후 내 역할은 역사학계의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고 지냅니다."

역사를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E·H 카는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는데요.

"역사는 미래학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네요. 옛날 지식을 아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나라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이끌어주는 게 역사입니다. E·H 카는 그 말도 했지만 역사를 알려면 역사가를 먼저 연구하라는 말도 했어요. 지금 한국상황에 딱 들어맞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낸 책 중에 가장 만족스런 책은 무엇입니까.

"책 낼 때마다 나름대로 성의를 다했기 때문에 각각의 의미가 있어요. 하나를 고르기 어렵네요. 가장 화제가 된 책은 <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 일 겁니다. 송씨 후손들이 시위도 하고 화형식도 했으니까요."

남들과 다른 스토리는 어디서 나옵니까.

"1차 자료에 다 나와 있습니다. 우리 학계의 문제 중 하나가 1차 자료를 보지 않고 누가 해석해놓은 자료를 보고 얘기하는 데 있어요. 그게 공부 안 하는 사람들의 보편적 모습이지요."

어느 기사에 보니까 한국의 글쟁이 18인 중에 이 소장님을 꼽았던데, 그 유려한 문장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궁금해하는 독자가 많습니다.

"독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할까 많이 고민합니다. 그래서 많이 고쳐요. 하고 싶은 얘기를 다 쓴 뒤 전체적으로 보면서 고치고 추가하고 빼고 해요. 그런 뒤 다시 종합적으로 또 보죠. 그런 과정이 읽기 편하게 만들어줬는지 모르겠습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역사공부를 좋아했나요.

"중·고교 때 유신교육이 싫었어요. 수업시간에 교과서보다 삼중당 문고를 더 많이 보았어요. 그때부터 비주류의 인생인 거예요."

이제 유명 작가가 되었잖아요. 인세도 만만찮을 것 같은데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조선왕 독살사건은 30만 부나 나갔어요. 서민들에 비하면 많이 버는 편이죠. 그러나 연구소 유지 등으로 나가는 비용도 많아 실제 여유로운 생활을 하지는 못하는 편입니다."

앞으로 목표가 무엇입니까.

"제대로 된 국사교과서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후손들이 올바른 역사관을 갖고 연구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죠. 저 외에도 식민사관에 반대하는 전문가는 여럿 있습니다. 조직도 있고요, 학문적 역량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물적 토대가 없는 거예요. 동북아재단에 가는 연 200억 원의 예산 중 10분의 1만 제대로 사용해도 가능한 일입니다."

천고(遷固)라는 호를 쓰던데 무슨 의미인가요.

"천은 사기를 쓴 사마천(司馬遷)에서, 고는 한서를 쓴 반고(班固)의 이름에서 따왔어요. 제가 닮고 싶은 인물을 합쳐놓은 것이지요. 정체성을 지키면서 유연성을 잃지 않는다는 학자로서의 신념입니다."

< 글·이종탁 출판국 기획의원 jtlee@kyunghyang.com >

<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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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디지털교과서 美서 러브콜
시공미디어, 교육콘텐츠 `아이스크림`…국내 초등학교 98% 이용






국내 기업 시공미디어(대표 박기석ㆍ사진)가 만든 디지털교과서 아이스크림(i-Scream)이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러브콜을 받고 있다.

특히 내년부터 미국 초등학생들도 시공미디어 아이스크림으로 공부하게 될지도 모른다. 박기석 시공미디어 대표는 지난달 25일 기자와 만나 "현재 미국의 한 주로부터 초등학생용 교과서를 전달받아 콘텐츠 제작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라며 "작업이 완료되고 최종 결정이 나면 내년 9월부터 이 지역 240개 학교 4000학급이 시범 형태로 아이스크림으로 수업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스크림은 시공미디어가 2000년부터 10년간 준비해 지난해 처음 선보인 디지털 교육 콘텐츠다. 아직 영어 버전 웹사이트도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벌써 외국 출판사들로부터 제휴 제의가 끊이지 않고 있을 정도다.

아이스크림은 지난해 3월 선보일 때만 해도 시장 상황을 보기 위해 무료 서비스로 제공했지만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1년 만에 전국 초등학교 98%에 달하는 5800개 학교 교사 8만6000명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그런데 지난 3월 유료 서비스로 전환되자 오히려 가입자가 더 늘었다.

현재 전국 초등학교 학급 기준 71% 이상인 교사 9만명이 가입하고 있다.

박 대표는 "10년 전 이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다들 콧방귀를 뀌며 이상하게 쳐다봤다"면서 "하지만 10년보다 더 먼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했다"고 말했다.






아이스크림은 박물관, 과학관 등 전시 전문업체 시공테크가 20년간 쌓아온 자료 300만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동영상은 KBS, BBC, AFP, 디스커버리와 같은 국내외 미디어 등과 제휴해 공급받았다.

박 대표는 "예를 들어 낙동강 생태전시관을 만들면서 개구리, 매미, 물고기 사진을 몇 백장씩 찍었다"며 "이 자료들은 우리가 저작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디지털 콘텐츠로 제작하는 데 문제가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이른바 `로 데이터(raw data)`를 교육 현장에 맞도록 재가공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던 것. 1시간짜리 디스커버리 다큐멘터리는 2~3분으로 축약해 각 교과에 맞게 실었다.

이를 위해 투자한 돈만 10년간 200억원이 넘는다.

유료로 전환한 후에는 인증시스템을 통해 오직 현직 초등학교 교사만 가입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학급당 1년에 3만9000원을 받고 제공하고 있다.

아이스크림의 장점은 교사들이 쉽게 구할 수 없는 자료를 저작권 걱정 없이 제공할 뿐 아니라 1~6학년 전 교과서를 분석해 해당 콘텐츠와 연계되는 단원과 페이지를 바로 열어볼 수 있도록 한 것.

또 아이스크림이 제공하는 플랫폼과 콘텐츠를 활용하면 교사가 자신만의 커리큘럼을 구성할 수도 있다. 아이스크림이 미처 싣지 못한 자료들은 교사가 요청하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다. 지금까지 교사들 요청으로 업데이트된 자료만 3000건이 넘는다.

박 대표는 "지난 3월 안양 초등생 납치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납치 안전교육 자료 요청이 들어와 바로 업데이트가 됐다"며 "교사들조차 월 3000원씩 받아서 회사 망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한다"고 웃었다.

풍부한 콘텐츠 때문인지 사설학원이나 학부모에게서 가입하게 해달라는 요청을 수없이 받는다.

박 대표는 "사실 지금까지 교육의 질은 강사 수준으로 판단됐지만 공교육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좋은 콘텐츠 제공이 우선돼야 한다"며 "내년에는 중학생용과 월 5만원 이내로 사용할 수 있는 학생용 콘텐츠를 별도로 내놓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시공미디어는 올 하반기부터 해외 진출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우선 9월 미국에서 열리는 교육 콘퍼런스에서 영어 버전을 처음 선보일 예정이다. 내년에는 디지털 교육 콘텐츠를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는 사이버몰도 개설할 계획이다.

박 대표는 "리스크는 크지만 단번에 대박을 칠 수 있는 영화, 게임, 드라마와 같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사업과 달리 우리는 쉽게 할 수는 없지만 100년 이상을 갈 수 있는 지식 콘텐츠 사업을 한다"며 "글로벌 비즈니스로도 손색이 없어 내년에 매출 500억원 달성도 무난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공미디어는 아이스크림 유료 전환 첫해인 올해 디지털 교육 콘텐츠로만 50억원, 전체 매출은 140억원을 올릴 것으로 예상한다.

[안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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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유출 우리문화재 찾기 나선 혜문 스님
협상 진전 9월께 희소식 기대

"미국으로 흘러간 뒤 이산가족처럼 뿔뿔이 흩어진 우리 문화재를 반드시 찾아내 환수하겠습니다."

시민단체 '문화재 제자리 찾기' 사무총장인 혜문(36) 스님이 이번에는 미국 대장정에 나섰다. 2년 간의 끈질긴 노력 끝에 2006년 일본 도쿄대학이 소장했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의 반환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그는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11일까지 홀홀 단신 미국에 머물며 하버드대와 보스턴 미술관을 상대로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고 나선 것.

↑ ‘금은제 라마탑형 사리구’

↑ 혜문 스님은 지난 1월 미국 보스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금은제 라마탑형 사리구'를 본 순간&quot;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을 시작한 것이'운명' 이라는 확신이 들었다&quot;고 말했다. 그는 부처님 진신사리와 지공, 나옹 스님의 사리를 환수하기 위해 북한으로부터 권한을 위임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하버드대 아서 새클러 박물관에 있는 그레고리 헨더슨 컬렉션은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과거"라고 울분을 토했다. 과거 일제 시대에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문화재를 약탈당했지만 헨더슨 컬렉션의 경우 미군정기 등을 거치면서 당시 권력층에 있던 소장자들이 헨더슨이라는 외교관에게 뇌물로 바쳤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번 방미 기간 중 조선 초기 명필을 대표하는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글씨로 추정되는 '금니사경'(金泥寫經ㆍ곱게 빻은 금가루를 붓끝에 묻혀 불경을 옮겨 적는 문서)을 실물로 최초로 확인, 하버드 대학에 반환 요청서를 전달했다.

하지만 반환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학교 측도 반환 요청에 대한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며 시간을 가지고 협의해보자고 밝혔지만 합법적인 소유로 법적인 하자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금니사경처럼 1988년 사망한 헨더슨이 한국에서 18년간 주한미군대사관 직원으로 지내면서 외교관 지위를 이용해 수집, 유출시킨 대표적 작품이 최대 1만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뇌물로 바친 한국의 소유권자가 반환을 요청하지 않는 이상 되돌려 받기가 쉽지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게다가 헨더슨씨의 부인인 마이아 여사마저 몇 년 전 숨지면서 주인을 잃은 이들 유물들이 미 매사추세츠주의 공익재단으로 넘겨진 뒤 경매를 통해 팔려나가면서 뿔뿔이 흩어진상황이다. 그는 "헨더슨 컬렉션이 8, 9월께 경매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며 "경매에 참여해 직접 구입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혜문 스님이 헨더슨 컬렉션과 더불어 반환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 보스턴 미술관의 '금은제 라마탑형 사리구'는 올해 가시적인 성과를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올 1월 미술관을 방문한 이후 서신 등을 통해 협상한 결과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며 "9월 정도에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금은제 라마탑형 사리구'에는 부처님 진신사리와 당대의 고승인 지공, 나옹 스님의 사리가 함께 모셔져 있다.

이 같은 혜문 스님의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은 2004년부터 시작됐다. 12년 전 불가에 귀의한 뒤 봉선사에서 총무과장으로 재직할 당시 사찰의 문화재 현황을 조사하면서 없어진 문화재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다.

그는 2004년에 '문화재 제자리 찾기' 시민단체를 구성, 2006년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과 삼성 리움 박물관이 소장했던 현등사 사리구를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았다. 3년 전부터는 일본 궁내청에서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실의궤의 반환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지난 1월에는 해외반출문화재 반환을 위한 미국방문단을 구성해 문화재 실상을 조사했고, 지난달에는 북한을 방문해 미국 내 문화재 환수를 위해 남북 불교계가 함께 노력한다는 공동합의문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고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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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 우아한 연출 호평불구
안무 대폭수정 '새작품' 수준
판소리 들으며 발레 구상
스펙터클한 장면 가미


여기 판소리를 들으면서 발레 안무를 구상하는 남자가 있다.
오는 19~20일 경기도 고양시 마두동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 공연하는 발레 '춘향'을 안무한 유병헌(47) 유니버설발레단(UBC) 예술감독이다. 그는 벌써 몇 년째 전래동화부터 판소리, 영화까지 춘향에 대한 자료를 샅샅이 뒤져 찾아낸 아이디어를 발레로 형상화하고 있다.

유니버설발레단과 함께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발레를 만들겠다"며 발레 '춘향'의 1막을 처음 선보인 게 2006년. 이후 2007년 전막 초연, 2009년 전막 재공연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있다. 그가 '한국적인 발레'에 이토록 골몰하는 이유는 뭘까.

지난 4일 유니버설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난 유 감독은 무용수들에게 새로운 안무를 지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미 한 번 올렸던 작품이지만 전체 안무의 30~40%나 바뀌어 새 작품을 올리는 거나 다름없다.

"그 유명한 발레 '백조의 호수'랑 '호두까기 인형'이 초연 당시에는 쫄딱 망해서 그 뒤로 한동안 공연되지도 못했다는 거 아세요? 천하의 차이콥스키도 안무가 바뀔 때마다 몇 번씩이나 음악을 고쳐 썼죠."

그는 "발레는 영화처럼 미리 찍어 놓은 장면들을 이리저리 편집할 수 없기 때문에, 완성에 이르려면 계속해서 무대에 올리고 수정을 거듭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레 '춘향'은 지난 2007년 고양아람누리 개관기념작으로 초연했을 당시 서양 발레와는 전혀 다른 한국적인 춤사위와 우아한 연출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에게 소구하기 위해서는 좀 더 스펙터클한 장면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그래서 이번에는 강렬한 이미지를 전면에 배치하고, 원작을 모르는 외국인들이 봤을 때도 쉽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사이사이에 안무를 추가했다.

"초연 때는 어머니(월매)가 정화수를 떠놓고 옥에 갇힌 춘향의 무사 방면을 기원하는 장면으로 느리게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막이 오르자마자 옥중 춘향이 목에 칼을 쓴 채 모진 고문을 견디는 장면이 나옵니다. 춘향은 창살을 사이에 두고 어머니와 슬프게 춤을 출 겁니다."

그 밖에도 하체ㆍ발동작 위주인 서양 발레와 달리 상체ㆍ손동작을 많이 사용해 우아함을 더했다.

유 감독은 "우리 몸에 체화된 한국 전통음악의 장단은 서양 클래식의 리듬감과 다르다"며 "서양적인 안무가 직선적으로 쭉쭉 뻗어나간다면, 한국적인 안무는 곡선 형태로 돌고 도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유 감독은 조선족이다. 중국에서 태어나 1988년 베이징무용대학 발레지도자 과정을 졸업하고 96년부터는 베이징무용대학 교수, 97년부터는 중국 중앙(국립)발레단 발레마스터를 지냈다.

선천적으로 음악에 대한 감각과 체격 조건을 타고났지만,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서구 문화의 유입을 엄격하게 차단했기 때문에 클래식 음악이나 발레를 접하기 어려웠다. 덩샤오핑의 문호개방 정책에 따라 들여온 발레 '백조의 호수'를 본 게 17세 때. 그는 차이콥스키의 음악과 발레를 접하고 강한 충격을 받은 뒤 음악에 맞춰 춤추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그런데 당시 중국에서는 16~17세가 되면 국가적인 차원에서 학업을 중단하고 농업에 종사하도록 했기 때문에, 계속 공부하려면 정부가 육성하는 예술학교에 진학해야 했다.

운명이 그를 발레로 이끈 셈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체제의 제약 때문에 힘겨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81년 미국 조프리 발레단에 입단 허가를 받아놓고도 중국 정부가 비자를 내주지 않아 포기했고, 89년에는 톈안먼(천안문) 사태로 그가 재직 중이던 베이징무용대학이 무기한 휴교에 들어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때 석 달간 한국에서 무용수로 활동한 것이 인연이 돼, 그는 99년부터 유니버설발레단에서 발레마스터 겸 안무가로 일하게 됐다. 지난 10년간의 업적을 인정받아 올해 초에는 예술감독에까지 올랐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계속 한국적인 창작 발레를 만들어 세계에 알리고 싶다"며 "발레의 중심은 이미 유럽 미국 등 서구를 지나 아시아로 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소민 기자/som@heraldm.com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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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힙합듀오 지누션의 션은 20일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커지는 까닭은 "크리스천들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션은 이날 건국대 학생회관 중강당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주제로 가진 특강에서 "아프리카 같은 제3세계는 몰라도 한국에서는 복음을 못 들어서 믿음을 못 가지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며 사는 사람도 있지만 인터넷은 관련 정보로 가득하고 크리스천 방송도 있어 정보는 이미 충분히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부정적으로) 지칭하는 인터넷 신조어까지 생겨난 것은 기독교인답게 살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라며 "진정한 크리스천의 모습은 예수를 내 마음에 모시고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주신 예수의 모습으로 산다면 세상 사람들도 감동해서 자연스럽게 감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션은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학생들의 질문에 "사랑은 진심을 담아 모든 것을 다 주는 것"이라고 답했고, 올바른 이성교제 방법을 묻는 질문에는 교제는 좋지만 결혼전까지는 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힙합가수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에 시달린 적은 없느냐'는 질문에는 "주변을 보면 술.담배를 해도 오히려 더 순수한 사람이 많고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가득해 힙합밖에 모르는 사람도 있다"고 답했다.

션은 21일 오후에도 서울시립대에서 같은 주제로 특강할 예정이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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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내티서 가족 40여명과 함께 즐거운 시간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세요."

올시즌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는 '코리안특급' 박찬호(36)가 입양아들의 '대부'로 변신했다.

박찬호는 19일(한국시간)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한인 입양아와 부모들의 모임인 '코리안 포커스 신시내티'(KFC)의 초청으로 한국식당 '성 코리안 비스트로'에서 한인 입양아들과 가족 40여명을 만났다.

박찬호의 입양아 사랑은 유별나다. 박찬호는 지난해 6월에도 이 단체의 행사를 찾아 한인 입양아 및 입양가족들을 기쁘게 했다. 또 그동안 입양아를 위한 사랑의 바자행사에도 참여해 소장품을 팔아 얻은 수익을 한인 입양아들을 위해 기증했다.

박찬호는 이날 아이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며 두시간 가까이 자신의 인생과 야구를 주제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특히 아이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한국어로 대화를 이끌기 위해 노력했다.

부모와 함께 행사장을 찾은 한인입양아 벤자민 아란드(4)군은 "찬호 아저씨가 아주 친절하다. 커서 아저씨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벤자민의 양 어머니 비키 아란드씨는 "오늘 행사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유익하고 즐거웠는지 모른다. 박찬호는 뛰어난 야구선수일 뿐 아니라 훌륭한 인격을 가진 아이들의 모델"이라고 말했다.

신시내티=미주한국일보 정대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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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일본의 누리꾼들이 동해와 독도 지키기에 앞장서는 한국의 반크(VANK.단장 박기태)에 조직적인 대항 활동을 벌이고 있다.

18일 반크에 따르면 현재 일본에서 혐한류(嫌 韓流)를 퍼트리는 대표적인 사이트인 '엄선 한국정보'(blog.goo.ne.jp/pandiani)는 방문 누리꾼들에게 반크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일본해 표기를 동해 병기로 바꾸고 있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대대적인 방해운동을 선동하고 있다.

이 블로그는 혐한류 책을 일본인들에게 구입하도록 유도하거나 혐한류를 퍼트리도록 하고 있으며 매일 평균 1만 4천여 명이 방문, 일본 내 블로그 랭킹에서 4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반크 측은 전했다.

이 블로그는 '일본해 표기보호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협력 구한다!'라는 주제로 16일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날 블로그에는 "현재 우리는 반크가 해외 기관에 일본해 표기를 동해로 바꾸기 위해 어떤 기관에 연락하고, 어떤 메일을 보내며, 향후 어떤 기관에 보낼 것인지를 파악하고 있다. 또한, 반크가 보내는 모든 기관에 다시 일본해로 반박하는 메일을 보내고, 동해라고 시정한 곳은 다시 일본해로 바꾸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내용을 실었다.

그러면서 이 블로그는 "우리의 우선 목표는 일본해 표기의 정당성과 동해 표기의 부당성을 호소하는 메일 서식을 일본어와 영어로 만들어 배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기태 단장은 "이 블로그는 반크 활동을 분석하고, 조직적으로 방해하고자 작전을 꾸미고 있다"며 "일본 내에서 반크처럼 활동하려는 목표를 가진 민간단체가 곧 출범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박 단장은 "반크는 일본 누리꾼의 조직적인 방해 활동이 있더라도 한국의 국가 브랜드를 세계인에게 알려나가기 위해 '한국 문화관광 블로그 네트워크단'(www.prkorea.com/metablog)을 조직하겠다"고 덧붙였다.

ghw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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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5.12 02:29 / 수정 : 2009.05.12 07:16

거품 빼는데 앞장서는 명사들
교회·성당에 헌금 내고 친지만 불러 조촐한 예식
유명환장관 부하직원에 "오지도 알리지도 말라"

청와대 연설 비서관을 지낸 고도원(57)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은 남매 둘을 소리 소문 없이 다니던 교회에서 결혼시켰다. 2005년 12월 하객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딸 새나(30)씨 결혼식을 치를 때는 축의금을 사양했다. 작년 10월 아들 대우(27)씨를 결혼시킬 때는 아예 청첩장도 돌리지 않고 친지 100여명만 초대했다. 잔치 음식은 부인이 직접 김치를 담그고 불고기를 재 마련했다. 고 이사장은 "딸 결혼식은 500만원, 아들은 400만원 들었다"며 "오래 전에 한 다짐을 행동에 옮겼을 뿐"이라고 했다.

"학생운동 하다가 연세대에 서 제적됐을 때 아내와 결혼했어요. 포장마차 등을 해서 먹고 살았죠. 1000~2000원 하는 지인들의 결혼식 축의금이 부담스러웠어요. 절친한 후배의 결혼식에서 '축의금을 사양한다'는 안내문을 보고 '나중에 나도 저렇게 하자'고 마음먹었지요."

사회 유명 인사들 중에는 호화 결혼식으로 구설에 오르는 사람도 있지만, 조촐하고 우아하게 식을 치른 이들도 많다. 반기문(65) 유엔사무총장과 유명환(63) 외교통상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원로 언론인 봉두완 천주교 한민족 돕기 회장이 2005년 성 라자로 마을 성당에서 조촐하게 치른 아들 결혼식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지난 9일 반 총장의 외아들 우현(35)씨가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대한변협 부회장 유원석(56) 변호사의 맏딸 제영(27)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식장은 유엔본부 앞 큰 길을 건너면 바로 보이는 '성 가족 성당(Holy Family Church)'이었다.

하객은 직계가족과 가까운 친척, 신랑신부의 친구 등 150명이 전부였다. 혼주 측은 "원래 100명만 초대했는데, 손님들이 더 왔다"고 했다.

하 지만 이날 결혼식에서 넘친 부분은 이 대목뿐이었다. '혼배미사'로 치러진 결혼식은 식장 대관료도 없고, 화환도 없고, 붉은 카펫도 깔리지 않았다. '세계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유엔사무총장 외아들의 결혼식과 한국 교포들이 일상으로 치르는 성당 결혼식엔 다른 게 없었다.

반 총장은 다른 사람의 경조사는 성심껏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자신의 경사는 밖으로 일절 알리지 않았다. 반 총장은 외교부 장관으로 재직할 당시에도 큰딸과 막내딸 결혼식을 비밀리에 치렀다. 반 총장은 아들 결혼식에 대해 "결혼은 가족끼리 치르는 행사로 조용하게 치르는 게 합당하다"며 "남에게 알려지면 서로 부담"이라고 했다.

유 장관은 지난달 30일, 같은 외교부 직원으로 근무하는 딸 현선(34)씨를 서울 도심 모 호텔에서 결혼시키면서 외교부 안팎에 일절 결혼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유 장관 부부와 사돈 내외는 개인적으로 절친하게 지내는 이들 50여명에게만 청첩장을 돌렸다. 축의금과 화환도 받지 않았다. 일부 외교부 간부들이 결혼 사실을 알고 장관의 의중을 타진했지만 유 장관은 "오지도 말고, 다른 이들에게 알리지도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지난 2005년 열린 고도원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의 딸 새나씨의 결혼식에서 한 하객이 신부에게 책을 선물하고 있다. 혼주와 신랑 신부는 축의금을 받지 않았다./아침편지문화재단 제공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지도층의 사회적 책무)'를 실천하고 있는 이들로는 1997년 창립된 '생활개혁실천협의회(생개협)' 창립 멤버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저마다 혼주와 주례의 입장에서 검소한 결혼식을 실천하고 있다. 김천주(여·72) 대한주부클럽연합회 회장, 원로 언론인 봉두완(75) 천주교 한민족돕기 회장, 이세중(74)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손봉호(71) 고신대 석좌교수, 강지원(60) 변호사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각자 다니는 교회나 성당 등에서 가까운 사람들만 초대해 소박하게 자녀를 결혼시켰거나 시킬 예정이다.

김천주 회장은 "딸 결혼식은 사돈댁 의사를 존중해 남들 하는 대로 치렀지만 아들 결혼식은 절친한 사람 100명만 초대해 축의금을 받지 않고 검소하게 치렀다"고 말했다.

봉두완씨는 2005년 3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경기도 의왕시 성 라자로 마을에서 장남 결혼식을 치렀다. 봉씨가 30년 넘게 후원해온 기관이다. 양가 친지가 15명씩 참석했고, 축의금은 받지 않았다.

이세중 전 변협회장은 호텔에서 치르는 결혼식 주례는 모두 거절하고 있다. 손봉호 교수는 "최근 10년 동안 호텔 결혼식에 참석한 것은 혼주가 절친한 친구였던 경우 2건뿐"이라고 했다.

전 문가들은 "검소한 결혼식 풍조를 세우려면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솔선수범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개인의 미덕과 결단'에만 의지해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생개협 사무총장 신산철(50) 목사는 "특급호텔 결혼이 법적으로 허용된 1999년 이후, 검소한 결혼식을 치르겠다고 마음먹었던 인사들도 마음이 흔들리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이승신(여·54) 교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축복을 해줄 수 있는 이들만 모인 결혼식이 의미가 있으며, 그런 사례들을 꾸준히 교육시키면 다음 세대에는 한결 달라진 결혼문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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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잡무 처리에 바쁜 교사 '관료화'…학생은 뒷전

폐교 직전 초등학교 부임해 '학교 살리기' 작업


교사가 '교육' 전념하니 학생수 늘어 '작은 성공'

교육 인터뷰 / 서길원 작은학교 교육연대 대표

이명박 정부의 '학교 자율화 정책'이 도입된 지 1년이 지났다. '자율'과 '경쟁'의 교육철학 위에 세워진 교육정책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대안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이러한 때 10년 가까이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을 해오며 현장으로부터의 변화를 꿈꾸는 서길원(48·경기 성남북초 교사) 작은학교 교육연대 대표를 만났다. 그는 "'작은 학교'의 성공 비결은 '관료들에 의한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작은 학교'의 성공을 디딤돌로 '새로운 학교 만들기 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스쿨디자인21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대표를 맡고 있다.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

"2000년 가을쯤이었다. 전교조 합법화가 있던 해 전교조 전임자 근무를 마치고 복직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가까운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전교생이 26명밖에 되지 않아 폐교를 앞두고 있는 남한산초등학교를 함께 살려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거시적인 제도개혁운동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던 터였다. 2001년 1월 복직이 결정되자마자 남한산초등학교에 부임했다.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의 출발점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폐교 직전이던 남한산초등학교가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을 통해 현재 전교생이 150명에 이를 정도로 학부모들이 보내고 싶은 학교가 됐다. 성공 비결은 무엇이었나?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를 왜 떠날까'에 대해 교장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들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0년 말 교장과 교사, 학부모 등 10명 안팎으로 전입학추진위원회(이후 학교살리기위원회)를 결성했다. 이 위원회를 통해 '작은 학교'의 운영 원칙과 모델을 논의하고 합의해 나갔다. 우리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를 떠난 이유가 단지 사회적 환경 때문만은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학교의 가치'에 대해 교육 주체들이 제대로 논의하거나 합의해 본 적이 없고, 기존 교육과정과 교육 방법이 학생들에게 흥미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작은 학교'의 운영 원칙은 무엇이었나?

"당시 전입학추진위원회 구성원들은 모두 학교교육의 가장 큰 폐해가 '관료주의'에 있다는 것에 공감했다. '작은 학교'는 학교 내 관료주의 타파를 운영 원칙 1순위에 뒀다."

-학교 내 관료주의와 그 폐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

"학교 내 관료주의는 '학교의 사사화(私事化), 교육의 행사화, 교사의 석고화'로 풀어서 말할 수 있다. 학교의 사사화는 학교와 교실의 폐쇄성에서 비롯된 '그들(교장 또는 교사)만의 왕국'을 뜻한다. 교육의 행사화는 인사권을 지닌 교육청에 잘 보이기 위해, 학생들의 배움에 도움이 되기보다 각종 이벤트성 행사들에 치중하는 학교 행정을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교사의 석고화는 '그들만의 왕국'에 갇혀 전문성을 상실해 가는 교사 집단을 비판한 것이다.

이러한 관료화의 근간엔 무분별한 '공문'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20일 동안 교내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내가 받은 공문의 개수가 무려 168건이나 됐다. 읽기에도 벅찬 개수다. 과도한 공문은 교사가 학생에게 집중하기보다 행정업무 처리에 집중하게 만든다. 공문 처리에 바쁜 교사들은 수업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교장이나 교감도 마찬가지다. 이 과정에서 교육의 중심이자 출발점이 되어야 할 학생은 자연스럽게 소외된다."

-'작은 학교'의 모델이 된 남한산초등학교는 관료주의를 어떻게 극복했나?

"'작은 학교'의 운영 원칙은 단순했다. 학교교육은 '관료들에 의한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를 '학교교육 정상화'라 불렀다. 이 원칙에 교장과 교사, 학부모가 합의하니 할 일들이 분명해졌다.

교장은 교사가 '아이들을 위한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교사에게 '공문' 처리를 하달하지 않았다. 보여주기식의 각종 학교 행사들은 가급적 지양했다. 또 학교마다 월요일 아침이면 관습적으로 하던 조회도 없앴다. 교사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과정과 교육 방법을 개발하는 데 힘을 쏟았다.

아이들 입장에서 보니, 시수 채우기 급급한 교과별 진도형 교육과정에 문제가 많았다. 우리는 시수벽, 교과벽, 담임벽을 뛰어넘어 학생들의 다양한 학습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다. 우리는 아이들이 학습에 흥미를 느끼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체험 중심의 통합형 교육과정을 개발했다.

지금 남한산초등학교 아이들은 학교에서의 하루를 교실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교사와 함께 숲속을 산책하거나, 친구들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러한 아침 활동에 이은 수업은 '80분 수업 30분 휴식'의 블록수업 방식으로 이뤄진다. 교사 강의, 그룹별 토론과 발표 등 아이들이 수업에 흥미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면 최소한 80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무학년제로 운영하는 계절학기를 통해 학생들의 학습에 대한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했다.

학부모도 교육의 주체로 당당하게 참여했다. 학교의 중요한 결정 사항이 있을 경우 학년별 학부모회에서 먼저 협의하고 그 결과를 학교운영위원회에 반영했다. 여름·겨울방학 때에는 교사와 학부모들이 함께 모여 지난 학기를 평가하고, 새 학기 교육계획을 마련했다."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의 현재까지의 성과와 극복해야 할 점들은 무엇인가?

"남한산초등학교가 공교육의 대안적 모델로 자리잡자 뜻 있는 여러 학교에서 관심을 표명했다. 남한산초등학교의 모델은 충남 아산 거산초등학교, 전북 완주 삼우초등학교, 경북 상주 남부초등학교, 부산 금성초등학교, 순천송산분교 등으로 확산돼 갔다. 지난 1월 삼우초등학교에서 열린 작은학교교육연대 겨울 워크숍에 23개 학교에서 교장·교감·교사 56명이 참석했다. 빠르진 않지만 차츰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본다.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은 단 시일 내에 이뤄지지 않는다. 또 한두 사람의 리더십이나 열정으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교육 주체들의 지속적 합의와 실천을 통해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 이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4년이 지나면 학교를 옮겨야 하는 순환근무제도도 '작은 학교' 모델 정착에 적잖은 어려움을 준다."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뿐 아니라 '새로운 학교 만들기 운동'도 벌이고 있는데, '새로운 학교 만들기 운동'이란 무엇인가?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은 공교육의 대안적 모델이긴 하나, 그 대상이 주로 전교생이 100명 안팎인 '작은 초등학교'들이었다는 한계가 있다. '새로운 학교 만들기 운동'은 이 대상의 한계를 넘어 공교육의 보편적 대안을 제시하는 데 있다.

'새로운 학교 만들기 운동'의 핵심은 '작은 학교'의 운영 원칙과 동일하다. 학교교육은 '관료들에 의한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상급학교 학생 선발에 초점이 맞춰진 입시 중심의 교육시스템에서 학생의 다양한 학습 선택권을 보장하는 학습자 중심의 교육시스템으로의 변환을 꾀하는 것이다.

스쿨디자인21은 이를 위해 만든 단체다. 현재 경기도 지역 100여명의 선생님들이 참여하고 있다. 스쿨디자인21은 '새로운 학교' 모델에 적합한 교육과정 등을 개발하고 있다. 더불어 '새로운 학교'에서 일할 교사 양성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1차 비전은 경기도내 시군별로 '새로운 학교'의 모델이 될 거점학교들을 세워가는 것이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다른 15개 시도별로 '새로운 학교를 꿈꾸는 사람들' 네트워크를 형성하려 한다."

-지난 1월 스웨덴과 핀란드의 학교들을 방문했는데,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과 '새로운 학교 만들기 운동'에 시사점을 준 것은 무엇이었나?

"스웨덴 공교육의 대안으로 각광 받고 있는 푸투룸스콜라(미래학교)를 방문했다. 통합형 수업이나 모둠 학습 등은 '작은 학교'의 교육과정과 유사해 보였다. 그러나 푸투룸스콜라는 교육의 '질'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이에 반해 핀란드의 학교들은 교육의 수월성과 형평성이 조화를 이뤘다. 특히 뒤처지는 아이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교육시스템은 인상적이었다."

글·사진 조동영 기자 ijoe0691@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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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배국남 대중문화전문기자] "힘든 처지에 있는 어린이를 보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이들에게 작은 손길 내밀 때가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떠오른 말이다. 이 말을 한 주인공은 바로 '국민엄마'김혜자다. 김혜자는 수십년 동안 국내외의 불우아동들을 돕는데 전력을 다해왔다. 국내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오지를 찾아 그리고 전쟁의 상흔에 시달리고 있는 아프카니스탄을 찾아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다. 그녀의 불우아동들을 향한 손길은 끝없이 펼쳐지고 있다.

5일 오후 2시 서울 명동에선 한지민 배종옥 김여진 등이 북한 어린이와 제3세계 어린이 돕기를 위한 모금활동을 벌인다. "여러분의 천원이면 인도 어린이에게 7명에게 한끼의 식사를 북한 어린이에게 1주일의 식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한지민 배종옥 김여진 등의 외침은 일회성 아니다. 이들 스타들은 그동안 꾸준히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이를 돕기위한 활동을 왕성하게 펼쳐왔다.

안성기 역시 오랫동안 유니세프 활동을 통해 소외된 어린이를 돕기 위한 활동을 묵묵히 하면서 불우 어린이 돕기에 대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동시에 소외 어린이 지원에 대한 인식 개선에 큰 역할을 해왔다.

이처럼 스타들이 불우하고 소외된 어린이들을 위한 전방위적인 활동을 펼쳐 불우한 어린이의 수호천사로 우뚝 서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불우 어린이를 향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 역할을 해오고 있다.

수많은 스타들이 봉사단체나 종교단체를 통해 혹은 개인적으로 국내외의 어린이를 돕는데 앞장서고 있다.

차인표 신애라 부부는 아동학대방지 등 사회적 활동뿐만 아니라 입양, 세계각국의 불우아동을 돕기위한 후원활동 등 전방위적인 어린이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어린이의 진정한 수호 사라는 말을 듣고 있다.

차인표 신애라 부부처럼 션 정혜영부부, 하희라 최수종 부부 등 스타 부부뿐만 아니라 유지태, 엄지원, 한혜진 등이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으로 나가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과 전쟁으로 고아 된 아이들을 돕는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고두심 김장훈 김미화 하춘화 문근영 등은 국내 소년소녀가장, 장애 아동, 소외지역의 어린이 등을 돕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들은 불우 청소년을 위한 자원봉사와 거금쾌척 등 다양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치며 불우 환경의 어린이의 수호천사 역할을 하고 있다.

이밖에 중국 등지에 학교 설립을 도와 소외계층의 어린이들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한 이영애, 아시아 빈민국에 병원을 지어준 김정은,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에이즈 아동 등을 돕는 정애리 등 수많은 스타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불우 어린이의 수호천사로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사회적 영향력과 대중성을 바탕으로 스타들은 국내외의 고아, 가난에 허덕이는 아동, 장애 어린이, 에이즈 등 각종 질병에 고통 받는 아이들을 위해 홍보활동에서 장학금 지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펼쳐 국내외 소외계층의 어린이에 대한 관심과 지원활동을 촉발시키는 어린이 돕기 선행의 전령사로 나서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스타들의 이러한 불우 어린이의 수호천사의 모습을 보면서 소외 어린이를 돕는데 동참하고 있다.

"나눔을 실천한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바로 이웃에 대한 작은 관심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요? 우리의 눈을 조금만 돌리면 당장 한 끼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한 끼는 150원이면 해결된다고 합니다....저도 '배우'로서 나눔의 의미를 전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콩 나눔을 시작합니다. 어려운 경제로 찡그려진 얼굴에 콩 하나로 기쁨이 번집니다.콩 하나로 멀리 있는 어린이들이 한 끼를 먹습니다. 콩 하나로 죽어가는 이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나누면 언젠가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유지태가 쓴 배고픔에 허덕이는 어린이를 돕자는 간절한 호소가 담겨 있는 글이다. 이런 글을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어린이 돕기에 동참하는 것이다.

[김혜자 차인표 등 수많은 스타들이 고아나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 장애아동, 소년소녀가장 등을 돕고 있다. 사진=마이데일리 사진DB]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pres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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