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품연구권, 전통식품 지적재산권

[이데일리 안승찬기자] 세계적인 다국적 식품기업인 네슬레는 전세계 14개국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식품인 김치와 유사한 조리방법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특허출원이 이뤄진 지난 1983년 국내에서는 네슬레의 특허를 막을 만한 근거 자료가 없었다. 업계와 대학의 이의신청으로 한국에서의 특허만 겨우 막았을 뿐이다.



이같은 사례는 김치만의 일이 아니다. 전통음식에 대한 체계적인 자료가 없다보니 한국 전통식품은 이곳저곳에서 권리을 뺏기고 있는 실정이다. 특허 침해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자료 조차 아직 구비되지 못했다.

인도의 경우 미국에 등록돼 있는 약용작물 관련 특허의 80%가 인도 특산식물과 관련이 있을 만큼 전통식품에 대한 특허침해는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 정부가 나섰다. 지식경제부 산하 한국식품연구원은 한국 전통식품의 지적재권권을 보호하기 위해 3500여개의 한국 전통음식에 대한 광범위한 정보를 담은 한국전통식품 포털사이트(www.tradifood.net)을 개설했다고 28일 밝혔다.

1여년의 작업 끝에 완성한 한국전통식품 포털 사이트는 고려도경, 증보산림경제, 규합총서와 왕조실록 등 35개 고문헌과 근현대 문헌을 바탕으로 한국 전통음식의 조리법, 건강기능성 및 영양적 특성, 기호도, 상품정보, 역사와 문화적 배경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

UN 산하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는 전통음식에 대해 역사적 고증을 통해 과거로부터 전래되어 왔음을 증빙할 수 있는 체계적 정보를 제공할 경우 종주권과 배타권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식품연구원의 전통음식 사이트가 세계지식재산권기구에서 공식 인정될 경우 우리나라 전통식품에 대한 배타적 지적재산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인도의 경우 미국의 W.R.그레이스가 보유하고 있는 `님(Neem)` 나무와 관련된 특허와 관련해 "과거부터 인도에서 천연약제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는 이의제기를 통해 유럽의 특허를 취소시킨 바 있다.

이무하 식품연구원 원장은 "한국전통식품 포탈 사이트 개설을 통해 네슬레가 보유하고 있는 김치 조리방법과 관련된 특허 등 우리나라 전통음식과 관련된 지적재산권을 방어할 수 있다"며 "전통식품의 산업화와 일반 국민들에게 전통식품을 알리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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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새 후원자들에 '원순씨 김치찌개' 대접하는 날
현 정부들어 후원사업 줄줄이 무산
개인적으로 노후 걱정은 없는지

"손은 닦으셨어요?" 맨손으로 돼지고기에 양념을 버무리는 원순씨(희망제작소 박원순 상임이사가 가장 반기는 호칭이라고 한다.)에게 신영희 연구원이 한 마디 한다.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냉큼 '씻었다'고 대답하는 원순씨.

↑ 인터뷰는 밤 11시가 다 돼서야 끝났다. 그의 사무실 한 켠에는 발포 매트리스와 담요가 있었고, 옷걸이에는 셔츠 대여섯 벌이 걸려 있었다. "새벽에 일이 끝나면 가끔 여기서 잠도 잡니다." 조영호기자voldo@hk.co.kr

그러더니 '주방장'으로서의 권위를 의식한 듯 "이런 음식엔 땀도 좀 들어가야 한다"며 한 마디 얹고는 주변을 둘러보지만, 반응이 없자 머쓱했던지 또 한 마디. "냉장고에 있던 고기라 그런가? 손이 정말 시리네…."

24일 저녁,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희망제작소 3층 주방. 박 상임이사가 신규 후원회원 몇 명을 초대해 김치찌개를 대접하기로 한 날이다. 음식 준비는 공언한 것처럼 박 상임이사의 책임. 그게 미덥지 않았던지 신 연구원이 '보조'(?)로 가담한 터였다.

상에 찌개 하나만 덜렁 놓기 뭣하다며 추가한 메뉴가 제육볶음이었고, 야채며 밑반찬, 돼지고기 등 장을 봐온 것도 두 사람이었다. 찌개가 국이 됐네, 두부를 너무 잘게 썰었네…. 실세 보조의 끊임없는 지적에도 그럭저럭 찌개는 끓었고, 손님들도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식탁이 차려지는 동안 박 상임이사는 손님들을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희망제작소 소개와 사업 성과 등을 설명하더니 서가에 빼곡히 꽂힌 파일들을 가리키며 각 내용들을 소개한다. 그 중 하나를 뽑아 든 게 '코인 스트리트'라는 파일이다.

"영국 런던 테임즈 강변의 한 마을 이름인데, 주민들이 주도해 일부 공간을 상업시설로 개발하고 그 수익으로 아름다운 동네를 만들었어요. 그들도 거대 개발회사에 맞서 10년간 싸워 이겼는데, 우리와 달리 창의적 대안이 있었던 거죠. 우린 아무도 안 살던 동네처럼 과거의 흔적들을 콘크리트로 뒤덮고는 주민들 내쫓고 엉뚱한 사람 돈 벌게 하는 식이잖아요. 용산 참사 같은 일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지역개발 모델입니다." 그의 열정적 설명은 "찌개 다 식겠다"는 연구원의 지청구를 듣고서야 멎었다.

출범한 지 3년. 시민운동 살림이 어디나 넉넉했던 적 없었고, 세상이 다 어려운데 '여기'만 풍요롭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만, 희망제작소의 어려움이 예사롭지 않다는 말이 연초부터 떠돌던 터다.

주요 수익모델 가운데 하나가 창의적 아이디어를 정부나 기업 등에 판매하는 창의 마케팅인데, 알려진 것처럼 행정안전부와 맺은 지역홍보센터 건립 사업이나 하나은행과 합의한 소기업 후원사업 등이 줄줄이 무산된 것. 사무실을 옮긴 것도, 이 날의 김치찌개 행사도 그런 저간의 사정과 무관치 않다.

초대 손님은 헤어샵 원장과 식구들, 주부, 출판사 직원, 대학원 준비생, 교사, 사업가, 난민구호활동에 관심이 많다는 고3 여학생 등 다양했다. 식후 티타임에는 삶과 사회적 가치를 결합할 수 있는 다양한 구상과 아이디어들을 주고받았고, 박 상임이사와의 간단한 문답시간도 가졌다.

-노후 걱정은 없으신지.

"솔직히 가끔 걱정되긴 해요. 우리나라는 나이 많은 사람이 주로 밥값을 내잖아요. 지금은 강연료를 버니까 낼 수 있는데, 그런 일 다 끊어지면 어쩌나 하는 거죠. 그래도 제 직업엔 은퇴라는 게 없어요. 먼저 검찰총장 된 사람과 후보로 거론된 이들이 대부분 제 동창 또래예요. 그 사람들은 언제 떨려날지 가슴 졸이지만 전 그만두려면 사임투쟁을 해야 해요. 참여연대 그만 둘 때도 그랬는데, 지금은 아름다운 재단에서 제 사표 수리를 안 해줘요. 행복한 일이죠."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 그리고 공적 삶과 사적 삶의 균형은?

"완전히 파괴됐죠. 인간이 모든 일에 완벽해지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잖아요. 초기에 식구들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아놓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아요. 그래도 아직 이혼 안 당했고, 전 퇴직금도 없으니 황혼이혼 걱정도 안 해요."

가계 살림에는 얼마나 보태냐는 질문에는 "아내도 일을 하니까 대충 먹고는 사는데, 자세히 알면 서로 괴로우니까 잘은 모른다"고, "그래도 왠만한 직장 간부만큼은 버니까 얼마씩은 보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 수입 중 상당액도 직원이나 연구원들을 위한 기금으로 들어간다.

집도 기부하고 세를 살지만, 지금 집이 전세 2~3억 원은 되니 별 걱정 없다고 말하는 그다. 행사는 시종 유쾌한 웃음 속에 예정 시각보다 1시간 가량 길어져 밤 9시 30분께 마무리됐다.

인터뷰는 원순씨의 방에서 이어졌다.

-후원회원 모집 성과는.

"기존 회원은 700명 정도였는데, 올 들어 적극적으로 나서 3,000명을 넘겼고 10만원 이상 후원자도 200명 가량 돼요. 박정희 때 감옥 갔던 게 제게 보약이 됐듯, 최근 직간접적인 압력이 희망제작소 체질을 보다 건강하게 해주는 계기가 됐어요."

-희망제작소의 일보다 박 상임이사 보고 오신 분들도 있는 것 같더라.

"우리 사업이라는 게 대중적으로 금세 어필하기는 어렵죠. 가난한 사람을 직접 돕는 것도 아니고 참여연대처럼 센세이셔널한 활동을 하지도 아니잖아요. 이제 3년 됐는데, 참여연대도 3년 될 때까진 사람들이 잘 몰랐어요. '경실련 비슷한 거야'라고 소개했을 정도니까요. 언뜻 보면 잘 몰라도 자세히 보면 우리 일에 다들 감동하세요."

-국정원의 시민진영 개입 발언 이후 달라진 점은.

"특별한 건 없어요. 우리 일이 정부와 부딪칠 게 전혀 없는데, 이상한 사람들이죠. 비영리기구(NPO)라면 무조건 정부 괴롭히거나 기업에 시비 거는 집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미국을 보세요. NPO 활동이 전체 GDP의 7%를 차지해요. 공익 자원봉사자가 전 성인인구의 절반인데, 그걸 풀타임 노동자 기준으로 보면 매일 800만 명의 근로효과가 있대요. 우리가 하는 퇴직 시니어 사업인 행복설계 아카데미만 해도 일자리 창출 사업이거든요. 정부가 돈 들여서 해야 할 일을 우리가 대신하고 있어요."

-최근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 만나셨다던데.

"만나자고 해서 정부를 잔뜩 비판해줬어요. 전 이 대통령을, 그 분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가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몇 백 명 안에 드는 분으로 여겨왔어요. 서울시장 시절 인연도 있고요. 이 정부의 성공을 바랍니다. 국민에게도 좋은 일이고 그래야 야당도 더 열심히 할 거 아닙니까. 2시간 가량 얘기를 했고 메모는 꼼꼼히 하던데 아직 피드백은 없어요. 별로 달라질 것도 없을 것 같아요. 국정 운영의 기조를 바꾸기에는 이미 구축해놓은 이념적 대결구도가 너무 단단하고 적과 동지를 엉뚱하게 갈라놓은 것 같아요."

그는 '인터미디어리(Intermediary)' 곧 중간적 기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부의 정책이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려면 희망제작소 같은 시민조직과 지역단체 등의 중개가 필수적이죠. 정부와 그런 조직들의 가버넌스, 협력관계가 다 무너졌어요. 우익조직요? 정치적 구호만 떠드는 뉴라이트 진영의 몇 개 단체 외에 정말 필요한 풀뿌리 조직이 있습니까?"

그는 최근 포르투갈 리스본에 서 열린 'SIX(Social Innovation eXchange) 여름학교' 참관기 등 국내외의 선진 흐름의 현장들을 누비며 보고 듣고 느낀 바와 다양한 창의 혁신의 컨텐츠들을 모아둔 자신의 블로그(원순닷컴)를 언급하며 "대통령부터 먼저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좌니 우니, 보수니 진보니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고 했다. 자본주의라도 나라마다 사회마다 색깔이 다 다른데, 우리만 극단적 잣대로 사람과 세상을 재단하려 든다는 것이다.

"저만 해도 상당히 보수적인 면이 있을 겁니다. 50대 중반이고, 경상도 남자거든요. 그럼 전 보숩니까? 이념이란 생물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움직이는데 우리는 포획할 수 없는 도구로 그걸 붙들려고 헛발질하고 있어요. 40년대도 아니고…. 제겐 미래지향적이냐 과거지향적이냐, 실천적이냐 이념적이냐 등이 훨씬 의미 있는 잣대예요."

박 상임이사는 새 자리를 잡을 때 이미 어떻게 하면 떠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고 했다. "함께 일하는 이들의 팀워크, 둘째는 사업의 패턴, 세 번째는 지속가능성, 특히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따져봐요. 좋은 활동가들이 창의와 열정으로 뭉쳐 의미 있는 사업들을 지속적으로 꾸려갈 수 있는 기반이 닦였다고 생각되면 전 떠납니다. 관계를 단절할 땐 거의 폭력적으로 끊어요. 의존하게 되면 서로 불행해지거든요."

그렇게 그는 참여연대를 떠났고, 아름다운 재단과 아름다운 가게를 떠났다. 참여연대는 국내 대표 시민운동 단체로 굳건하고, 아름다운 재단의 지난 해 모금액 만도 150억 원이 넘는다. 아름다운 가게는 최근 100호 점포를 넘어섰고, 대안가게인 아름다운 커피의 매출도 내년 100억 원을 기대하고 있다.

물수제비뜨듯 그가 일으킨 희망의 파문들은 이미 세상의 아름다운 물결로 번지고 있고, 희망제작소의 주요 사업들 -사회창안센터 활동, 해피 시니어 사업, 희망아카데미 등- 도 나은 내일을 향한 새 물길을 열고 있다.

마지막 질문. 그는 인간의 모든 긍정적인 단어들을 포갰을 때 만들어질 교집합의 이름을 '관계(Withness, Togetherness)'라고 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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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빌딩안에서 벼 수확
다케나카 헤이조(맨 앞) 일본 총무상이 11일 도쿄 중심가 고층건물 지하온실에 마련된 논 ‘파소나02’에서 벼 사이를 걸어가고 있다. 지난해 2월 인력자원서비스회사 파소나가 선보인 이 온실은 농민들에게 수경재배와 발광다이오드 등 신기술 농법을 가르치기 위한 시설이다.

도쿄/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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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한겨레 신문에 실린 사진이에요. 인터넷에서는 컬러로 나왔네요.
 
이 사진에 대해서 前 도시농업위원장으로서, 한마디 해야 겠습니다.
 
위 사진은 건물의 지하 층에 온실을 만들어 쌀농사를 지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햇빛을 대체하는 것은 발광다이오드 이고, 수분과 영양 공급은 보다 쉬웠겠죠.
 
 근데, 저렇게 하면, 땅(지상)에서 하는 것보다 '에너지'가 더 소모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발광다이오드는 어떻게 에너지를 공급받는지 궁금하군요.
 
 예전에 위와 같은 방식의 농업을 생각한 사람이 많았었던것 같습니다. 도시화로 인해 농지가 줄어들면, 주택부족을 아파트건설로 해결하는 것처럼, 농지부족도 "식물공장"의 형태로 해결하자는 것이죠.
 
 '도시내 식물공장'은 지상위의 땅을 한번만 쓰는 것이 아니라, 그 건물의 층 수 만큼 곱배기로 쓸수 있다는 것이죠. 햇빛을 대체하는 것은 '발광다이오드'등으로 해결하면 되니까요.
 
암튼, 오대민, 이영애씨가 같이쓰고, 황우석박사가 추천한 "도시농업"(학지사, 2006)이라는 책에는 위와같은 것도 도시농업의 범주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자연의 에너지, 햇빛을 받지 않고 키운 작물은 "야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네요.
 
이진아 씨가 지난번 녹색평론에 쓴 글에서, (심야)전력으로 데운 물의 파장이 사람이 몸에 별로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이야기와 연계해서 생각해보면, 발광다이오드의 빛을 받아 키운 작물이 햇빛을 받은 작물보다 좋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농지부족의 해소를 도시내 식물공장의 방법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農'의 근본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위와 같은 방식은 '우주 공간에서 달나라 식민지 건설시, 식량공급 대책'이거나, 혹은 '핵공격을 받아 형성된 구름이 수개월간 햇빛울 차단하였을시에, 지하공간에서 생존하기 위한 방법'이 될것 같습니다.
 
결국은 가진 자들의 놀음밖에는 안될것 같네요.
 
대피할 지하공간이 없는 사람은  굶어주거나, 그렇게 되겠죠.
 
세상에는 문제의 해결을 근본적으로 돌파하는 사람이 적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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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사막은 물론 남극 등에서 야채를 안정적으로 재배해 먹는 농법이 미래형 농업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마치 반도체 생산 라인과 비슷한 야채 공장을 적극 보급하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김상우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창업한 지 350년 넘게 각종 실과 특수 종이들을 만들어 온 회사의 창고입니다.

제지 회사에 거대한 무균 청정실이 있는 것도 신기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상추와 배추 등 각종 야채가 가득합니다.

온도와 습도,영양 등은 모두 컴퓨터로 자동 관리됩니다.

수경, 무농약 재배를 통해 청정 야채를 대량 생산하는 것입니다.

이 회사는 종이 사업이 사양화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빈 창고 공간을 야채 공장으로 만들었습니다.

[녹취:미우라 유타카, 오즈 산업 신사업개발실]

"농업의 한 형태로 이런 식물공장이 장래 정착해 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먹거리 안전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을 해소하고 고품질 야채를 날씨 등에 관계없이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인 것입니다.

일본에는 이 같은 식물공장이 현재 50개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앞으로 3년내 150개로 늘리기로 방침을 세우고, 설치 등을 위해 1,50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주택지에 있는 3층 건물입니다.

길거리에서 보면 이 건물 내에 각종 야채들이 재배되고 있다고 상상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일년 내내 야채를 재배해 직접 판매하고 있습니다.

따로 씻거나 버릴 부분이 거의 없고 맛도 관리됩니다.

반도체 공장 식의 이 같은 야채 공장 시스템은 태양열 발전 설비 등과 함께 중동 지역 등에 수출되고 있습니다.

[녹취:시마무라 시게하루, 미라이 사장]

"위험하고 힘들고 더럽다는 것이 농업의 이미지입니다. 식물 공장에서는, 이 기존 이미지 3K로부터 3C 즉 세개의 C라고 말합니다. 클리어(clear), 클린(clean) 그리고 쿨(cool)입니다."

호텔과 식당 등도 이런 야채공장에서 먹거리를 구입해 마케팅에 이용하는 곳이 점차 늘고 있어 미래형 농업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YTN 김상우[kimsang@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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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7.13 03:31

탄소복합소재 세계 최강 '데크'
국내·국제 특허 69건 부품 기술개발 '한우물' 파
올 매출 300억대 '흑자행진'

☞ 탄소복합소재

탄 소섬유를 이용한 만든 각종 소재를 총칭하는 말로 강도가 강철보다 5배 강하면서 무게는 30% 이상 가벼워 항공기 기체, 전차, 풍력발전기 날개 등에 쓰인다. 섭씨 3000도 이상의 고온을 견딜 수 있기 때문에 엔진 부품·브레이크 디스크·연료탱크 등에 쓰이는 핵심 소재다.

최신예 전투기 F-16, 미국 보잉의 초대형 여객기 보잉787, 독일 수퍼카 제작업체 루프사의 400마력급 최고급 스포츠카….

현존하는 이런 '최고의 기계들'에 종업원 160명인 한국 업체 데크의 부품이 들어 있다.

데크는 탄소복합소재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과 제품을 가진 강소(强小)기업이다. 이 회사가 탄소복합소재로 만드는 항공기 브레이크 디스크는 전 세계적으로 5개 회사만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중형차 200대 무게인 F-16의 경우 시속 300㎞로 착륙할 때 브레이크 온도가 섭씨 2000도까지 올라간다. 이 온도를 견디는 소재는 탄소복합소재가 유일하다. 2008년에는 최고급 자동차에 들어가는 탄소세라믹 브레이크를 세계에서 3번째로 개발했다. 이런 공로로 데크는 지난 5월 발명의 날에 지식경제부장관상을 받았다.

지 난 10일 창원시 성주동 데크 본사로 들어서자 '국내 특허 52건, 국제 특허 17건'이라고 쓰인 '특허 전광판'이 눈에 띄었다. 안내를 맡은 이 회사 신현규(37) 부장은 "보험회사가 판매실적 기록하듯 특허 보유 상황을 수시로 업데이트하고 있다"고 말했다.

10일 경남 창원 데크 본사에서 김광수 사장(왼쪽에서 네 번째)과 직원들이 F-16 전투기에 들어가는 탄소 브레이크 디스크를 들어 보이고 있다./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종업원 20명으로 시작

데크는 2001년 11월 한국항공우주산업에서 일하던 김광수(51) 사장이 직원 20명과 함께 차린 회사다. 김 사장은 서울대카이스트를 졸업하고 대우중공업 항공연구소에서 근무한 연구원 출신. 1988년부터 10년간 국방과학연구소와 공동으로 탄소복합재 연구개발을 주도했다.

그 가 창업한 이유는 "한 우물을 파기 위해서"였다. 김 사장은 "탄소복합소재는 강철보다 강하면서도 무게가 가벼워 전방위로 활용할 수 있는 미래 소재"라며 "하지만 한국항공우주산업은 비행기를 조립 생산하는 회사라 탄소복합소재에 집중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회사를 설득해 첨단복합재센터를 별도 회사로 분사시켰다. 처음에는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일부 지분을 갖고 있었으나, 나중에는 김 사장과 임직원들이 그 지분을 모두 인수해 완전 독립했다.

김 사장과 창업 동지들은 퇴직금을 회사 설립 자금으로 털어 넣고, 아파트를 은행 담보로 내놓을 만큼 창업에 모든 것을 걸었다. 데크 창립 멤버인 신현규 부장은 "퇴직금은 모두 회사에 털어 넣고 월급도 한국항공우주산업 때보다 20% 이상 줄어 월급날마다 아내에게 미안했다"고 말했다. 데크가 창업 초기 5년간 매년 사원 부인들을 상대로 사업 설명회를 연 것도 그런 불만을 덜기 위해서였다.

성공방정식=기술 투자+제품 다변화
기술은 있지만 돈이 없는 데크는 '포도송이 전략'을 택했다. 포도송이 전략은 김 사장이 만든 말이다. "줄기 격인 탄소 소재 기술 개발에 연 매출의 15~20%를 투자하고 이를 바탕으로 응용제품을 포도송이처럼 다양화하는 겁니다."

원래 이 회사의 '주 종목'은 전투기 바퀴에 들어가는 브레이크 디스크. 하지만 데크는 탄소복합소재 기술을 응용해 제품을 비행기 날개, 자동차 브레이크 등 20여종으로 늘렸다.

2006 년 데크는 또 한 번의 모험을 감행했다. 보잉787 여객기의 날개에 들어가는 탄소 소재 부품 제작에 뛰어들었다. 설비 투자만 최소 100억~150억원이 드는 사업이지만 당시 데크의 매출은 100억원에 불과했고 땅도 돈도 없었다. 김 사장은 "잘못하면 회사가 망한다"는 회사 안팎의 우려에도 참여를 결정했다.

"유가가 오르고 이산화탄소 감축 의무가 확대되면 앞으로 비행기는 금속 부품 대신 탄소 소재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큰 시장을 열 사업인만큼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결국 2006년말 산업은행에서 투자금을 유치해 보잉787 사업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올 3월에는 미국 항공기 부품공급업체인 SIA와 1000만달러(약 128억원)어치 납품 계약도 맺었다. 김 사장은 "일반적으로 3~4개월 걸리던 공정기간을 절반으로 줄여 외국의 대기업들과 승부하고 있다"며 "에어버스와도 납품 협상이 마무리 단계"라고 말했다.

데 크는 창업 이래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첫해 50억원이던 매출은 올해 300억원대를 예상하고 있다. 그동안 임원들의 아파트는 은행 담보에서 빠졌지만 김 사장의 아파트만 여전히 담보로 잡혀 있다. "연봉 1억원 이상을 받는 직원들이 나오고, 세계 최고의 탄소 소재 부품 기업이 될 때까지는 계속 투자를 유치해야 하니 그전에는 어렵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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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6월 15일, 연세대 1학년에 다니던 18세 청년이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이 청년을 데리고 가던 75세 미국 할머니는 비행기가 이륙하자 그에게 말했다. "이제부턴 한국말을 할 수 없다." 그 말이 서글프고도 매정하게 들렸던 청년은 할머니에게 물었다. "언제까지요?" 대답은 단호했다. "네가 영어로 꿈을 꿀 수 있을 때까지(Until you can dream in English)."

이 미국인 할머니는 '대지'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구한말의 역사적 사건들을 소재로 한 소설 '살아있는 갈대'를 쓰기도 한 대문호 펄벅(Pearl S. Buck·1892~1973) 여사다. 청년은 펄벅 여사가 혼혈아들을 돕기 위해 1964년 설립한 펄벅 재단의 제1호 장학생으로 선발된 로버트 박(60·한국명 박철수)씨다.

9 일 저녁,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난 박씨는 수십년 전 일을 떠올리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미국 휴스턴에서 목사 일을 하면서 유학생들을 위한 영어 학교 교장으로도 근무 중인 그는 최근 재미 교포 월간지에 연재했던 미국식 영어 배우기에 대한 칼럼을 모아 '펄 S.벅에게 배운 미국 영어'(도서출판 금토)라는 책을 펴냈다.

로버트 박 목사./오종찬기자 ojc1979@chosun.com
필라델피아 교외의 펄벅 여사 자택에서 3년간 여사와 함께 살면서 미국 생활을 시작했던 박씨는 "내 영어의 토대는 펄벅 여사가 만들어주신 것"이라고 말했다.

" 여사님은 제게 매일 단어 외우기, 발음하기, 듣기, 말하기 등을 맹훈련시켰어요. 같은 단어나 문장들을 수십 번 소리를 내어 반복해 읽게 했죠. 3개월 후, 마침내 영어로 꿈을 꾸게 되자 여사님이 말씀하셨죠. '네가 생각을 영어로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턴 한국말을 해도 된다'."

그는 펄벅 여사와 함께 재단 기금마련을 위해 미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여사로부터 '살아있는 영어'를 배웠다.

"미국에 온 첫해에 메인주로 여행을 갔어요. 바닷가재가 유명해 거의 매일 먹었는데 며칠 지나니 좀 질리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저녁엔 이탈리아 요리를 먹으면 어떻겠냐고 말씀드렸더니 여사께서 'Let's play it by ear'라고 대답하셨어요. 귀로 연주를 하자는 뜻인 줄 알고 의아해 여쭤보았더니 '그때 가서 결정하자'는 뜻이라고 설명해 주셨지요."

주 한 미군이었던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박씨는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다. 편견에 가득 찬 주위의 시선, 급우들의 따돌림과 놀림…. 혼혈아인 그에게 한국생활은 상처투성이였다. 기회가 찾아온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장학생으로 선발할 혼혈아를 찾고 있던 펄벅 여사와 인연이 닿아 인터뷰를 하게 되었어요. '소원이 뭐냐'고 묻기에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난 여기서 미래가 없다'고요."

그로부터 2년이 지나 청년은 '소원'을 이뤘다. 미국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했고 은행에 들어가 은행장까지 지냈다. 그는 "펄벅 여사야말로 내 인생의 은인"이라고 말했다. "기억에 남는 일화요? 철없던 틴에이저 때라…. 19세 생일날 흰색 스포츠카를 깜짝 선물해주신 게 가장 기억에 남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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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대학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사고하고 생각할 수 있는 학생을 길러 내는 겁니다. "

한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지난해 미국 종합대 학장 자리에 오른 우정은(50) 교수가 9일 국내 대학의 세계화 방안에 대해 일성을 날렸다.

미국 동부 명문 주립대인 버지니아대학교 문리대 학장인 우 교수는 홍콩과학기술대와 공동학위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를 하기 앞서 지난 8일부터 이틀 간 서울을 방문했다.

●"석학 모셔오는데만 급급하면 예산 낭비"

우 교수는 국내 대학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 사업에 대해 "유수의 석학을 모셔오는 데만 급급한다면 예산만 수십억원 낭비하는 꼴이 될 것"이라면서 "그들의 학문적 노하우를 어떻게 활용할 건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자연과학분야 미국 교수들의 '티칭 노하우(teaching know-how)는 무조건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생각할지를 더 중요하게 가르친다. 한국 교수들도 이런 방식을 배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상업주의나 무조건 세계화 바람에 휩쓸리는 행태는 대학의 자세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 대학은 물론 세계 주요 대학들도 세계화 압력을 과도하게 받는 바람에 대학의 고유한 '미션'을 잃어 버릴 때가 많다."면서 "한국 대학이 세계의 유수 대학으로 발돋움하려면 이 부분에 가장 역점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 교수는 미국 과학도들의 현주소도 지적했다. "미국이 세계 수준의 과학기술을 자랑하지만 젊은 과학도들이 너무 국내에만 매몰돼 있어 외국의 커리큘럼과 언어 등 경쟁을 벌일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남편은 국제정치학자 브루스 커밍스

샬러츠빌에 위치한 버지니아대학교는 서부 캘리포니아 UC 버클리대와 더불어 미국 최고 명문 주립대학으로 꼽힌다. 우 교수가 미시간대 교수 시절의 연구실적과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6월 외국인 여성으론 처음으로 이 대학 학장 자리에 올랐을 때 그에게 쏠린 관심은 지대했다. 컬럼비아대 정치학 박사 출신으로 1996년 백악관 자문위원을 역임했고 아시아개발은행(ADB), 맥아더 재단 등의 정책 자문역을 맡기도 했다. 저서로 '동아시아 신자유주의와 개혁'(2007년) 등 7권을 출간했다. 미국 내 동아시아, 북한정책 전문가인 그는 '한국전쟁의 기원'의 저자인 국제정치학자 브루스 커밍스의 부인이기도 하다. 취임 후 1년을 맞은 지난달 한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 교수는 "예산이 900만 달러나 삭감돼 기금 마련에 가장 역점을 쏟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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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최근호, 영어권 디아스포라 작가 조명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얼마 전 세상을 뜬 '순교자'의 소설가 김은국에서부터 '딕테'의 차학경, '네이티브 스피커'의 이창래까지……. 모두 영어로 작품을 써서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은 한국계 작가들이다.

최근 이들의 계보를 잇는 영어권 한국계 작가들의 활약상이 외신을 타고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이들은 보편적인 정서에 호소하는 수준 높은 작품들로 다문화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세계 독자에게 그 작품성을 인정받는다.

인천문화재단에서 펴내는 격월간 문화비평지 '플랫폼' 최근호는 '영어권 디아스포라 작가들이 뜬다'라는 기획특집을 마련해 영어권 한국계 작가들을 집중 조명했다.

올 들어 그 활약상이 전해지기 시작한 대표 작가로 제니스 리(37)와 문나미(41)씨를 꼽을 수 있다.

홍콩에서 태어난 한인 2세 제니스 리는 올해 초 출간한 데뷔작 '피아노 티처'가 출간되자마자 미국과 홍콩에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고 전 세계 23개국에 판권이 팔리며 단숨에 주목을 받았다.

또 어린 시절 미국에 이민 간 문씨는 지난해 말 출간한 첫 소설 '마일즈 프롬 노웨어'로 영어로 쓰인 전 세계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한 영국 오렌지상의 신인상 후보로도 올랐다.

문씨는 아쉽게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화장품 판매원과 웨이트리스, 형사 등 다양한 경험을 거쳐 소설가가 된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으로 또 한 번 해외 언론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2007년 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작가 이민진(38)씨도 한인 1.5세대 재미교포다.

변호사 출신이기도 한 이씨는 작품 속에서 자신과 같은 한인 1.5세대가 겪는 정체성 갈등을 내밀하게 그렸는데, 출간 당시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과 맞물려 더욱 주목받기도 했다.

앞서 한국계 아버지와 유대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수잔 최(40)와 한국계 아버지, 스코틀랜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알렉산더 지(42)도 비교적 일찌감치 미국 문단에서부터 주목을 받았다.

1998년 펴낸 첫 소설 '외국인 학생'으로 이름을 알린 수잔 최는 미국 언론재벌 허스트의 딸인 패티 허스트 납치 사건을 소재로 한 2004년작 '미국 여자'로 퓰리처상 최종 후보까지 올랐다.

지난해에는 테러범 시오도르 존 카진스키의 실화를 모티브로 소수인종에 대한 미국사회의 보이지 않는 편견을 그려낸 '요주의 인물'로 다시 한 번 호평을 받았다.

알렉산더 지 또한 2002년 펴낸 첫 장편 '에딘버러'가 '퍼플리셔즈 위클리'가 선정한 '올해 최고의 책' 중 하나로 선정되는 등 첫 소설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소설에서 작가는 자신과 동일한 가족적 배경을 가진 동성애자 애피어스 지를 등장시켜 성적 트라우마를 지닌 소수자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이들 작가는 이전 세대의 회고담이나 자서전적 글쓰기에서 머물지 않고 다문화사회에서 누구든 맞닥뜨릴 수 있는 보편적인 문제들로 폭넓은 독자층에 어필한다.

정은귀 인하대 교수는 "한국계 미국문학이라고 묶을 수 있는 이들 작가는 온몸으로 '탈경계'를 살면서 성과 국가, 민족 등 여러 가지 다른 층위에서 이산의 안과 밖을 경험하고 그 경험이 체화된 글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설명: 위로부터 제니스 리, 문나미, 이민진)
mihy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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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평론가인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이 시대 최고의 문제작가 중 한 명이다. < 세상을 뒤흔든 여인들 > 부터 < 조선왕 독살사건 > 까지 그가 쓰는 역사 이야기는 늘 도발적이며 파격적이다. 학계의 정설 또는 통설이 뿌리부터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같은 내용이라도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전혀 다른 이론으로 재구성해낸다. 그에 따르면 정조는 병으로 죽은 게 아니라 살해되었고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은 후대에서 지어낸 새빨간 거짓말이다. 이런 주장을 그저 작가의 상상력으로 하는 게 아니라 역사적 문헌을 토대로 실증적 연구를 거쳐 내놓는다. 소설이 아니라 학술인 것이다.

대중은 이런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자연히 매료된다. 1997년 이후 그가 낸 책은 30여 권. 1년에 2~3권가량을 내지만 그때마다 화제와 반향을 부른다. < 이덕일의 여인열전 > < 오국사기 > <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 등 숱한 베스트셀러를 내면서 그는 전국적인 유명인사가 됐다.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가 대학 강단에 서지 않고 오로지 책, 그것도 지루하고 딱딱하기 쉬운 역사서적을 써서 '먹고사는 데' 성공한 최초의 인물이 아마 그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그가 새 책을 냈다 하면 만사 제쳐놓고 서점으로 달려가는 팬들이 생겨났을 정도다. 이미 그는 많은 이의 '역사 스승'인 것이다.







그런 그를 학계에선 정통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센세이셔널한 주장으로 남들의 이목이나 끄는 이단아(異端兒)로 취급하려 든다. 때로는 몇몇 허점을 짚으며 엉터리라고 무시한다. 하지만 그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덕일 소장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사학계는 조선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주류사관, 식민사관론자들이 대부분 장악하고 있어 진실이 통하지 않는 구조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어느 쪽이 옳은지 여기서 섣부르게 판단할 필요는 없다. 이덕일 소장이 '다수에 맞서는 외로운 소수'라고 해서 동정적으로 보아줘야 할 이유도 없다. 학문의 세계에선 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누가 더 정확한 문헌과 고증을 통해 설득력 있는 논리와 근거를 제시하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이 소장은 요즘 한 일간신문에 주목할 만한 글을 연재하고 있다. '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라는 제목부터 그가 무언가를 작심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실제 그는 글머리에서 "주류 역사학계의 기존 이론체계를 뒤집어엎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무슨 이론이 어떻게 잘못되었기에 뒤집어엎어야 한다는 걸까. 이번주 '이종탁이 만난 사람'이 이 소장을 찾아간 것은 그렇게 공개 도전장을 낸 배경을 들어보기 위해서다. 인터뷰는 지난 24일 서울 마포에 있는 그의 연구소에서 있었다.

본론에 앞서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는 드라마 선덕여왕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극중에 나오는 미실을 두고 실존인물이다, 아니다, 말이 많은데요.

"저는 드라마를 잘 보지는 않습니다만 미실이 역사 속 실존인물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이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미실이 안 나온다는 점을 근거로 듭니다. 화랑세기는 8세기 무렵 쓴 것이고 삼국사기, 삼국유사는 12~13세기에 쓴 것입니다. 뒤에 쓴 책에 안 나온다고 앞에 쓴 책을 위서라고 말하면 논리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기초적인 사료 비판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지요."

여기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미실이 나오는 문헌은 < 화랑세기 > 다. 신라시대 김대문이 쓴 이 책은 현존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1989년 부산의 한 가정에서 그 필사본(筆寫本)이 공개됐다. 여기에 화랑의 기원, 역대 화랑의 지도자와 함께 미색(美色)을 무기로 신라 3대 왕과 성관계를 가지며 임금보다 더 큰 권력을 휘두른 미실에 대해 자세히 언급돼 있다. 다수 역사학자들은 이 필사본을 필사자인 박창화(1899~1962)의 위작으로 보고 있으나 서강대 이종욱 총장 같은 학자는 진짜라고 주장하는 등 진위 논란이 지금까지 가시지 않은 상태다. 이 필사본을 진짜로 보는 이덕일 소장은 "우리 역사에서 복수의 여성들에게 일부종사(一夫從事)를 시킨 남성은 많아도 복수의 남성에게 일부종사(一婦從事)를 시킨 여성은 미실이 유일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필사본을 진짜로 보아야 할 근거가 있나요.

"그게 가짜가 아닌 이유는 너무나 많습니다. 우선 그 책에 등장하는 인물이 수백 명입니다. 이들을 가로세로 어느 쪽으로 놓고 보아도 엇갈리지가 않아요. 양주동이 한자와 이두가 섞인 향가를 우리말로 번역했다고 자칭 국보라고 한 게 1930년대입니다. 박창화의 필사본도 그 시기에 만들어졌어요. 만약 위서라면 향가를 한자로 지었다는 얘기거든요. 그런 능력을 가졌다면 박창화는 우주보(宇宙寶) 소리를 들어야 할 겁니다. 또 '신라 지배층의 성풍습이 이렇게 문란해서 어떻게 나라를 유지하겠느냐, 그러니 위서다'고 하는데, 유교 사관의 관점에 불과합니다. 원문을 필사하는 과정에서 일부 누락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위작으로 단정할 근거는 되지 않아요."

필사자가 성애소설을 썼다는 이력을 들어 의심하기도 하던데요.

"그는 일본 궁내성 도서관 촉탁이었습니다. 이 직책을 의미 있게 보아야 합니다.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얼마나 많은 문화재와 도서를 약탈해갔습니까. 희귀한 사료들이 궁내성 도서관에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창화가 그곳 자료를 보고 베꼈다고 유추하는 게 상식 아닌가요. 저는 중국 서안이나 낙양, 일본 궁내성 같은 곳에 한국사 관련 고대 사료가 지금도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국가 차원에서 그런 곳에 목적의식적으로 사람을 파견해 먹고살게 하면서 자료 찾게 하면 아마 중요한 게 나올 거예요. 그 방법이 일본·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응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역사학자로서 TV 사극의 역사 왜곡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건 간단한 문제입니다. 역사를 연구하다 보면 사료와 사료 사이에 빈 공간이 나옵니다. 사극은 이 부분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메우는 거죠. 사료 자체를 비틀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사극을 빙자한 SF입니다. 예를 들어 드라마 주몽에서 소서노가 주몽을 만날 때 어린 여자로 나와요. 사료에 보면 유부녀야 맞거든요. 그런 식은 안 된다는 겁니다."

사극 얘기는 이쯤에서 접고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주류학계와 한판승부를 벌이겠다는 각오인 듯한데 배경이 무엇입니까.

"애초부터 예상한 싸움인데 그 시기가 조금 빨리 왔습니다. 역사학계에는 두 가지 흐름이 있는데 하나는 단재 신채호, 백암 박은식과 같은 독립운동가에 연원을 두는 사관이고, 다른 하나는 일제시대 때 조선사편수회에 있던 세력의 후예들이 보여주는 식민사관입니다. 이중 후자, 즉 인조반정 이후 집권한 노론벽파의 자손들이 광복 이후 학계를 장악했어요. 그래서 역사교과서가 노론의 시각으로 쓰여졌습니다. 우리가 엉터리 역사를 배우고 자란 것이지요. 이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싶었는데 요즘 들어 더 심화하고 있어요."

그렇게 느낀 계기가 있을 것 같은데요.

"올 초 정조의 어찰이 발견되자 정조독살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정조독살설을 못마땅히 여기던 노론의 후손들이 일제히 출동한 셈이지요. 그런데 어찰이 무슨 독살설의 진위를 가리는 사료라도 된답니까. 정조가 정적이던 노론의 거두 심환지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러니까 심환지는 정조 측근이었다, 그러니 왕을 독살했을 리가 없다고 한다면 박정희가 김재규의 손에 죽은 것은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시저가 부루투스에게 죽은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전혀 근거없는 노론벽파적 시각일 뿐이죠."

독자들 이해를 돕기 위해 노론에 대해 설명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숙종 때 서인들이 남인들에게 정권을 빼앗겼다가 다시 찾은 후 남인의 재기를 막기 위해 정치공작적인 방법을 동원합니다. 여기에 서인들이 반발해 소론이 생겨나고 노장 서인들은 노론이 됩니다. 노론은 사도세자를 죽이는 데 가담합니다. 사도세자가 죽자 그의 죽음을 동정하는 시파와 죽음을 당연시하는 벽파로 다시 갈라집니다. 이 노론벽파가 기득권층이 되어 대대로 내려온 것이 오늘날 한국사학계 주류입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볼게요. 정부에서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 동북아역사재단을 만들었잖아요. 그런데 동북아재단이 동북공정의 논리를 그대로 옹호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게 무슨 뜻인지요.

"동북공정의 핵심논리는 과거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사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한강 이북이 과거 중국 영토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동북아재단의 홈페이지에는 한사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내용의 글을 버젓이 올려놓고 있어요."

이 대목에서 그는 지도책을 보여줬다. 중국사회과학원에서 1982년 출판했고 96년 3차 인쇄한 것으로 표기된 중국역사지도집이다. 여기에 유주자사부(幽州刺史部·유주 자사가 백성을 다스리는 구역이라는 뜻)란 장에 보니 평양은 물론 한강 이북이 모두 중국 땅으로 표시돼 있다. 그는 "이게 중국의 공식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둘 중 하나겠군요. 동북아재단 연구원들이 동북공정 논리를 잘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거나 말입니다. 아무래도 모를 리는 없겠지요.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지 않았다는 연구는 1960년대 북한에서 이미 나왔어요. 이후 저를 포함해 남한의 몇몇 학자도 평양지역설이 잘못되었음을 밝히는 논증을 했고요. 만약 그들이 학자의 양심으로 한사군 평양지역설을 믿는다면 적어도 동북아재단에는 들어가지 말아야죠. 국민 세금을 들여 재단을 설립한 목적에 위배되는 거잖아요."

이런 이야기에 주류학계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제가 제기한 문제가 잘못되었다면 반박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들은 일절 말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연재 끝나기만 기다리는 것 아닌가 싶어요. 전에 MBC에서 정조독살 문제로 100분토론을 하자고 했어요. 저는 수락하면서 그랬죠. 아마 저쪽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요. 결국 불발되더군요. 아무도 안 나온다고 했다는 것이지요."

왜 그렇게 비주류의 길을 걷게 됐나요.

"대학원 다닐 때 노론사관에 동조하지 않으면 강단에 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나의 역사관을 펼칠 수 있는 길을 가야겠다 마음먹었죠. 이후 내 역할은 역사학계의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고 지냅니다."

역사를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E·H 카는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는데요.

"역사는 미래학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네요. 옛날 지식을 아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나라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이끌어주는 게 역사입니다. E·H 카는 그 말도 했지만 역사를 알려면 역사가를 먼저 연구하라는 말도 했어요. 지금 한국상황에 딱 들어맞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낸 책 중에 가장 만족스런 책은 무엇입니까.

"책 낼 때마다 나름대로 성의를 다했기 때문에 각각의 의미가 있어요. 하나를 고르기 어렵네요. 가장 화제가 된 책은 <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 일 겁니다. 송씨 후손들이 시위도 하고 화형식도 했으니까요."

남들과 다른 스토리는 어디서 나옵니까.

"1차 자료에 다 나와 있습니다. 우리 학계의 문제 중 하나가 1차 자료를 보지 않고 누가 해석해놓은 자료를 보고 얘기하는 데 있어요. 그게 공부 안 하는 사람들의 보편적 모습이지요."

어느 기사에 보니까 한국의 글쟁이 18인 중에 이 소장님을 꼽았던데, 그 유려한 문장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궁금해하는 독자가 많습니다.

"독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할까 많이 고민합니다. 그래서 많이 고쳐요. 하고 싶은 얘기를 다 쓴 뒤 전체적으로 보면서 고치고 추가하고 빼고 해요. 그런 뒤 다시 종합적으로 또 보죠. 그런 과정이 읽기 편하게 만들어줬는지 모르겠습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역사공부를 좋아했나요.

"중·고교 때 유신교육이 싫었어요. 수업시간에 교과서보다 삼중당 문고를 더 많이 보았어요. 그때부터 비주류의 인생인 거예요."

이제 유명 작가가 되었잖아요. 인세도 만만찮을 것 같은데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조선왕 독살사건은 30만 부나 나갔어요. 서민들에 비하면 많이 버는 편이죠. 그러나 연구소 유지 등으로 나가는 비용도 많아 실제 여유로운 생활을 하지는 못하는 편입니다."

앞으로 목표가 무엇입니까.

"제대로 된 국사교과서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후손들이 올바른 역사관을 갖고 연구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죠. 저 외에도 식민사관에 반대하는 전문가는 여럿 있습니다. 조직도 있고요, 학문적 역량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물적 토대가 없는 거예요. 동북아재단에 가는 연 200억 원의 예산 중 10분의 1만 제대로 사용해도 가능한 일입니다."

천고(遷固)라는 호를 쓰던데 무슨 의미인가요.

"천은 사기를 쓴 사마천(司馬遷)에서, 고는 한서를 쓴 반고(班固)의 이름에서 따왔어요. 제가 닮고 싶은 인물을 합쳐놓은 것이지요. 정체성을 지키면서 유연성을 잃지 않는다는 학자로서의 신념입니다."

< 글·이종탁 출판국 기획의원 jtlee@kyunghyang.com >

<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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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연합뉴스) 김인유 기자 = 경기도 광주시 산란계 농가들이 소비자와의 직거래를 통해 농가소득을 올리려고 아파트에 설치한 '달걀자판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대박이 났다.

광주지역 6개 산란계농가로 구성된 다한영농조합법인은 지난해 11월 1일 광주시 경안동 해태그린아파트 단지 내 관리사무소 옆에 '달걀자판기' 한 대를 설치했다.

높이 1.75m, 너비 1.5m 크기에 내부 온도조절을 위한 냉장시설과 공기순환장치를 갖춘 이 달걀자판기는 커피 자판기처럼 지폐나 동전으로 2천500원을 넣으면 10개들이 달걀 한 팩을 살 수 있게 만들어졌다.

일반 자판기처럼 물건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면 달걀이 깨지기 때문에 우편함처럼 1-40번까지 번호가 매겨진 보관함 40개에 달걀 꾸러미를 넣어 두고 소비자가 돈을 넣고 원하는 번호를 누르면 투명 아크릴판 문이 열리는 방식이다.

다한영농조합법인이 농가소득 증대와 브랜드홍보 방안을 고민하다 일본에 있는 달걀자판기에 착안, 광주시에 사업제안을 해 자판기 개발비 등을 지원받아 자판기 한 대를 만들어 시범적으로 설치했다.

영농조합과 광주시는 "재고가 남지만 않아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판매 추이를 지켜봤지만, 아파트 주민의 반응은 의의로 뜨거웠다.

이 자판기에서는 하루 평균 200개(10개 들이 200꾸러미), 한 달 평균 6천개의 달걀이 팔려나갔다. 이 아파트 300여 가구가 월 평균 20개의 달걀을 사먹은 셈이었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달걀보다 1천원 가량 싼 데다 매일 아침 갓 낳은 신선한 달걀을 공급한 것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의의의 성과에 고무된 영농조합과 광주시는 목현동 신일아파트, 태전동 e편한세상, 도평리 대주아파트, 산이리 대주아파트와 코아아파트, 양벌리 우림아파트 등 6개 아파트 단지에 달걀자판기를 추가로 설치했다.

지난달 29일에는 송정동 광주시청사에도 달걀자판기가 설치됐다.
이들 달걀자판기 한 대마다 매달 150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고 광주시는 설명했다.
달걀자판기 덕에 영농조합법인은 시장 상인에 국한됐던 달걀 판로를 일반 시민으로 확대한데다 달걀 한 개당 판매 단가도 기존보다 100원 이상 높게 받게 되면서 농가소득에 도움을 받고 있다.

시 관계자는 "달걀자판기는 농민들에게는 소득을 높여주고 소비자에게는 신선하고 싼 농산물을 먹을 수 있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면서 "시민의 인기를 끄는 만큼 앞으로 2대를 추가로 설치하고 장기적으로는 시 전역에 달걀자판기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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