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양=연합뉴스) 박종국 특파원 = 중국 선양(瀋陽)에 거주하는 교민들이 중국인들을 돕기 위해 펼치는 '은혜 이슬'운동(회장 김기식)이 중국땅을 적시고 있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딱한 처지에 놓인 한 중국인 초등학생을 학업을 마칠 때까지 계속 돌봐주자는 소박한 취지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2004년 12월 첫 발을 내디딜 때만 하더라도 발기인이 20여명에 불과한 소규모 기부운동이었다.

알음알음 알게 된 교민들이 모이면서 지금은 회원이 330여명으로 불어났고 지원받는 중국인도 65명에 이른다.

한 달 7천-8천 위안의 후원금을 모아 초등생은 100위안, 중.고.대학생은 200위안을 지원하고 있으며 독거노인과 장애인, 고아원 등으로 후원 대상을 넓혀가고 있다.

후원 대상이 대부분 부모의 관심과 손길이 필요한 결손 가정의 자녀이거나 생계 능력이 없는 노인들이라는 것을 알고는 매달 한 차례씩 방문해 말 벗도 돼주고 집안 일도 거들어 주는 것은 물론 이미용과 의료진료 등의 자원봉사활동도 해오고 있다.

교민들이 안 쓰는 물건들을 모아 전달해 주는 것도 회원들의 몫이다. 대학생 회원들은 자매결연한 학생들의 학업도 지도해주고 있다.

유방암에 걸린 30대 여성이 은혜이슬운동본부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아 건강을 되찾았고 2명의 중증 장애인들은 손발이 돼주는 회원들의 도움으로 생활이 한결 나아졌다.

랴오닝(遼寧)성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꼽히는 푸신(阜新)의 한 초등학교 학생 13명이 학비는 고사하고 수업 준비물도 챙겨올 형편이 안돼 학교 측으로부터 "더 이상 학교에 올 필요가 없다"는 통보를 받아 낙담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이들을 모두 수혜자로 선정, 돌보고 있다.

학생들이 "도움 덕분에 학교에 잘 다니고 있고 성적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며 "저희도 커서 남을 돕는 사람이 되겠다"는 감사의 편지를 보내와 회원들의 마음을 짠하게 만들기도 했다.

첫 수혜 대상이었던 학생이 대학을 졸업, 어엿한 회사원이 돼 매달 후원금을 내는 회원으로 활동할 만큼 이 운동은 짧지않은 연륜을 쌓았다.

2007년 4월에는 후원자와 수혜자들이 함께 문화축제를 열어 흥겹게 어우러지기도 했다. 올해 10월에도 풍성한 문화축제를 열어 수혜자들에게 용기를 심어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 금융 위기가 닥치면서 귀국하는 회원이 늘고 후원금도 줄어 눈물을 머금고 11명에 대한 후원을 중단한 것이 회원들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회원들은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새로운 시도로 더 많은 후원자들을 확보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동전의 희망' 프로젝트가 그 것으로 집에 묵혀두고 사용하지 않는 동전을 모아 더 많은 이들을 돕자는 구상이다.

다음 달 2만개의 저금통을 교민들의 가정과 기업, 기관에 나눠준 뒤 회수해 수혜자를 500명으로 늘리겠다는 것이 은혜이슬운동본부의 포부다.

중국 중앙한인회도 이 운동에 동참, 중국 전역에 5만개의 저금통을 배포하기로 하면서 선양에서 출발한 은혜이슬운동이 중국 전역으로 확대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주선양 한국총영사관도 적극적인 후원을 약속했다.

김기식 회장은 "더불어 사는 중국인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진심을 전한다면 중국 내 일각에서 일고 있는 혐한(嫌韓) 분위기도 사라질 것"이라며 "한 명, 한 명이 베푸는 은혜의 이슬로 세상을 촉촉하게 적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024-2347-1028)

pjk@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haohao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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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종 로열티 年 135억원 '굴레
국산품종 꾸준히 개발… 장미 점유율 1%- > 8% 결실

가장 대중적인 꽃이라 할 수 있는 장미와 국화. 누구나 좋아하는 과일인 딸기와 키위(참다래). 3,4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 재배되는 이들 작물은 외래종 일색이었다. 토종은 사실상 '씨'가 말랐다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 장미, 경기도농업기술원는 '그린뷰티'를 개발해 처음으로 해외에 품종 보호권을 판매했다. 이르면 연내 로열티를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 키위(참다래), '제시골드' ' 한라골드' 2개 품종이 뉴질랜드의 '제스프리골드' 에 대항하고 있다. 제주·경남 등으로 보급이 늘어 4~5년 내 제스프리골드를 제칠 것으로 기대된다.

↑ 딸기, 일본 품종에 거의 의존했던 딸기는 국산품종 '매향'' 설향' 등을 개발해 2005년 5%에 그친 점유율을 작년 43%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외래종 종자를 쓰는 대가는 만만치 않았다. 키위의 대표브랜드로 꼽히는 '제스프리골드'는 국내 키위 생산의 10%를 차지하고 있지만, 제주의 계약재배 농가들은 판매액의 15%를 꼬박꼬박 로열티로 뉴질랜드 제스프리사로 보내고 있다. 18일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우리 농가가 외래 종자 및 종묘를 구입해서 쓰고 그 대가(로열티)로 해외에 지불해야 하는 금액은 지난해만 무려 135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종자주권'을 되찾기 위한 토종 종자들의 약진이 눈부시다. 특히 로열티 부담이 큰 장미, 국화, 딸기, 키위가 외래종 골리앗에 도전장을 내밀기 시작했다.

농진청이 개발한 '제시골드' '한라골드' 등 순수토종 골드키위 2개 품종은 '제스프리골드'에 대항해 기염을 토하고 있다. '제시골드' 등 토종 골드키위가 선보인 지는 3년밖에 되지 않았고, 재배면적도 아직 제스프리골드의 절반에 못 미친다. 그러나 토종 골드키위는 로열티 한푼 물지 않고 인건비는 30% 정도 낮추면서 제스프리보다 40%정도 더 비싼 가격에 팔려 나간다.

김성철 농진청 온난화대응농업연구센터 연구사는 "토종 골드키위 재배 면적이 지난해 30㏊에서 올해 50㏊로 늘어나는 등 빠른 속도로 보급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약 10억원 가량의 로열티를 절약할 뿐 아니라 4~5년내에는 점유율에서도 제스프리골드를 앞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 품종에 거의 의존하다시피 했던 딸기는 '매향' '설향' 등 국산 품종의 개발ㆍ보급으로 토종의 보급률이 2005년 9%에서 지난해 43%까지 높아졌다. 2012년에는 딸기도 다른 농작물처럼 종자 로열티 지불 의무가 생기는 만큼 국산 품종 보급률을 올해 60%, 내년 70%까지 끌어올려 토종 종자로 일본 품종을 대체하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이렇게 되면 연간 30억원 가량의 로열티를 절감하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장미와 국화도 전략적으로 국산 신품종 개발ㆍ육성이 집중되면서 국산품종 점유율이 2005년 1%에서 지난해 8%까지 높아졌다. 특히 장미의 경우, 경기도농업기술원이 개발한 '그린뷰티'는 국산 품종으로는 처음으로 해외로 품종보호권이 판매됐는데, 올해 에콰도르 농가에서 재배가 시작돼 이르면 연내 로열티를 받을 수도 있다.

해외 로열티 지불액은 우리나라가 식물 분야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는 '국제 식물 신품종 보호동맹(UPOV)'에 가입한 첫해인 2002년 13억8,000만원에서 2004년 50억4,000만원으로, 2006년 125억9,000만원, 2007년 133억1,000만원으로 5년만에 10배 이상으로 불었다.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품종보호 대상 작물이 2002년 113개에서 지난해에는 223개로 늘면서, 로열티 부담도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중 로열티가 많이 나가는 작물로는 장미(72억원), 난초(26억원), 키위(15억원), 국화(10억원)가 상위권을 달린다.

반면 우리나라가 품종을 수출해 다른 나라로부터 받는 로열티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호밀품종인 '윈터그린'이 2003~2007년 캐나다로부터 3만달러를 받은 게 거의 전부다. 품종 로열티 수입은 사실상 제로(0)에 가깝다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박종현 농진청 연구관은 "아직도 해외로 나가는 종자로열티가 막대하지만 우리도 국내 농가의 로열티 부담을 덜기 위해 외국산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순수 토종 신품종을 개발, 보급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국내 시장은 물론이고 그린뷰티(장미)처럼 해외 시장 공략에도 성공하는 사례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문향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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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일본과 미국 등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가 지금까지 모두 7만6천여점에 이르고 있는 가운데 문화재 환수를 전담하는 인력은 2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안형환(한나라당) 의원이 문화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8일 현재 해외 20개국의 박물관과 도서관 등에서 우리 문화재 7만6천143점을 소장하고 있다.

국가별로는 일본이 3만4천369점(45.1%)으로 가장 많았고 미국 1만8천635점(24.5%), 영국 6천610점(8.7%), 독일 5천221점(6.9%), 프랑스 2천121점(2.8%) 등의 순이었다.

하지만 문화재 반환과 국제협약을 전담하는 직원은 2명에 불과했다.
안 의원은 "외국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보관된 우리 문화재가 많지만 환수 조치가 미흡한 실정"이라며 "담당 인력의 시급한 확충과 체계적인 환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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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유출 우리문화재 찾기 나선 혜문 스님
협상 진전 9월께 희소식 기대

"미국으로 흘러간 뒤 이산가족처럼 뿔뿔이 흩어진 우리 문화재를 반드시 찾아내 환수하겠습니다."

시민단체 '문화재 제자리 찾기' 사무총장인 혜문(36) 스님이 이번에는 미국 대장정에 나섰다. 2년 간의 끈질긴 노력 끝에 2006년 일본 도쿄대학이 소장했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의 반환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그는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11일까지 홀홀 단신 미국에 머물며 하버드대와 보스턴 미술관을 상대로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고 나선 것.

↑ ‘금은제 라마탑형 사리구’

↑ 혜문 스님은 지난 1월 미국 보스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금은제 라마탑형 사리구'를 본 순간"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을 시작한 것이'운명' 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부처님 진신사리와 지공, 나옹 스님의 사리를 환수하기 위해 북한으로부터 권한을 위임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하버드대 아서 새클러 박물관에 있는 그레고리 헨더슨 컬렉션은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과거"라고 울분을 토했다. 과거 일제 시대에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문화재를 약탈당했지만 헨더슨 컬렉션의 경우 미군정기 등을 거치면서 당시 권력층에 있던 소장자들이 헨더슨이라는 외교관에게 뇌물로 바쳤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번 방미 기간 중 조선 초기 명필을 대표하는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글씨로 추정되는 '금니사경'(金泥寫經ㆍ곱게 빻은 금가루를 붓끝에 묻혀 불경을 옮겨 적는 문서)을 실물로 최초로 확인, 하버드 대학에 반환 요청서를 전달했다.

하지만 반환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학교 측도 반환 요청에 대한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며 시간을 가지고 협의해보자고 밝혔지만 합법적인 소유로 법적인 하자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금니사경처럼 1988년 사망한 헨더슨이 한국에서 18년간 주한미군대사관 직원으로 지내면서 외교관 지위를 이용해 수집, 유출시킨 대표적 작품이 최대 1만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뇌물로 바친 한국의 소유권자가 반환을 요청하지 않는 이상 되돌려 받기가 쉽지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게다가 헨더슨씨의 부인인 마이아 여사마저 몇 년 전 숨지면서 주인을 잃은 이들 유물들이 미 매사추세츠주의 공익재단으로 넘겨진 뒤 경매를 통해 팔려나가면서 뿔뿔이 흩어진상황이다. 그는 "헨더슨 컬렉션이 8, 9월께 경매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며 "경매에 참여해 직접 구입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혜문 스님이 헨더슨 컬렉션과 더불어 반환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 보스턴 미술관의 '금은제 라마탑형 사리구'는 올해 가시적인 성과를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올 1월 미술관을 방문한 이후 서신 등을 통해 협상한 결과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며 "9월 정도에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금은제 라마탑형 사리구'에는 부처님 진신사리와 당대의 고승인 지공, 나옹 스님의 사리가 함께 모셔져 있다.

이 같은 혜문 스님의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은 2004년부터 시작됐다. 12년 전 불가에 귀의한 뒤 봉선사에서 총무과장으로 재직할 당시 사찰의 문화재 현황을 조사하면서 없어진 문화재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다.

그는 2004년에 '문화재 제자리 찾기' 시민단체를 구성, 2006년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과 삼성 리움 박물관이 소장했던 현등사 사리구를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았다. 3년 전부터는 일본 궁내청에서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실의궤의 반환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지난 1월에는 해외반출문화재 반환을 위한 미국방문단을 구성해 문화재 실상을 조사했고, 지난달에는 북한을 방문해 미국 내 문화재 환수를 위해 남북 불교계가 함께 노력한다는 공동합의문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고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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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글 윤현진 기자/사진 박준형 기자]
"한국은 보아를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해외 어떤 팝스타도 보아만큼 뛰어난 퍼포머는 본 적이 없다"

미국에서 활동중인 한국계 뮤직비디오 감독 조셉칸(본명 안준희)이 8년 만에 고국을 찾았다. 조셉칸은 켈리 클락슨, 푸시캣 돌스, 브리트니 스피어스, 애미넴, 레이디 가가 등 세계적인 팝스타들의 뮤직비디오를 담당한 'Top Korean'이다.

올해 미국 음반 시장에 진출한 가수 보아의 뮤직비디오 'I did it for love'를 연출하며 한국에서도 많은 팬들의 주목을 받은 조셉칸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한국인 중 한 명이다. 부산 출생의 조셉칸에게 비록 한국에서의 추억은 전혀 없지만 여전히 그에게 한국은 자랑스러운 고국이다.

조셉칸은 1998년 미국 팝 아티스트 Brandy & Monica의 뮤직비디오인 'The Boy is mine'으로 한국인 최초 MTV Video Award에서 최우수 비디오상을 수상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2002 Grammy Award에서 당대 최고의 팝 아티스트인 에미넴의 뮤직비디오 'Without Me'로 최우수 비디오상과 최우수 감독상까지 거머쥐며 미국 최고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인지도를 굳히며 당당하게 미국의 최고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자리잡았다.

또 2004년 세계 최고의 여성 아이콘인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뮤직비디오 'Toxic'으로 2004 MTV Video Award에서 최우수 비디오상을 한 번 더 수상하며 현재 미국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가장 영향력 있는 뮤직비디오 감독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부산출생인 조셉칸은 3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이후 이번에 두 번째로 한국을 방문했다. 조셉칸은 지난 6월 8일부터 12일까지 한국에 머물며 한국 비즈니스 파트너인 붐칙 엔터테인먼트의 워크샵과 삼성전자, CJ미디어 등의 국내 주요 기업들을 비롯한 보아의 소속사 SM 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대표와의 개별적 미팅을 가진 후 현재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상태다.

다음은 조셉칸과의 인터뷰 일문일답니다.
- 한국 출생이라고 들었는데 미국으로는 언제 이민을 갔나?
▲ 원래 부산에서 태어났고 이후 3살 때 텍사스로 이민을 갔다. 5살 때 다시 이탈리아로 갔다가 9살 때 미국으로 돌아왔다.

-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성공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역경은 없었나?
▲ 항상 힘들었다. LA에 처음 갔을 때 30편의 뮤직비디오를 찍어 에이전시를 찾아갔다. 그런데 당시 그곳의 담당자가 내게 하는 말이 '재능이 없으니까 그만둬라'였다. 당시 내 나이 20살이었다. 하지만 생활자체가 부유하지 않았기에 그만둘 수가 없었고 뮤직비디오 일이 너무 좋았다. 내가 그만두라고 했던 사람들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다른 사람보다 10배의 노력을 더 쏟아부어야 했다. 정통 미국인이 아니기에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에 한번 실수하게 되면 '저 사람은 동양 사람이기에 우리문화를 이해 못해서 그래'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감독들과 똑같은 레벨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평가를 받을 때 당연히 내가 아닌 그들이 선택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노력과 더 높은 퀄리티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야 했다.

- 얼마전 보아의 할리우드 진출곡 'I did it for love' 뮤직비디오 연출을 맡아 큰 화제가 됐다. 보아의 뮤직비디오는 어떻게 맡게 됐나?

▲ 보아의 'Eat you up' 영상을 보고 보아의 파워풀한 퍼포먼스에 놀랐다. 보아는 굉장히 퍼포먼스적으로 춤과 노래가 모두 뛰어난 환상적인 가수다. 대단히 에너제틱한 퍼포머다. 그렇게 생각하던 어느날 보아 쪽에서 먼저 함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자는 제의가 왔기에 흔쾌히 응했다.

- 보아의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 어떤 부분에 가장 초점을 맞췄나?
▲ 전체적으로 어두우면서도 전사같은 느낌을 살렸다. 보아 뮤직비디오를 만들 때 주변의 환경적 요소보다 춤을 잘 추는 보아를 더 부각시키기 위해 일부터 심플하게 제작했다. 조셉칸의 지금까지 뮤직비디오를 보면 스토리가 있고 스페셜한 효과가 많은데 보아의 뮤직비디오에서는 기존의 조셉칸 스타일은 철저히 배제하고 보아를 살리는데 중점을 뒀다.

- 그렇다면 평소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때 가장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뭔가?
▲ 뮤직비디오를 보는 사람들이 노래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고자 한다. 특히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뮤직비디오를 통해 사람들이 노래와 교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노래를 그저 듣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래 속에 담긴 감정이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그 느낌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뮤직비디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 미국 음반시장에서의 보아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 두말할 나위 없이 보아는 대단하다. 미국 음반시장에서의 성공여부 역시 굉장히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해외 어떤 스타들과 비교해도 보아만큼 퍼포먼스를 잘 해내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보아는 예쁘고 춤도 잘 추고 노래까지 잘한다. 가능성은 무한하다. 그런 보아를 한국이 굉장히 자랑스러워해야 할 것이다.

- 특별히 뮤직비디오라는 장르를 추구하는 이유가 있나?
▲ 12살 때부터 취미로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영화를 만드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뮤직비디오는 짧은 시간 안에 강한 영상을 보여줄 수 있다. 원래 뮤지션들을 좋아한다. 영화가 마라톤이라면 뮤직비디오는 100m 달리기다. 빨리 움직이는 시간동안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다.

- 지난 2004년에 영화 '토크'를 찍었던데 영화에도 남다른 관심이 있나?
▲ 15살 때부터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어릴적부터 원래 내 꿈은 영화감독이었지만 할리우드 커넥션이 없어서 뮤직비디오부터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 가장 빠르고 값싸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뮤직비디오다. 뮤직비디오 디렉터로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 앞으로 영화쪽으로 진출할 생각도 있나?
▲ 당연하다. 나의 최종 목표는 영화다. 현재 영화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윌리엄 깁슨의 'Neuromancer'이라는 책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계획중이다. 1년 안에 크랭크인에 들어갈 생각이다. 캐스팅도 준비중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내 롤모델이다. TV쇼나 영화, 만화, 하이스쿨 코미디 등 아이디어는 많지만 SF액션 영화를 만들고 싶다. 나중에 회사를 더 크게 세우게 되면 분야를 나눠서 뮤비, 영화, TV쇼, 뮤지컬 등 여러 분야에서 내 아이디어를 펼치고 싶다.

- 최근 칸영화제를 비롯한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가 전세계 영화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인으로서 그 때 기분이 어땠나?

▲ 정말 자랑스럽다. 한국영화에는 코미디, 액션, 멜로 등 여러 가지 문화가 복합적으로 담겨있다. 다양한 장르가 잘 조화를 이뤄 훌륭한 완성작이 되는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영화 중 '태극기 휘날리며' '조폭마누라' '괴물'을 가장 인상깊게 봤다. 한국말을 부지런히 배워 언젠가는 한국배우들, 한국대사들로만 구성된 진짜 한국영화를 내가 직접 제작하고 싶다.

- 조셉칸에게 한국은 어떤 곳인가?
▲ 너무 어렸을 때 이민을 가서 한국에서의 특별한 추억은 없지만 종종 미국에서 한국의 꿈을 꿀 때가 있다. 신기하게도 꿈속에서는 한국말을 다 알아듣는다. 한국 국민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과 조직적으로 잘 유기된 모습을 앞으로도 꾸준히 배우고 싶다.

칸에서 한국영화가 선전하는 이유는 한국 사람들의 민족성 자체가 굉장히 성실하면서도 창의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인들만의 매력이자 장점이다. 나 또한 그런 한국문화를 배우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미국의 다른 감독들보다도 훨씬 더 강점을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 한국은 내가 크고 소중한 영양분이다.

- 한국을 빛내는 세계 최고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서 제2의 조셉칸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이 있다면?

▲ 나는 내가 절대로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최고라서 나를 서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긍정적으로 도전하라. 물론 재능도 중요하지만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용기와 자신감이 가장 중요하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 계속 꾸준히 연습하며 도전한다면 언젠가 실패하는 것도 즐기게 될 것이고 결국에는 성공할 것이다. 복서는 링에서 내려오면 더 이상 복서가 아니다. 계속 쓰러지더라도 링 위에서 계속 일어나 싸워야 진정한 복서다. 끊임없이 노력하며 즐기길 바란다.

윤현진 issuebong@newsen.com/박준형 soul1014@new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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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 성공스토리 ◆

"노르웨이에서 라면을 먹고 싶다면 '미스터 리(Mr. Lee)'를 찾으세요."

노르웨이 라면계 전설 이철호 씨(72ㆍ사진)는 '미스터 리'가 노르웨이에서는 라면을 뜻하는 고유명사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가 만든 라면 브랜드 '미스터 리'가 무려 20년 이상 노르웨이 라면시장 점유율 80% 이상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이철호 씨가 오슬로 근교 한 식당에서 80년대부터 지금까지 차고 있는 돌핀 전자시계를 들어보이고 있다.

덕분에 그는 노르웨이에서 '라면왕'으로 불리며 총리보다 더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2000년 오슬로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시상식 때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미스터 리' 조국의 대통령으로 소개될 정도였다.

이씨가 라면을 처음 노르웨이에 도입한 것은 1970년대 중반 그가 요리사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그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17세의 나이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노르웨이 땅을 밟았다. 처음엔 청소나 접시닦이 일을 하다 한 호텔 주방장 눈에 띄어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어 프랑스에 요리유학까지 갔다. 이씨가 60년대 중반 독일에서 노르웨이식 뷔페 식당을 열어 대박을 터뜨렸을 때 그의 주요 고객에는 독일 총리 등 유명인들이 포함됐다. 그가 다시 노르웨이로 초빙돼 요리사로 일하던 71년 그는 스웨덴 정부로부터 한국 출장을 요청받았다.

이씨는 한국 출장에서 처음으로 라면과 인연을 맺게 됐다. 그는 "한국에서 라면을 처음 맛보았는데 진짜 맛있었다"며 "요리사로서 노르웨이에 꼭 소개하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나 노르웨이인들에게 낯선 음식인 라면을 소개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우선 한국 라면을 노르웨이시장에 팔기 위해 거쳐야 하는 각종 통관 절차가 3년 이상 걸렸다. 특히 방부제 등 성분검사 통과가 까다로웠다. 게다가 노르웨이인들은 라면 요리를 할 줄 몰라 라면을 그냥 버리기 일쑤였다.

결정적인 문제는 한국 라면이 맵고 얼큰해 노르웨이인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그는 해결책을 찾으러 노르웨이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스를 가지고 한국의 유명 라면회사 연구소를 방문했다. 연구진과 함께 노르웨이인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새로운 라면 스프를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이씨는 "프랑스 독일 등에서 요리사로 일한 경험을 되돌아 보니 나라마다 독특한 소스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노르웨이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소스를 먼저 알아놓은 다음 거기에 맞추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주로 매운맛을 빼고 기름진 맛을 더했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는 "처음에 한국 라면을 그대로 도입했다가 입맛에 맞게 바꿔서 출시한 이후 매출이 급격히 늘었다"며 "당시 한국에서 노르웨이로 컨테이너 단위로 주문하는 사람은 내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매출 증가와 함께 그가 주력한 부분은 홍보였다. 벌어들인 수익 중 필요한 경비를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홍보에 투입했다. 그는 신문 방송 광고는 물론 한국 여행 경품까지 걸었다. 한국을 알리면 라면도 자연스럽게 알려질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미스터 리' 라면 표지에는 '소고기맛' '닭고기맛' 등 한글이 꼭 적혀 있는데 이것도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덕분에 노르웨이에서는 라면의 원조가 일본이 아닌 한국으로 알려져 있어 일본 라면이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사업이 계속 승승장구하던 89년 어느날 이씨는 갑자기 자신의 라면 회사를 노르웨이 최대 식품회사에 넘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팔아치우자 그의 주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이씨는 "내가 100살도 못살텐데 내가 없어도 '미스터 리' 라면이 영원히 지속되도록 하기 위해 그런 결정을 내렸다"며 "동양 사람들이 자기 묻힐 묘를 만들고 죽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더욱이 그의 딸 3명이 모두 사업을 물려받을 뜻이 없다고 밝혀 그는 더 쉽게 '미스터 리' 라면 사업을 넘길 수 있었다.

이씨는 90년부터는 라면 개발만 필요에 따라 해주고 한국과 노르웨이를 양국에 홍보하는 일에 전념해오고 있다. 그는 또 세계 최초로 해산물대학교를 노르웨이에 설립하는 것을 추진 중이며 인천 송도에는 '리틀 노르웨이'라는 노르웨이 타운 건설도 추진 중이다.

한편 그는 한국인들에게 노르웨이에 와서 다양한 사업을 해볼 것을 권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노르웨이에서 근면성실한 한국인이 성공하기 쉽다는 설명이다.

◆ 노르웨이선 '빨리빨리' 안통해

"노르웨이 사람들과 일하려면 서둘러서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몇 년이 걸려도 꾸준히 일을 해야만 합니다."

라면왕 이철호 씨는 노르웨이에서 사업 성공 비결을 묻자 이같이 대답했다. 신뢰를 쌓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도 있으나 노르웨이인 특성이 뭔가를 즉각적으로 하는 데 익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는 "만일 누군가가 노르웨이인에게 어떤 부탁을 하면 그냥 지나가는 말로 생각하고 부탁을 바로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며 "1년 후, 그리고 2년 후 꾸준히 부탁하면 진실성을 깨닫고 기꺼이 들어준다"고 말했다.

이씨는 따라서 한국 사람들이 막 덤벼들었다가 안 된다고 바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노르웨이에는 공무원 부정ㆍ부패가 거의 없어 뇌물로 매수하려는 생각은 완전히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노르웨이에서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절차에 보통 3~7개월이 걸리는데 이를 앞당기기 위해 무슨 수를 쓰면 오히려 추가 조사를 받게 돼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씨는 노르웨이 언어 습득도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노르웨이인은 대부분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으나 현지 언어를 모르면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사실 50년여 전 노르웨이로 이민 올 당시 자신의 영어 능력을 믿었으나 노르웨이어 습득의 중요성을 깨닫고 숙달되기까지 하루 3시간씩 자며 현지어 공부를 했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마지막으로 한국인으로서 노르웨이에서 사업을 한다면 한국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추천했다. 그의 '미스터 리' 라면은 1970년대 중반 출시될 때부터 갖가지 한글을 라면 겉봉에 넣었는데 호기심을 자극하는 등 고객들 관심을 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슬로(노르웨이) = 윤원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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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A 한국선수 초청 프로암대회도 열어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인더스트리시티에서 퍼시픽팜스리조트를 운영하는 존 셈켄(53) 사장은 한국 스포츠와 한국인에게 '푹 빠진' 사람이다. 그는 1999년 문을 연 세계적 다목적 스포츠시설인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센터의 건립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스테이플스센터를 홈 구장으로 쓰는 미 프로농구(NBA) 엘에이(LA) 레이커스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엘에이 킹스 구단의 지분도 갖고 있는 재력가다.

그가 최근 인더스트리 엑스포센터에서 열린 2009 국제태권도 페스티벌의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이 대회를 16년째 개최하고 있는 한국인 전영인 사범의 제의를 흔쾌히 수락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리조트를 대폭 할인해 선수단 숙소로도 내놨다.

지난 4월에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서 활약중인 한희원, 박인비, 최나연 등 한국 선수 20여명을 초청해 퍼시픽팜스리조트 안 골프장에서 프로암대회를 열었다. 한국 선수들만 참가해 수익금 중 일부를 미국여자프로골프 기금으로 전달한 이 대회의 후원을 맡은 것이다. 그는 "한국 선수들은 평정심이 좋고 끈기있게 노력한다. 특히 미국 골프계를 장악하다시피 한 여자 선수들의 실력은 놀랍다"고 칭찬했다.

셈켄이 한국 스포츠를 좋아하고 후원하는 것은 한국과의 남다른 인연 때문이다. 그는 4년 전 두 살 아래 한국인 이미혜(51)씨와 결혼했다. 결혼식도 미국에서 서양식과 한국의 전통혼례로 두 차례 치렀다. 그는 부인에 대해 "한국에서 태어나 8살 때 미국으로 건너와 지금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영향력 있는 부동산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뿐만 아니다. 셈켄은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8년 동안 전투 조종사로 복무한 '해군 파일럿'이었다. 그는 "옛 소련이 붕괴되기 직전이던 90년을 전후해 4년 동안 미국 항공모함이 동해에 배치됐을 때 한국에 파견된 적이 있다"고 했다. 이런 특이한 이력 덕분에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 탑건 > 의 기술자문을 맡았고,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셈켄이 운영하고 있는 퍼시픽팜스리조트의 실무 책임자인 운영담당 부사장도 한국인 임희원(53)씨다. 임씨는 퍼시픽팜스리조트에 대해 "로스앤젤레스 인근에서 골프코스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숙소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셈켄은 "한국의 영해만 가보고 육지는 아직 구경하지 못했다. 아내의 조국을 꼭 방문하고 싶다"며 밝게 웃었다.

로스앤젤레스/글·사진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 한겨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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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 일본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김치는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는데 요즘엔 소주는 물론 막걸리, 떡볶이까지도 즐길 수 있게 됐죠. 한국에 대한 인식이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재세 재일본한국인연합회 회장(49)은 "최근 높아진 한국의 위상과 한류 열풍으로 달라진 일본 내 교민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며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9일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한국인이란 사실을 숨기고 살았던 사람들도 '커밍아웃' 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지하철 안에서 눈치를 보면서 우리말로 속삭이며 대화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며 웃었다. 한인회는 최근 10~20년 동안 일본에 건너와 정착한 한국인들이 결성한 단체다. 1945년 설립된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이 교포 중심의 조직이라면 한인회는 비교적 나중에 일본에 정착한 사람들이 만든 모임이다. 한인회는 35만여명을 거느린 민단에 비해 회원이 불과 5000여명에 지나지 않지만 유학생들의 정착 지원, 교민들의 이익 대변을 위해 활동영역을 넓혀 나가는 중이다. 민단은 해마다 8000~1만명 정도가 귀화를 하고, 고령으로 인한 자연 감소 등으로 조직력이 많이 약화돼 있다.

지난달 회장에 취임한 그는 무엇보다도 유학생과 젊은 인재들이 일본 땅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두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겪었던 고생을 생각해서라도 한국인 젊은이들의 일본 정착을 적극 지원하면 우리 때보다 훨씬 빨리 기반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벤처 비즈니스 육성 기구를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또 "한인회관 설립, 코리안타운 조성 작업도 임기 중에 추진해 나갈 과제"라고 밝혔다. 코리안타운 조성과 관련, "요코하마의 중화가처럼 이곳에 오면 한국에 가지 않아도 될 만큼 문화와 관습을 접목시킨 한인타운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며 "10년 이상 걸리는 사업이지만 현지 여론도 좋아 조성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민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교육문제를 꼽았다. 현재 일본 내 한국 학교는 도쿄, 교토, 오사카 3곳뿐이다. 총련계 민족학교가 전국에 77곳이 있는 것과는 큰 차이다. 그는 "학교 문제만큼은 정부에서도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며 "도쿄의 경우 우에노나 닛포리 등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최소한 한 곳은 더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 도쿄 | 조홍민특파원 dury129@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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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 우아한 연출 호평불구
안무 대폭수정 '새작품' 수준
판소리 들으며 발레 구상
스펙터클한 장면 가미


여기 판소리를 들으면서 발레 안무를 구상하는 남자가 있다.
오는 19~20일 경기도 고양시 마두동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 공연하는 발레 '춘향'을 안무한 유병헌(47) 유니버설발레단(UBC) 예술감독이다. 그는 벌써 몇 년째 전래동화부터 판소리, 영화까지 춘향에 대한 자료를 샅샅이 뒤져 찾아낸 아이디어를 발레로 형상화하고 있다.

유니버설발레단과 함께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발레를 만들겠다"며 발레 '춘향'의 1막을 처음 선보인 게 2006년. 이후 2007년 전막 초연, 2009년 전막 재공연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있다. 그가 '한국적인 발레'에 이토록 골몰하는 이유는 뭘까.

지난 4일 유니버설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난 유 감독은 무용수들에게 새로운 안무를 지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미 한 번 올렸던 작품이지만 전체 안무의 30~40%나 바뀌어 새 작품을 올리는 거나 다름없다.

"그 유명한 발레 '백조의 호수'랑 '호두까기 인형'이 초연 당시에는 쫄딱 망해서 그 뒤로 한동안 공연되지도 못했다는 거 아세요? 천하의 차이콥스키도 안무가 바뀔 때마다 몇 번씩이나 음악을 고쳐 썼죠."

그는 "발레는 영화처럼 미리 찍어 놓은 장면들을 이리저리 편집할 수 없기 때문에, 완성에 이르려면 계속해서 무대에 올리고 수정을 거듭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레 '춘향'은 지난 2007년 고양아람누리 개관기념작으로 초연했을 당시 서양 발레와는 전혀 다른 한국적인 춤사위와 우아한 연출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에게 소구하기 위해서는 좀 더 스펙터클한 장면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그래서 이번에는 강렬한 이미지를 전면에 배치하고, 원작을 모르는 외국인들이 봤을 때도 쉽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사이사이에 안무를 추가했다.

"초연 때는 어머니(월매)가 정화수를 떠놓고 옥에 갇힌 춘향의 무사 방면을 기원하는 장면으로 느리게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막이 오르자마자 옥중 춘향이 목에 칼을 쓴 채 모진 고문을 견디는 장면이 나옵니다. 춘향은 창살을 사이에 두고 어머니와 슬프게 춤을 출 겁니다."

그 밖에도 하체ㆍ발동작 위주인 서양 발레와 달리 상체ㆍ손동작을 많이 사용해 우아함을 더했다.

유 감독은 "우리 몸에 체화된 한국 전통음악의 장단은 서양 클래식의 리듬감과 다르다"며 "서양적인 안무가 직선적으로 쭉쭉 뻗어나간다면, 한국적인 안무는 곡선 형태로 돌고 도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유 감독은 조선족이다. 중국에서 태어나 1988년 베이징무용대학 발레지도자 과정을 졸업하고 96년부터는 베이징무용대학 교수, 97년부터는 중국 중앙(국립)발레단 발레마스터를 지냈다.

선천적으로 음악에 대한 감각과 체격 조건을 타고났지만,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서구 문화의 유입을 엄격하게 차단했기 때문에 클래식 음악이나 발레를 접하기 어려웠다. 덩샤오핑의 문호개방 정책에 따라 들여온 발레 '백조의 호수'를 본 게 17세 때. 그는 차이콥스키의 음악과 발레를 접하고 강한 충격을 받은 뒤 음악에 맞춰 춤추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그런데 당시 중국에서는 16~17세가 되면 국가적인 차원에서 학업을 중단하고 농업에 종사하도록 했기 때문에, 계속 공부하려면 정부가 육성하는 예술학교에 진학해야 했다.

운명이 그를 발레로 이끈 셈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체제의 제약 때문에 힘겨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81년 미국 조프리 발레단에 입단 허가를 받아놓고도 중국 정부가 비자를 내주지 않아 포기했고, 89년에는 톈안먼(천안문) 사태로 그가 재직 중이던 베이징무용대학이 무기한 휴교에 들어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때 석 달간 한국에서 무용수로 활동한 것이 인연이 돼, 그는 99년부터 유니버설발레단에서 발레마스터 겸 안무가로 일하게 됐다. 지난 10년간의 업적을 인정받아 올해 초에는 예술감독에까지 올랐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계속 한국적인 창작 발레를 만들어 세계에 알리고 싶다"며 "발레의 중심은 이미 유럽 미국 등 서구를 지나 아시아로 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소민 기자/som@heraldm.com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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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년간 TV 광고와 홈쇼핑을 이용해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A상조회사. 광고에는 슬픈 곡조의 배경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장례식용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도우미와 최고급 리무진이 소비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이어 유명 여성 탤런트가 나와 “내 부모, 내 형제처럼 정성을 다한다”며 회원 가입을 권한다. 10년(120개월) 동안 매달 3만원씩, 총 360만원을 내면 이 회사의 특별한 장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19년 전통과 60여만 가입자를 내세우며 당장 수화기를 들어 전화 상담을 받으라고 재촉한다.

그러나 최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dart.fss.or.kr)에 공개된 이 회사의 재무상태는 광고와 딴판이었다. 주주가 투자한 자본금을 전부 까먹은 것은 물론 고객이 낸 돈 수백억원이 축나 있었다. 해당 기업의 지난해 사업 실적을 감사한 외부 회계법인이 금감원에 제출한 감사보고서에 나타난 내용이다. 감사를 한 공인회계사는 보고서에서 “계속기업으로 존속 능력에 중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대로 가다간 자칫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경고다.

중 앙SUNDAY가 금감원에 감사보고서를 제출한 대형 상조회사 8곳의 지난해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대구상조·새부산상조 두 곳만 흑자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나머지 6곳은 지난해 모두 합쳐 525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 중 부산상조를 제외한 5개 사는 회사 설립 이후 적자가 쌓여 발생한 부실(결손금) 규모가 총 1300억원에 달했다. 반면 이들 5개 사의 자본금은 총 12억5000만원에 불과하다. 무려 자본금의 100배 이상을 까먹은 셈이다.

상조업에는 소비자 보호장치가 전혀 없어 회사가 부실해지거나 문을 닫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고객에게 돌아간다. 5000만원의 자본금만 내면 누구나 상조업체를 차릴 수 있고, 대주주나 경영자가 고객 돈을 마음대로 갖다 써도 아무런 감시·감독을 받지 않는다. 획기적인 변화가 없다면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상조업이 발달한 일본과 비슷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미 국회에 관련 법안도 올라가 있다. 그러나 정부는 ‘소관 부처’ 타령으로 아까운 시간을 흘려 보내며 문제를 키우고 있다.

“소관 부처 명확하지 않다” 변명
4월 2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조찬 강연회.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공정거래 정책 방향’이란 주제로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이 연단에 올랐다. 그는 “불황기에 서민 피해 증가가 예상되는 분야를 집중 감시하고 있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상조업과 불법 다단계 판매에 대해 직권조사를 마치고 법 위반 여부를 검토·분석 중”이라고 강조했다. 상조업과 불법 다단계 판매를 같은 선상에 놓고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 러나 공정위는 상조업에 대한 조사 결과를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 본지는 이에 대한 공정위의 입장을 듣기 위해 대변인실을 통해 담당자의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상조업은 소관 부처가 명확하지 않아 인터뷰가 곤란하다”는 것이 공정위가 내세운 이유였다. “국회에서 의원입법으로 상조업의 소관 부처를 보건복지가족부로 하는 법안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도 이어졌다. 불과 한 달 전 백 위원장이 직접 상조업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던 것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것이다.

공정위의 이런 태도에 대해 복지부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미 2007년 정부 부처 간 협의를 거쳐 상조업은 공정위가 맡는 것으로 교통정리를 했다”며 “현재로선 공정위가 상조업을 관할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는 “만일 국회가 입법을 통해 소관 부처를 변경한다면 그때 가서 결정에 따르겠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정부가 소관 부처를 놓고 ‘책임 떠넘기기’ 공방이나 벌일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라는 데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상조업 관련 소비자 피해 상담은 2003년 58건에서 지난해 1374건으로 5년간 23배로 급증했다. 이 중 1166건(85%)은 상조회사가 고객의 해약 요구를 거부하거나 고객에게 과다한 위약금을 물린 경우였다. 올 들어 4월까지 피해 상담은 800건으로 벌써 2007년 연간 상담 건수(833건)에 육박했다.

동 국대 강동구(생사의례 전공) 교수는 “비교적 건전하다는 상조회사조차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객이 맡긴 돈의 3분의 1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며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국은퇴자협회 주명룡 회장은 “일부 상조회사의 부실이 자본금의 수백 배나 되는데도 버티는 것은 ‘금융 피라미드’가 아니고선 불가능하다”며 “상조는 도시보다는 농촌, 고학력·고소득층보다는 저학력·저소득층에게 급속히 파고들고 있어 심각성이 더욱 크다”고 지적했다.

금융 피라미드식 운영 의혹
상 조업체는 수백 개가 난립해 있는 것으로 추산되나 인허가가 필요 없는 자유업이어서 정확한 실태 파악이 어렵다. 한국상조업연합회는 전국적으로 400여 개 업체에 300만 명의 회원이 가입해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이 중 ‘장의사’ 수준의 영세업체를 제외하고 실제로 영업하는 상조회사는 100개 정도일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대부분 상조회사는 회계감사도 제대로 받지 않고 재무제표를 공개하지도 않아 부실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기 어렵다. 다만 ‘주식회사 외부감사에 관한 법’에 따라 자산 100억원 이상의 대형 업체는 금감원이 감사보고서를 받아 공개하고 있다.

이 보고서를 보면 상조업체 중 가장 덩치(자산 규모)가 큰 회사는 부산상조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총자산이 874억원에 달했고, 1982년 설립돼 역사가 가장 오래됐다. 2005년부터 3년 연속 흑자를 냈으나 지난해에는 주식 투자에서 큰 손실을 보면서 71억원의 적자로 돌아섰다.

업계 2위는 보람상조(보람상조개발과 보람상조라이프)로 752억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자산의 두 배 가까운 1482억원의 빚을 안고 있어 경영 사정은 좋지 않다. 적자도 2007년 127억원, 지난해 233억원으로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3 위 대구상조와 4위 현대종합상조의 경쟁도 치열하다. 자산 규모로 본 두 회사의 격차는 지난해 말 기준 7억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대구상조는 비교적 안정적인 경영으로 지난해 20억원의 흑자를 냈지만 현대상조는 120억원의 적자를 면치 못했다. 이 밖에 새부산상조가 5위, 국민상조가 6위에 올라 있다.

상조업 부실의 주원인으로는 ‘다단계 판매’와 비슷한 영업방식과 고객 돈을 자기 돈처럼 생각하는 경영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꼽힌다. 권택기(한나라당) 의원의 분석에 따르면 대형 업체 B사의 경우 고객이 100만원을 내면 66만원을 광고·판촉비 등 영업비용으로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 의원은 “영업비용이 과다하면 정작 회원에게 상이 닥쳤을 때 서비스가 부실해지거나 아예 서비스를 받지 못할 위험이 커진다”며 “일부 상조회사는 고객 돈으로 주식에 투자했다가 대규모 손실을 보거나 영업과 관계없는 부동산을 사들이는 데 골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조 연합회 정명근 사무총장은 “일부이긴 하지만 고객 돈으로 벤츠·BMW를 타고 다니며 재벌 행세를 하는 상조업체 사장도 있다”며 “그러다 돈이 떨어지면 슬그머니 회사 문을 닫고 잠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합회 차원에서 불공정 약관 등을 이유로 50개 사에 제명이란 중징계를 내렸지만 상당수는 여전히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며 “업계의 자율 정화 노력은 한계가 있으므로 하루빨리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실 상조업에 대한 대책은 이미 나와 있다. 현재 국회에는 상조업과 관련, 네 건의 법안이 계류 중이다. 권경석(한나라당) 의원의 ‘상조업법안’과 권택기 의원의 ‘할부거래법’ 개정안, 김춘진(민주당) 의원이 동시에 제출한 ‘상조업법안’과 ‘할부거래법’ 개정안이다.

일본선 회비 50% 외부 예탁 의무화
각 법안은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큰 방향에선 거의 일치한다. 골자는 ▶상조업을 현재의 자유업에서 등록제나 허가제로 바꾸고 ▶상조업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자본금 3억~5억원)을 규정하고 ▶고객이 낸 돈의 일부를 외부에 맡겨 부도나 폐업에 대비하며 ▶상조업자가 불법 행위를 저지르면 형사처벌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일본은 이미 1970년대에 상조회사를 허가제로 하고 고객 회비 중 최소 50%를 은행에 맡기거나 보증보험사의 보증을 받도록 하고 있다.

상조업 관련법은 여야 간 입장이 비슷하기 때문에 법을 집행할 정부 입장만 분명하다면 국회에서 합의 처리가 어렵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공정위의 태도다. 공정위는 지난해 10월 의원들이 낸 것과 비슷한 내용의 ‘할부거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공청회를 열어 전문가 의견도 들었다. 그러나 8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정부안을 국회에 내지 않고 있다.

강동구 교수는 “상조회사의 부실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닌데도 정부가 미적거리다 실기해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다”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 정위가 소관 부처의 모호성을 주장하는 근거는 김춘진 의원이 낸 법안이다. 김 의원은 상조업의 소관 부처를 복지부로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것은 민주당의 공식 당론도 아니고, 김 의원도 필요하다면 수정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김 의원실의 유경선 보좌관은 “원칙적으로 관혼상제에 관한 사항은 복지부가 맡는 것이 타당하다”며 “그러나 소관 부처가 문제가 된다면 시장질서를 바로잡는 것은 공정위, 산업 차원에서의 육성은 복지부로 이원화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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